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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Mar 20. 2024

서른이 넘어서도 유기 불안을 겪고 있습니다.

나는 '유기 불안'과 함께 살고 있다. 유기 불안은 '타인이 자신을 싫어하거나, 홀로 남겨졌거나, 불안정하거나, 버림받은 듯한 느낌을 갖는 사람의 주관적 감정 상태'를 말한다. 나는 정신건강복지센터 임상심리사 선생님과 저녁 식사를 하다가 이 개념을 들었고, 처음에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도 유기 불안이 있음을 고백하면서 이러한 불안은 누구나 느끼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물론 나는 그 정도가 타인에 비교해서 높지만 말이다.

ⓒ Nowah Bartscher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 삐 소리 후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나는 만약 아버지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초조함을 느낀다. 한 번이 아니라, 전화를 받지 않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점차 염려되는 수준을 넘어서 두려움에 가까워진다. 나는 아버지가 현장 노동자인 목수라서 걱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임상심리사인 그는 내게 되물었다. "다른 가까운 사람이 전화를 받지 않아도 불안을 느끼나요?". 결코 그렇지 않다. 이를 테면 나의 동생도 현장직인 소방관이지만, 전화를 받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다. '교대 근무로 지금 자고 있겠지'.


내게 가족이라고는 우리 셋 밖에 없는데, 동생에게는 유기 불안의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다만 나중에 아버지가 전화 와서 "깜빡 잠들었네." 혹은 "연장 소리가 시끄러워서 전화 왔는지를 몰랐네."라고 할 때면 긴장이 풀리는 동시에, 별 것 아닌 일에 전화를 받지 않은 아버지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불안함을 넘어 초조했던 그 시간들이 부끄러움으로 바뀌기도 한다.


유기 불안은 과거의 정서적, 신체적 유기 경험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테면 부모의 죽음이나 방치를 경험하거나, 또래에게 거절당하거나, 연인이 갑자기 떠나는 등의 경험이 그렇다. 내 경우는 부모님 이혼이었다. 나는 부모님 이혼을 내 탓이라고 여기기도 했고, 이 사실에 대한 친구의 짐작 가능한 조롱이 무서웠고, 세상에서 가장 믿고 따랐던 어머니가 떠났던 것에 우울과 분노, 스트레스를 경험했다.


특히 유기 불안은 주 양육자에게 느끼기 쉽다. 다시 말해 나를 양육하는 존재가 아닌 동생에게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아버지 없이 살아갈 수 없기에 살기 위해 가졌던 불안이다. 더군다나 이혼 가정의 경우 이미 한쪽 부모가 떠나버린 것에 더해, 함께 살고 있는 부모조차 나를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의 감정을 지닌 채 사는 경우가 많다. 나는 유기 불안을 느끼지 않으려 노력하며, 일말의 유기 가능성을 애써 외면했다. 그렇게 불안을 극복하려 했던 듯하다.

손목에 있는 레터링 타투

그래서 손목에 'Keep the Faith'라고 타투를 새겼다. 직역하면 '믿음을 끝까지 지키다.'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속어로 '힘내라, 정신 차려라'와 같이 쓰인다. 이것은 어릴 적에 유기로 잃어버렸던 사람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기 위한 다짐을 새긴 것이다. 간혹 나에게 "사회복지사가 문신이 있어도 되나요?"라고 묻는 사람도 있다. 나는 타투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드러내며 설명한다. 마음이 불안할 때면, 평생 동안 지워지지 않는 타투를 보며 평생을 함께할 불안을 관리한다고 말이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부모님 이혼 전에 사람들이 나에게 물으면, 나는 항상 "엄마"라고 답했다. 그만큼 나에게 엄마의 존재는 세상과 같았다. 그럼에도 세상은 사라졌고, 다시 편성된 세상에는 유기 불안이 가득했다. 고등학생 때까지 나는 손톱을 물어뜯었고, 단순한 부재중 전화에도 아버지가 나를 유기하지 않을까 걱정해야 했고, 다른 사람을 전적으로 믿는 것이 현재까지도 어렵다.


나는 가난이 경제적인 것 하나만으로 정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경험한 가난은 경제적인 것도 있었지만, 심리적인 것도 있었고, 사회적인 것도 있었다. 또한 일시적이기도, 만성적이기도 했다. 지금은 경제적 가난에서 벗어났을지 몰라도, 심리적 가난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유기 불안'으로 현재의 삶이 과거처럼 갑자기 붕괴된 것은 아니지만, 내 가난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부모가 이혼한 중학생을 대상으로 수행한 국내 연구에 따르면, 유기공포의 수준은 편부가정 자녀에게서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를 설명할 수 있는 한 가지 가능성은 아버지보다 어머니에게 더 애착되는 한국 가정의 특성상 어머니의 상실이 더 큰 유기공포를 경험하게 했을 가능성이다.(정연옥, 이민규, 김은정, 「이혼 가정 자녀의 유기공포 및 상실지각과 불안 및 우울 간의 관계」, 20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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