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삶을 그리다/쓰다
베르나르 뷔페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청소년기를 보냈고, 성인이 되지 못한 채 병으로 어머니를 잃었다. 그의 아버지는 거울 공장에서 일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가정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해 지독한 외로움으로 고통스러웠고, 이것을 그림으로 그렸다. 그는 말했다. "나는 오직 살기 위해 그렸다." 그의 작품에 사람들은 하나같이 삐쩍 말랐고, 꾸밈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검은 단색 옷이거나 실오라기 하나조차도 걸치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표정에서는 깊은 외로움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을 그린 작가라고 하기에는 역설적이게도 지인들이 그를 '밝은 사람'이라고 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의 삶도 그와 유사한 형태를 띤다. 열 살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가장 믿었던 어머니가 떠났고, 아버지는 목수 일을 하며 남자아이 둘을 키워야 했기에 가정에 몰두하기 어려웠다. 고독함을 현저하게 느끼고, 나만의 일인칭 가난과 고립된 청년으로서의 삶을 쓴다. 나의 글을 읽은 독자는 담담하고, 진솔하게 쓰는 것을 통해 고통과 연민, 외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나의 주변 사람들 역시 '밝은 사람'이라고 나를 표현한다.
나는 그가 그랬듯 '살기 위해 쓰는' 정도의 고통을 통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쓰는 과정으로 치유가 됨을 느낀다. 그 역시 그리면서 치유를 느꼈을 테고, 매일 그리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애썼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릴 때부터 느꼈던 고독감 또는 전쟁 후의 피폐한 현실에서 직시하는 타인의 고통을 온전하게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쓰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시작한 것이 서른 즈음이었다. 그전에만 해도 아픔을 치유할 줄 몰랐다. 그래서 불안이나 외로움을 관리할 수 있게 타투로 몸에 다짐을 새기거나, 미처 소화하지 못한 감정은 타인에게 상처를 주며 뾰족하게 살았다. 이제야 나는 '나로서 살기 위해' 쓰고 있다.
광대는 자기 얼굴에 그림을 그린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는 광대를 그렸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분리 불가능한 고민을 그린 듯하다. 그는 불안이나 고통을 감추거나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는 광대와 자신의 존재가 닮았다고 느꼈다. 그의 광대 그림을 보고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그를 왜 '밝은 사람'이라고 말했는 지를 추측할 수 있다. 자신이 느끼는 고통은 숨긴 채, 밝은 사람으로 살아간 것이다. 젊은 나이에 피카소와 비견될 만큼 유명해지면서 대중의 관심과 힐난을 한 몸에 받았던 그는 또렷하면서도 강렬한 감정을 직면하기가 쉽지 않았을 테고, 광대의 가면을 써야 했을 테다.
나의 삶도 광대 그 자체다. SNS에는 맛있는 음식과 한껏 보정된 인물 사진, 행복만이 가득한 순간을 꾸며낸다. 내가 차마 드러내지 못했던 것은 그뿐 아니다. 어머니의 부재, 지원받지 못할 정도의 경계선 가난, 애정결핍이나 유기 불안 등 불안정한 심리 상태도 함께다. 광대가 자신의 얼굴과 감정을 감추듯이, 흉은 내면 깊은 곳에 꼭꼭 숨겼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나를 밝은 사람으로 인식하게 했다. 나는 타고난 광대인 듯하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진솔한 나의 감정과 진실된 상황, 아픔이 있는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광대처럼 생각하며 인간 내면의 진실된 모습을 그리려고 했다. 나아가 이를 꼬집기라도 하듯이 광대로 표현했다. 그는 자신의 부정 감정을 인정하고 작품으로 그려냈다. 그는 "나를 둘러싼 증오는 사람들이 나에게 준 훌륭한 선물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쓰는 일인칭 가난도 비슷하다. 사람들이 읽으며 응원도 하지만, 맹목적인 비난을 하는 경우도 많다. 나 역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숨겨둔 것을 버젓이 드러내며 가난이 특정한 누군가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임을 쓴다.
내가 그림 없는 21세기를 살아도 될까?
그는 죽음을 선택했다. 1997년 파킨슨 병으로 손 떨림이 생겼다. 그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 후 6개월 동안 '죽음'을 주제로 25개의 유작을 그린다. 오른손이 떨리니까, 왼손으로 오른손을 받쳐서까지 그림을 그린다. "만약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없다면, 나는 차라리 죽을 것이다."라고 말한 뷔페는, 1999년 유작을 그렸던 작업실의 그림 옆에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재용아, 이 사람 너랑 비슷해." 함께 전시를 보러 갔던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실제로 가까운 지인에게 죽음을 선택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몇 번 있다. 물론 나는 그처럼, 굳은 신념 끝에 말한 것이 아니다. 그저 삶의 시작이 나의 의지가 아니었으니 마지막만큼이라도 내가 선택하고 싶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오로지 나의 선택으로 결과를 책임질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죽음은 다르다. 인간의 욕심이야 끝이 없겠지만, 나는 '적당히' 원했던 목표나 쓰임이 다하면 죽음을 선택하고 싶다며 막연하게 생각했다.
다만 죽음에 이르기까지 글쓰기를 멈추지는 않을 것 같다. 더 많이 쓰려 욕심 내지 않고, 나만의 속도에 맞춰서, 다른 사람의 증오에 주눅 들지 않고, 꾸준히 쓸 것이다. 나는 뷔페처럼 쓰지 못한다고 해서 죽음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쓴다는 행위를 떠나 해찰하고, 숙고하며, 나만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게 되면, 죽음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이제는 '쓰는 것'이 나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음을 느낀다. 친구가 나를 뷔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지점도 이것이었을 테다. 그의 신념을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하며, 귀로 들은 그의 말은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 꽉 찬 신념과 정체성으로 삶을 살아가라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