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용 Jul 09. 2024

유부 초밥이 먹고 싶었다.

나는 소풍 갈 때면 유부 초밥을 먹고 싶었다. 김밥보다 유부 초밥을 더 먹고 싶어 했던 것은 진솔한 욕구가 아닌 듯하다. 그저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이었을 테다. 도시락을 열면 가지런히 놓여있는 유부 초밥과 초록색 꼭지까지 달린 싱그러운 방울토마토 몇 개, 그 도시락을 싸가고 싶었다. 하지만 한부모 가정에 자랐던 나에게는 결코 허용되지 않았다.


김밥은 어디서나 쉽게 살 수 있지만,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한 끼를 먹기 위해 속에 들어갈 재료를 준비하는 것은 시간, 돈, 식재료 모두가 낭비다. 김밥은 쉽게 상하니 다 먹지 못할 만큼 만들어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다. 자칫하면 옆구리 터지기 쉬운 김밥은 남자 셋이서만 사는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이 절대 아니다. 그토록 원했던 유부초밥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밥만 준비하면 쉽게 조리할 수 있도록 유부 초밥 밀키트가 있지만, 그 당시에는 밀키트가 없었다. 요리에 대한 기본 지식이나 정보도 없었다. 재료도 당연히 없었다. 김밥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했으니, 유부 초밥은 더욱 선택지에 없었다. 그러니까 김밥을 사는 것이 유일하게 선택 가능한 방법이었고, 유부 초밥은 애초에 상상조차 해본 적 없다. 소풍에 유부 초밥을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나에게는 특권이라 여겨졌다.

ⓒ Alex Gallegos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소풍날 아침이면, 평소보다 부지런해야 했다. 소풍을 위해 새로 산 옷을 입고, 머리 손질하는 시간도 필요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도시락 대체를 구하는 일이었다. 나는 도시락을 싸가지 않았다. 나는 김밥을 사갔다. 새벽부터 문 여는 김밥 집을 미리 알아둬야 했다. 학교를 지나야 갈 수 있던 김밥 천국에는 유부 초밥이 없었다. 김밥 두 줄을 샀다. 다시금 학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검은 비닐봉지에 은박지로 싸인 도시락을 흔들며 소풍에 갔다.


그때는 다들 넉넉하게 도시락을 싸는 것이 일종의 문화였다. 친구와 바꿔 먹기 위함도 있었지만, 선생님에게 줄 김밥이 필요했다. 선생님에게 상납하는 형태라기보다 이상하게도 소풍날만 되면 스승의 은혜가 물씬 샘솟았다. 선생님은 대체로 도시락을 안 싸왔는데, 삼삼오오 모여있는 학생 모임을 돌아다니며 나눠 먹었다. 하지만 내가 가져간 김밥은 메이드 인 김밥 천국이었고, 집집마다의 특색이랄 것이 없는 나의 김밥은 선생님이나 친구와 선뜻 나눠먹기 어려웠다.


도시락은 소풍 때만 싸는 것이 아니다. 수능 시험 날에도 도시락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소풍과는 달리 수능 날에 넉넉하고, 소풍날 친구들이 가져올법한 도시락을 가져갔다. 사실 인과 관계는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당시에 가장 친한 친구에게 푸념을 했었는지, 그냥 김밥 같은 것을 싸갈 거라고 친구에게 말했는지, 우리 집안 사정을 어렴풋이 알고 있던 친구나 친구 어머니가 자발적으로 싸줬는지를 말이다.


다만 친구 어머니가 내 도시락까지 싸줬다. 도시락은 정말 맛있었다. 맛도 맛이었지만, 내가 도시락을 싸갈 수 없음을 이해하고 싸준 마음이 감사했다. 아들이든, 아들 친구든 든든하게 점심을 먹고서 시험을 잘 보길 바라는 마음은 아마 충분히 예상 가능할 것이다. 수능 전날에는 비가 왔는데, 수능 당일에는 비가 그치고 구름이 껴서 흐렸다. 나는 마음이 담긴 도시락을 친구와 함께 운동장 스탠드 계단에 나란히 앉아 구름 낀 마음으로 먹었다.

ⓒ Sandra Harris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구름 뒤에 가려진 온기 가득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그러한 도시락을 처음 먹어봐서였을까, 그저 맛있어서 양껏 먹었기 때문일까. 생각보다 점심을 많이 먹었다. 나는 3교시 영어 시험에서는 겨우 버텼지만, 4교시 사회 탐구 영역 시험에서는 끝내 잠에 들었다. 잠에서 깼을 때, 시험 감독관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나에게 문제를 풀라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 생각보다도 시간이 많이 흘렀고, 나는 조급하게 문제를 풀었다. 이제껏 살던 대로 김밥을 사가서 먹었어야 했던 걸까.


나는 시험장을 빠져나오면서 만난, 친구에게 "와, 나 4교시에 잠듦. 점심 너무 많이 먹었나 봄."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어쩌면 일생에 가장 중요한 시험 중에 하나를 망쳤음에도 화나지 않았다. 오히려 맛있는 도시락을 싸준 친구 어머니에게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그 도시락에는 이혼 가정이 흔하지 않았던 시대에 나를 향해 느낀 이해나 연민, 사랑 등의 복합적이었을 감정, 새벽부터 따뜻한 음식을 전하려고 했던 노력 등이 담겨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시대가 바뀌면서 김밥이나 유부 초밥, 도시락은 더 이상 가난을 설명할 수 없을 테다. 이제는 이혼 가정마저도 숨겨야 할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럼에도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면서 느끼게 되는 2024년 형 자격지심이 존재할 것이다. 과거 유사한 상황에 놓였던 나도 현재의 한부모 가정의 가난은 모르고 지나갈 가능성이 높다. 저마다의 가난은 그마다 형태가 다르겠지만, 구름 낀 마음만은 같을 것이다. 나는 구름 낀 마음이 모여 비를 내리기 위해 가난을 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따스한 온기로부터 일방적인 연민으로 내리쬐는 것을 막기 위해 가난을 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버지의 여자친구를 반대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