강아지 한 마리가 집에서 같이 살고 있다. 강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내가 8년을 같이 살게 되다니. 집은 나 혼자만의 공간이 아닌지라 다수가 원하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강아지이다. 세월을 이길 장사가 없는 것을 강아지와의 관계에서도 느낀다. 8년을 함께 지내다 보니 만지지도 않던 내가 쓰다듬어주고 이제는 안아주고 심지어 한 이불에서 같이 누워있어도 괜찮다. 아마도 8년 동안 이 녀석이 나에게(가족 중 가장 후순위이지만) 보여준 애정에 내가 넘어가 버린 것 같다. 강아지와 단둘이 있는 한낮의 집안 정적을 깨워주는 것도 강아지의 발소리이고, 안아달라고 보채며 품 안으로 파고드는 것도 강아지뿐이다. 누워있던 녀석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나가면 어김없이 가족 중 한 명이 들어오는 것이다. 녀석은 귀가한 가족을 누구보다도 열렬히 환영한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꼬리가 떨어져 나갈 듯이 흔들어 댄다. 이러니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타지에 살고 있는 딸도 주기적으로 강아지 동영상 보내라고 요청한다. 다른 가족의 동영상은 결코 궁금해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이 정도면 가족이라고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강아지가 사람을 대하듯 사람들도 서로를 대한다면 갈등이 많이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강아지의 단순함이 우리에게는 부족한 것인가. 만들어 낸 생각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요구들이, 함께 해 온 경험들이 서로를 단순하게 바라보는 일을 가로막고 있는 것일까. 감정들은 사라지지 않고 켜켜이 쌓여 어느 순간 팡 터져 버린다.
몇 년 전 문경에서 오미자를 사 와서 오미자청을 담갔던 기억이 난다. 통에 마음껏 넣어가라고 하니 욕심내어 오미자를 정해진 용량보다 많이 넣고 설탕을 부으니 용기에 공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숙성시키는 동안 용기에서 기포가 발생하며 부글거렸다. 정리해 주어야 할 것 같아서 뚜껑을 열었더니 용암이 폭발하듯이 부글거리며 흘러넘치는 것이다. 발효액을 담글 때는 통을 넉넉하게 큰 것에 담아야 한다는 것을, 불필요한 욕심이 오히려 일을 그르친다는 것을 배웠다. 감정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마음의 그릇이 넉넉하다면 결코 분노가 넘치지 않을 것이고, 충분한 숙성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마음 안에서 발효되어 폭발하기보다는 삶의 지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숙성의 시간을 기다리기에는 우리가 너무 연약한 인간이 아닌가.
어떻게 하면 감정이 발효될까? 감정이 솟구칠 때는 나는 가만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내 마음의 흐름을 느껴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너 지금 화가 났구나’ 하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이 온다. 그 소리가 들리는 순간 솟구치던 화는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한다. 그런 다음 책을 펼치고 소리내어 읽기 시작한다. 거기까지 하고 나면 화는 이미 지나가 버린 버스가 된다. 이 또한 세월의 힘일까.
올해 담근 오미자는 잘 숙성되었다. 용기가 넉넉하여 넘치지도 않았고 숙성의 시간을 잘 지내면서 고운 빛깔을 내고 있다. 신맛, 쓴맛, 매운맛, 짠맛, 단맛 이 다섯 가지의 맛이 모두 섞여 있어서 오미자라고 칭한다고 한다. 한 가지 맛만 있다면 오미자의 매력이 아닌 것처럼 인생도 오미를 품고 있어서 살아갈 수 있나 보다. 오늘의 맛과 내일의 맛이 다르니까. 문득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오미가 있어야 함을 알게 해 준 소설 '모순(양귀자)'이 떠오른다.
오미자의 고운 빛깔만큼 나의 마음이 고와지고 순해지기를 소망하면서 나의 솟구치는 감정들을 들어주었던 지인들에게 선물하고자 오미자청을 작은 병에 소분한다. 서랍 속에 넣어 둔 예쁜 끈을 찾아 병에 묶어주니 제법 선물 같은 티가 난다.
강아지는 오미자 향을 킁킁거리며 얼쩡거린다. 지금 내 마음의 평화는 강아지로 인함이니 간식 하나 주어야겠다. 오늘은 강아지도 오미자도 나의 스승이다. 강아지야! 건강하게 함께 잘살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