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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Aug 16. 2024

부모님 이혼 활용법

나의 주변에는 언제나 사람이 많았다. 호감형의 생김새 덕분인지, 어색한 것을 견디지 못해 대화를 이끌어가는 것에 스스럼이 없어서인지, 눈치가 빨라서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기보다 깊은 관계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기를 원했다. 내 나이가 10살이 되었을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가장 믿었던 어머니가 나를 떠났기 때문일 테다. 아무리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깊이 알고 지내지 않으면, 하나도 없는 것과 다름없다고 느꼈다. 나의 믿음을 줄 사람이 필요했던 듯하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부모님 이혼 사실을 어떻게 해서든 숨겼다. 누군가 어머니에 대해서 물으면 대답을 얼버무리거나, 거짓말로 떠나간 어머니를 만들어 내거나, 재빠르게 대화 화제를 바꿨다. 그 시절에는 '부모님의 이혼'도 흉이었고, '부모님이 이혼한 가정에서 자라는 것'도 흉이었다. 나름 잘 대처했다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눈치 빠른 사람은 아마 알아차렸을 것이다.

ⓒ Luis Villasmil of Unsplash. All right reserved.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을 '부모님 이혼'이라는 사실이나 상황에 놓인 나의 존재가 상대방 얼굴에서 확인될 때가 있다. 이혼이라는 것이 언제나 흉이었고, 나의 흉을 목격한 상대는 정말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나의 사실을 알게 되면 마치 무덤까지 짊어지고 갈 비밀인 양 당황하는 상대 모습을 보게 된다. 그 모습은 나를 향한 배려로부터 나온 표정과 행동, 사과의 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싫었다.


나는 이 상황에서 누구도 잘못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혼을 선택한 부모님도, 이혼 가정에서 자란 나도, 이혼 가정에서 자란 나를 지인으로 둔 상대도 잘못한 사람이 없다. 하지만 나와 상대의 대화 속에 미안함이라는 감정이 지배하고, 사과가 오고 가며, 어색함도 흐른다. 그래서 숨겼다. 나의 흉을 들추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앞으로 상대 마음속에 굳건히 자리하게 될 흉보는 속마음을 생각해야 해서도 아니다. 그 누구도 잘못한 사람이 없지만, 그 누구도 웃어넘기지 못하는 상황이 싫어서였다.


한 번 시작한 거짓말은 계속된 거짓말을 데려왔다. 이제는 누구한테, 어떠한 거짓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 즈음이 되어서야 알았다. 내 존재 자체가 거짓말 같다는 것을 말이다. 성인이 되고서는 묻지도 않았는 데, 먼저 부모님이 이혼했음을 말했다. 이혼 가정이 늘어나기 시작했던 사회 인식의 변화도 있었다. 그럼에도 자랑보다 흉에 가까운 것은 변함없었다. 하지만 나는 거짓말에 지쳤고, 흉을 '접근 금지 명령'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 Albert Stoynov of Unsplash. All right reserved.

'나 이렇게나 흉 있는 사람입니다. 서툴게 다가오지 마세요.'라는 접근 금지 명령이다. 명령의 효과는 친해지기 전이 효과가 좋다. 친해진 뒤에 말하게 되면, 상대를 속였다는 죄책감과 상대가 말로는 다 담지도 못할 표정과 표현을 보아야 한다. 하지만 친해지기 전, 그러니까 첫 만남에 가까울수록 죄책감과 애매한 상대의 표정은 없다. 자신이 묻지 않았으니까 미안해하는 것도 덜하다.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는 항상 손톱을 물어뜯었다. 언제 들통날 지 모르는 거짓말 속에 살다 보니, 불안은 노상 함께였다. 애정결핍이었다. 아버지는 남자아이 둘을 책임지느라 당연히 바빴고, 사랑을 나누고 확인할 대상이 친구 말고는 없었다. 따라서 언제나 깊은 관계를 원했던 듯하다. 하지만 친구는 나 아니고서도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 보니, 내가 전하는 양만큼 보상이 돌아올 리가 없다. 나의 가난은 만성 애정결핍을 갖고 살게 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애정결핍은 '접근 금지 명령'을 내리면서 사라졌다. 나에게 부모님 이혼이라는 흉은 흉터였다. 다시 흉이 될 때도 있긴 하지만, 이제는 상처가 생겨도 금세 아무는 편이다. 흉터는 곧 딱딱하게 굳은살이 된다. 이미 아물어버린 상흔은 나를 다른 사람과 구분하는 타투가 됐다.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나의 정서적인 가난은 정체성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히 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나의 '부모님 이혼 활용법'은 극복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어엿한 어른으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친 기록이고, 나와 유사한 1인칭 가난의 상황이라면 활용 가능한 메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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