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나이키 신발을 갖고 싶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나이키 에어포스'가 유행했다. 그 순백의 운동화는 나이키 로고마저 하얗게 붙어있기에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 초승달 같은 로고의 신발을 원했다. 하지만 나는 나이키 에어포스를 살 수 없었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때 나의 하루 용돈은 천 원이었고, 에어포스는 그 당시에도 십만 원이 훌쩍 넘었다. 꼬박 백 일을 넘게 한 푼도 쓰지 않아야 살 수 있는 것이었다. 명절에 받는 용돈은 나에게 해당사항이 없었다. 부모님 이혼으로 나는 아버지 쪽 친척집에만 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미 절반이 없는 셈인 데다, 아버지 쪽 친척은 우리 집과 경제상황이 하등 다르지 않았다.
나의 백일 반지라도 팔아서 사면 좋겠지만, 부모님은 그것도 진작에 팔아서 생활비에 보태 쓴 듯했다. '그렇게 간절히 갖고 싶었다면 백일쯤이야 용돈을 모아야 됐던 것 아닌가? 고등학생이 돈 쓸 데가 어디에 있지? 따뜻한 집에 재워주고, 학교에 가면 점심이랑 저녁도 주고, 교복 입으니까 옷 살 필요도 없잖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늘 반에서 키는 제일 작았지만, 나에게도 성장기라는 것이 있었다. 성장기에는 항상 배가 고픈 법이고, 적어도 두 끼 먹는 식사 외에 매점에서 공산품 햄버거를 하루 하나 정도는 먹어야 했다.
꼭 배가 고프지 않았다고 해도 친구와 어울리려면, 나도 돈을 써야 했다. 몇 번쯤은 안 쓰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매일 쓰지 않는다면 우리 집의 가난을 널리 알리는 것과 다름없다. 나는 이순신 장군처럼 담대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친구에게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나의 가난을 알리지 않았다. 백일이나 용돈 모을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고, 나는 나이키 에어포스 신발을 산 적이 없다. 적어도 정품은 말이다.
2000년대 초반에 G마켓, 옥션 같은 오픈마켓이 많았다. 내 기억에 지금처럼 온라인 쇼핑몰이 많지 않아서 구매 후기 같은 것이 별로 없었고, 짝퉁 제품도 많았다. 십만 원 넘는 에어포스가 삼만 원 정도에 판매됐다. 퀄리티가 좋은 짝퉁은 더 비쌌다. 칠만 원이나 하는 짝퉁을 사기에 돈이 모자랐다. 결국 정신승리를 해야 했다. '짝퉁이면, 퀄리티가 좋든 안 좋든 가품이다.'하고 말이다.
나는 짝퉁을 사고 나서야 알았다. 신었을 때 느낌도 얄궂은 신발이었지만, 친구에게 들킬까 봐 마음 졸이는 것이 항상 함께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나마 저렴했던 컨버스를 신었을 때는 마음이라도 편했는데, 짝퉁 에어포스는 얄궂은 마음마저 들게 했다. 나는 깔끔한 것에 강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짝퉁인 것을 들킬까 봐 일부러 신발을 모래 운동장에 비볐다. 그러면 티가 덜 날까 싶어서 그랬다. 그렇게 새 하얀 운동화는 샛 노란 운동화가 됐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짝퉁 나이키 신발은 오래 신지는 못했다. 품질이 좋지 않았기 때문도 있지만, 내가 친구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막 신어서, 흙처럼 때 묻은 나의 가난을 숨기기에는 너무도 하얀 신발이어서 그랬던 듯하다. 나는 가난 덕분에 짝퉁은 좋지 않은 것임을 일찍 배웠다. 책이나 인터넷 같은 곳에서 간접적으로 배워도 됐을 텐데, 나의 가난은 짝퉁이 좋지 않음을 넘어 나쁜 것임을 직접 경험하도록 했다.
그즈음이었다. 동생은 정품 뉴에라 모자를 샀다. 이 모자의 특징은 모자챙에 정품임을 나타내는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것이다. 하루는 동생이 세상이 무너져라 울고 있었다. 엄마가 이혼하고 떠났을 때도 그렇게 안 울었던 것 같은데, 그날은 지독 시리도 울었다. 그 이유는 뉴에라 모자 특징을 알 리 없는 아버지가 동생 모자의 스티커를 떼어내서 버렸기 때문이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모자에 이상한 것이 붙어 있으니 집 청소를 하다 발견하고 떼어 버린 것이다. 그저 실수였다. 지금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내가 새로 사주면 그만이다. 하지만 짝퉁 나이키 신발을 사던 나에게도 돈은 없었다. 선뜻 새로 사 준다고 하지 못했던 것은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모자에 스티커 하나 없다고 해서 모자가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이 아니기에 다시 사는 것은, 우리 집의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서는 사치에 가까웠다. 그렇게 정품의 뉴에라 모자는 의도치 않게 짝퉁이 됐다.
만약 누군가 '가난한 사람은 누구일까?'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대부분의 사람은 '수급자요.'라고 말한다. 가난을 직접 말하는 것이 내심 미안했는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거나 '취약계층' 등 일상생활에서 쓰지 않는 단어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을 '수급권 범위에 있는 사람'으로 한정한다면, 우리나라에 가난한 사람은 존재하면 안 된다. '수급권자'라는 뜻이 인간다운 최소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생계급여를 포함한 일곱 가지 급여를 국가에서 보장하기 때문이다. 정말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이 맞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만약 수급권을 가진다면 국가로부터 급여를 받기에 최저생계비가 충족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가난의 정의는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함. 또는 그런 상태.'다. 따라서 가난은 절대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대적이기도 하다. 나의 가난은 정품 나이키 신발을 살 수 없는 절대적이기도 하고, 짝퉁정도는 살 수 있는 상대적이기도 한 가난이었다. 다시 말해 우리 집의 어중간한 가난은 실수조차 용납지 않도록 만드는 절대적인 가난이기도 하지만, 남이 하는 것을 엿보며 욕망하고 어설프게 행동하도록 하는 상대적인 가난이기도 했다. 우리 집은 흔히 생각하는 가난의 상징인 수급권이 없어서 국가로부터 보장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가난을 명확하게 알고, 짝퉁을 착용하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형태의 어중간하고도 아이러니한 가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