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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은진 Mar 20. 2021

그 많던 천재들은 어디로 갔나

체리필터, <Happy Day>


난 내가 말야 스무 살쯤엔 요절할 천재일 줄만 알고
어릴 땐 말야 모든 게 다 간단하다 믿었지
이제 나는 딸기 향 해열제 같은 환상적인 해결책이 필요해
징그러운 일상에 불을 지르고 어디론가 도망갈까

체리필터 – Happy Day










 누구에게나 어릴 적에 품은 꿈이 있다. 찬란하지만 무모한, 그렇기에 제한이 없었던 꿈들. 직업에 대한 로망은 장래 희망을 적는 종이의 글씨로만 남았을 수도 있고, 마음을 먹고 도전했지만 흥미가 떨어지거나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 금방 포기한 기억의 파편으로 존재할 수도 있다. 그중 소수는 포기하지 않고 꿈을 이어나가, 원하던 대로 직업을 삼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결말이 꼭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부끄럽지만 나도 어릴 적엔 내가 천재일 줄로만 알았다. 사실 지금으로부터 5년여밖에 되지 않았으니 어릴 적이라고 말하기엔 조금 어폐가 있다. 나는 아홉 살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책을 읽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흔히 말하는 ‘인터넷 소설’이나 ‘팬픽’에 흥미를 들이며 그 장르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다. 제대로 된 문장 구성은커녕 대사 또한 흔히 ‘대본체’라고 말하는 시나리오 식으로 작성하며 유치하게 쓴 글이었다. 그러나 어릴 적 내게는 작품을 창작한다는 것이 순수한 즐거움이었고,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읽어주며 재밌다는 둥 댓글을 달아주는 일에 큰 기쁨을 느꼈다.



 그다음은 공책에 직접 내가 쓴 소설을 쓰는 일이었다. 공포 단편 소설부터 로맨스 소설까지, 내가 쓰기 시작한 글의 대부분은 소위 ‘팬픽’이나 ‘장르 소설’ 위주였다. 초등학생들이 쓰는 줄 공책에 연필로 꾹꾹 글씨를 눌러쓰고 몇 장으로 완성된 소설 공책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읽어보라고 했었다. 백일장에 참여해 원고지에 산문을 써서 상을 받기도 했고 교내 글쓰기 대회가 있으면 참가하는 게 당연지사였다.



 물론 어릴 적부터 글을 썼다고 해서 내가 천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는 초등학생 때 ‘장려상 딜레마’에 빠져 있던 사람이었다. 글을 많이 쓰고 길게 쓰지만, 핵심을 정확히 간파하지 못하거나 주제에 완전히 적합한 글을 쓰지 못했다. 속이 빈 강정이라고, 겉은 번지르르했어도 인정받을 만한 실력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갔던 대회에선 전부 상을 받았지만 장려상이었고, 교내 글쓰기 대회에서도 대부분 장려상을 받아왔다.



 이러한 딜레마를 벗어나 글쓰기 실력이 극적으로 향상된 건 중학생 때부터였다. 컴퓨터 글을 쓰는 것보다는 공책에 직접 손으로 쓰는 게 익숙했던 시절이었는데, 글쓰기 카페 등을 가입해 컴퓨터로 글을 쓰면서 글을 쓰는 속도도 빨라졌고 점차 완성된 글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얇은 동화책이나 초등학생을 위한 소설책에서 벗어나 청소년 문학을 접하면서 글 또한 성장하기 시작했다. 무릇 사람에게는 급속도로 몸이 크는 성장기가 있듯이, 나도 글 성장기를 맞이한 것이다.



 글을 잘 쓴다는 소리야 많이 들었고 나 또한 내 글에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는 3년 동안 연극 동아리 활동을 했었는데, 내가 직접 쓴 희곡으로 대회에도 참가하고 축제 연극도 진행했다. 직접 쓴 시나리오에 맞춰 배우가 되기도 하고, 그 시나리오로 상도 받고 연기 칭찬도 받아 한창 우쭐하던 때였다. 그제야 내게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도, 집에 와서도 매일 글을 쓰고 매주 단편 소설을 완성해 게시하기도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문예창작과에 입학해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초등학교 때 멋모르고 썼던 작가라는 꿈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정식으로 문학계에 발을 디뎌야 했다. 하지만 말이 쉽다고 하지, 이제껏 내가 쓴 글은 순문학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초장부터 발을 들이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글이라는 장르 안에서도 수많은 주제로 나뉘는데, 독학으로 무작정 쓰기 시작한 글을 순문학이라는 틀에 맞추는 건 쉽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각종 문예 백일장과 공모전을 알아보고 참가하기 위해 순문학을 쓰는 시간을 들였다. 운 좋게 백일장 본선에도 들고 상을 받기도 했지만(이마저도 차하였다. 장려!) 순문학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한 건 여전했다. 수필보다는 소설이 내 취향이었지만, 대개 백일장이나 문학상에서 원하는 산문은 수필이 주였다. 초등학생 때 썼던 글처럼 핵심 주제가 희미했고 결말은 모호했다.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틀에 맞춰 억지로 글을 욱여넣으려다 보니 점점 글을 쓰는 의미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즈음, 나는 미래에 대한 회의감과 정말 쓰고 싶은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자퇴를 결심했다. (정확한 자퇴를 하게 된 계기나 후의 이야기는 나의 자퇴 수기나 책을 참고하는 게 좋다. 이번 글은 ‘재능’에 관한 글이기 때문이다.) 글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 돌아보니 내 재능은 애매한 재능에 불과했다. 부푼 꿈을 안고 백일장 본선 장소로 향했을 때, 글을 잘 쓰는 수십 명의 또래들을 보며 기가 죽었고 학원이나 과외를 다니며 그걸로 상을 타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했다. 신춘문예, 공모전을 통해 데뷔한 스타 작가가 부럽고 첫 작부터 성공하는 천재에게 내심 질투심을 불태운 경험도 있었다.



 사람에게 질투심과 부러움은 공존할 수밖에 없는 감정과도 같다. 작가가 된 지금,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누군가를 질투한다. 성공을 꿈꾸며 애매한 재능에 이를 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 정도면 잘하고 있는 거라며 나를 다독이기도 한다. 나는 천재들과 작가의 현실을 보고 포기하는 대신, 말없이 계속 글을 써나갔다.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이란 쉬지 않고 꾸준히 쓰는 일뿐이었다. 그렇게 ‘자퇴’라는 주 키워드로 에세이를 내고 내 책을 세상에 소개하게 되었다.



 물론 첫 작부터 대성공했다거나 수많은 계약이나 강연 제의가 쏟아지는 드라마틱한 일은 없었다. 매일 같이 나오는 수많은 도서들에 파묻히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봐야 했다. 책을 낸 당시에는 반응이 조용했지만, 강연 제의가 들어오고 라디오까지 하는 등 나름 배곯지 않을 첫술을 떠냈다. 그렇게 책을 출간한 지 일 년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 나는 여전히 글을 쓰지만 성공적인 작가가 되었거나 완벽한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스무 살에 책을 출간했으니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일찍 꿈을 이룬 것이라고 할 순 있겠다. 순문학에 발을 들이면서 잠깐 절망했던 나도 출간 계약을 하면서 주눅 들었던 어깨를 잠시 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난 결코 요절할 천재는 되지 못했고, 노력형 천재도 되지 못했다. 순수한 노력파라고 말하기엔 나보다 노력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그 단어를 붙이진 못하겠다. 게으름뱅이 작가가 운 좋게 기회를 얻은 것일 뿐.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성공은 너무 어려웠다. 취미였던 글은 일이 되면서 내 발목을 붙잡았고,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서 어디에도 발을 들이지 못하고 방황했다. 계속 글에만 집중하며 살고 싶었지만, 앞으로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엿한 직장이 있어야 했다. 그러려면 취업을 준비하기 위해 대학이나 자격증 등의 스펙을 쌓아야 했다. 그 스펙을 쌓는 사이 글과는 더 멀어지고, 두 가지를 병행하기엔 시간도 체력도 부족하다는 걸 알기에 고민하며 괴로워했다.



 내게 딸기 향 해열제는 돈이었다.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문제는 돈이 있으면 해결되는 일이니까. 지금도 종종 생각한다. 내가 돈이 많았다면, 하물며 가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좀 더 글에 집중할 수 있었을까? 순문학계에도 제대로 발을 들여 보고, 현실을 걱정하는 시간 동안 마음 편하게 글을 써서 더 많은 완성작을 낼 수 있었을까 하고.



 세상을 놀라게 할 천재가 되고 싶었지만 실패했다. 그렇다면 꾸준히, 끊임없이 글을 써서 언젠가 대박을 터뜨리는 노력형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엔 자꾸 회의감이 든다. 나만 좋아하는, 아니면 나도 잘 모르겠다는 그저 그런 글만을 쓰다가 결국 잊히는 결말이 떠올라서. 수많은 무명작가들이 겪은 그 길을 향해 나아갈 것인지, 더 늦기 전에 이 길을 포기할 것인지 수십 번을 고민한다. 대박을 터뜨릴 거라는 목표는 희망 사항에 불과하기에, 다시 십 대 후반 때 고민하던 현실과 이상의 경계로 돌아가고 만다.



 작가의 세계를 두 눈으로 마주하고, 일 년을 공들여 쓴 글이 일수보다도 적은 돈으로 떨어지는 순간 현실을 체감했다. 내가 사랑하고, 내가 쓰고 싶은 글만으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다는 걸. 어쩌면, 태생부터 천재였던 자들도 끊임없이 노력했던 천재들도 이 세계에서 무너지고 사라진 것이 아닐까?



 꿈을 이루긴커녕 데뷔도 하지 못하고 사라진 자들이 절반, 한 권의 책을 내고 쓰디쓴 현실을 맛보고 사라진 자들이 절반의 절반, 꿈을 포기하지 못한 나머지가 살아가기 위해 아등바등 글을 쓰며 세상에 제 흔적을 남기는 것이라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두려웠다. 나 역시도 이 세계를 포기하고 글을 내려놓는다면 어떻게 될지.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진 나의 애매한 재능을 외면하는 순간, 끝나는 건 오직 나 하나의 세계뿐일 터다. 천재도, 노력파도 아닌 그 무언가가 사라진다고 해서 이 세상이 변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 많은 천재들은 어디로 갔을까. 지독할 정도로 냉정한 세상 속에서 마냥 예술을 좇을 수 없어, 징그러운 일상에 체념한 채 사회 속에 몸을 숨겼나. 일탈을 꿈꾸지만 자유를 찾아 떠날 수 없던 자들이 내려놓은 글이 어디로 수몰되고 불탔는지, 나는 모를 일이다.






매주 토요일, 좋은 노래와 함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3~5분에 달하는 노래 한 곡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를 가져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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