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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은진 Mar 27. 2021

나를 좀먹는 우울을 이겨내는 법

심규선, <INNER>

애를 쓰는 것도 참는 것도 아무 의미 없다고

잠에서 깨면 나는 도망치고 싶었지

늦은 오후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앉아서

나의 허공을 노려보는 것도 지칠 때쯤


심규선, INNER









  우울과 너무 많은 나날을 살아온 탓에 매일이 행복하거나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누군가의 하루가 부러운 요즘이다. 한 차례의 깊은 우울증을 이겨내고 이제야 겨우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건만, 잊을 때면 찾아오는 감정이 기분을 망치고 틀어진 계획은 하루를 망친다. 제대로 된 생활 습관을 유지하지 못하고, 일상이 무너지면 몸도 마음도 몸져눕게 되는 것이다.



  해가 중천에 뜨다 못해 모두가 점심을 먹고 오후를 시작할 즈음에야 일어나고, 하늘이 어두워질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로 누워만 있거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하루에 단 한 번 챙기는 식사는 평균치보다 과하게, 더 많이 먹게 되고 남들이 자는 시간에 컴퓨터를 하며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눈을 감는 삶. 그렇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버린 시간들에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것을 했는지, 기억조차 하기 싫어 눈을 감고 잠만 자버린 터라 남은 기억들이 손에 꼽다.



  흔히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말하는데, 세상에 이토록 끈질긴 감기가 있나 싶다. 차라리 난치병이라고 하면 모를까, 조금만 마음의 면역력이 약해지면 찾아와 털어낼 때까지 괴롭히니 반기기 싫은 불청객임을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이 우울함에 휘둘리는 나 자신이다. 우울이 일시적으로 머물다 갈 감정이 아니라는 게 알면서도 부러 이겨내지 못하는 나를 탓하고 미련하게 구는 것. 이제까지의 내가 그랬고, 지금의 내가 그러고 있다.



  파도처럼 모든 걸 휩쓸고 지나간 과거가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도피하고 싶었던 마음이 해소되지 못하고 쌓여서, 끝내 바깥으로 내보내지도 못하고 제 안에서 터져버리고 말았던 날이 있었다. 때는 열일곱이었다. 학교라는 공간에 매여 글이라는 자유를 써 내려가지 못했던 나는 학교를 그만두기만 하면 이 모든 분노와 우울이 사라질 거라고 믿었다. 학교를 벗어나기만 한다면, 분명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잘 쓰면서 진정으로 살고 싶은 삶을 살아가게 될 거라고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당시의 나는 벼랑 끝에 서 있는 듯이 아슬아슬한 사람이었다. 나름의 계획과 희망을 품고 입학한 학교였건만, 현실과 이상이 달라 남들 다 따라가는 길을 걷지 못했다. 힘들었지만 남들에게 티 내기 싫어 멀쩡한 척 학교에 다녔다. 우여곡절 끝에 한 학기를 겨우 마쳤지만, 이겨냈다는 안도감보다 이렇게 3년을 버텨야 한다는 절망감에 주저앉고 싶었다. 극단적인 선택을 피해 고개 돌려 찾아낸 대책이 바로 자퇴였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으나, 간절했기에 망설이지 않았던 골목길이었다.



  몇 달간의 긴 투쟁 끝에, 나는 자퇴를 했다. 더는 학교에 가기 위해 억지로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었고 마음껏 자고 싶은 만큼 잘 수 있었다. 먹고 싶은 걸 하고 자유로운 시간대에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되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 자유에 심취해 안도하는 것도 잠시였다. 일주일 만에 틀어진 계획은 걷잡을 수 없이 더 망가져갔고, 나는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고 원망과 자책에 빠져 살았다.



  자퇴는 당장의 원인을 없애주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그 무렵 나는 주기적으로 상담을 받고 있었다. 상담 선생님과 만나며 하루 일과를 이야기하고, 고민을 나누고, 천천히 해결책을 찾는 시간을 가졌다. 매일 집안에 틀어박혀 끊임없이 나를 탓하는 대신 바깥에 나가 바람을 쐬고 책을 읽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고 애썼다. 스스로 우울을 이겨내려고 노력했기에, 눈물로 얼룩졌던 지난날을 밝히고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희망차고 긍정적인 결말로 글을 끝맺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내 삶은 문장을 멈추면 끝나는 글과 달리 계속 진행되고 있다. 그에 따라 행복한 날도 있었지만, 이별하고 싶었던 우울과 다시 만난 날들도 많았다. 어쩌면 지금도 불안감이나 죄책감으로 남아 내 등 뒤에 기생하며 살아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도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불시에 찾아오는 우울을 일시적으로나마 떨쳐낼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



  무기력이 온몸을 잠식해 어떤 것도 할 수 없고 어떤 것도 쓸 수 없을 때, 나를 자책하는 대신 휴식을 취하는 법을 알았다. 굶거나, 혹은 과식하거나 밤에 무언가를 집어먹을 때 우울해하지 않고 내일부터라도 잘 챙겨 먹자고 다짐하는 법을 알았다. 내 존재가 너무 하찮게 느껴지고, 몸이 무거워질 때마다 수용성인 우울을 씻어내기 위해 욕조 안에 몸을 담그는 법을 알았다. 누군가의 일상에선 너무 당연한 일들이 당연하게 되지 않았을 때, 나는 우울이 찾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숨기고 싶었던 하찮고 추악한 날들을 끄집어낼 때마다, 주변을 둘러보며 머쓱하게 화면을 감추는 건 아직 솔직한 나를 감싸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야 겨우 털어낸 감정들을 꺼내어 돌아볼 때면, 울컥하며 눈시울을 붉힌다. 다 낫지 못한 마음이 언제쯤 전부 이겨내고 일어설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계속해서 과거를 되뇌는 일이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안다. 그 때문에 자세하게 쓰지 않고 최대한 간결하게 나의 과거를 적고자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남들이 궁금해할 법한 한 줄을 쓰는 것조차 많은 기력을 소진해야 하므로.



  힘들 때마다 노래를 들었다. 포털 사이트에서 수많은 노래를 찾고 알고리즘에 이끌려 마주한 아티스트가 바로 ‘심규선’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호소력 짙고 감정적인 목소리가 좋아 특정 곡을 듣다가, 이제는 절판된 앨범까지 중고로 찾아가며 구할 정도로 좋아하는 가수가 되었다. 그가 써 내려가는 노래의 멜로디도, 가슴을 적시는 가사까지 한 소절도 놓치지 않고 품에 끌어안고 싶을 만큼.



  심규선 씨의 노래를 들으며 많은 위로를 받고 영감을 얻었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곡이 바로 오늘 인용한 노래 ‘Inner’였다. 오늘의 글은 아티스트 심규선에 대해 적는 게 아니니 최대한 줄이려고 하지만, 그가 노래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위로했는지는 노래를 들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굳이 오늘의 글에 이 노래를 인용한 것은, 이 노래의 가사가 너무나도 내 심정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모든 가사를 인용하고픈 마음을 꾹 눌러 참고 적은 첫 소절에 흔들린 사람이 있다면, 나 역시 노래를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더 적고픈 이다음 가사들이 얼마나 나를 울고 싶게 만들었는지, 5분이라는 길지만 짧은 시간이 어떤 감정을 가져다주었는지는 들어본 자들만이 느낄 수 있기에. 우울증을 겪고 삶에 회의를 느낀 사람들의 심정을 공감케 한 노래는 경험해 본 자만이 적을 수 있는 가사들이었다. 우울하고 처지는 노래에 함께 잠겨 드는 게 아니라,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노래이기 때문에 더욱 위로되었다.



  각설하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지금도 찾아오는 우울을 이겨낼 수 있는 건 나의 의지와 주변인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지고 싶다는 의지, 우울에서 벗어나겠다고 다짐하는 마음은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건 아니었다. 틀어진 일상을 다시 재조립하고 햇빛을 보며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일. 이 당연한 일상을 해낼 때마다 결코 보지 못했던 긍정적인 감정들이 피어오른다. 어느덧 불안과 불만은 발밑 아래 그림자와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내일은 무얼 할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오랫동안 잠겨있던 물속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알게 되었다.



  이 당연한 일과조차 이뤄내지 못해 시작부터 포기한 자들이 많다는 걸 안다. 나는 친구들의 조언으로, 전문가와의 주기적인 상담으로 겨우 발을 뗄 수 있었다. 누군가는 병원을 다니며 약물치료를 병행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휴식과 명상을 통해 안정을 찾으려고 애쓴다. 무기력에 지는 대신 이 기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일이 훨씬 더 의미 있고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병을 인식한 순간부터 병원을 찾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이겨내지 않았기 때문에 부러 다른 방법들도 거론했다.)



  우리는 자신을 좀먹는 우울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차적인 단계를 벗어나야만 희망을 찾고, 행복한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나 역시 이렇게 말하지만, 누군가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을 회피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행복해질 수 있는 법을 알았고, 언젠가는 순수한 일상의 즐거움에 가닿기도 했다. 어느 날은 뜀박질하고, 어느 날은 몇 발 기어가다 그대로 드러눕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잠드는 날이 있어도,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니 나처럼 우울을 겪은 자가 있다면, 아직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포기하지 말라는 짧은 위로를 내어주고 싶다. 하고픈 말은 많지만, 결론은 단 하나뿐이다. 이겨내고 싶다면 스스로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 우울이라는 감정에 지지 말고, 매료되지 말고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 상태인 행복을 되찾기 위해 집중할 것. 계속 끌어안고 있어 봤자 망가지는 건 결국 나 자신이기 때문에.



  당신에게 필요한 그 모든 것들은, 사실 그 안에 전부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라며. 당신 안의 부드러운 힘으로 오늘 역시 이겨낼 수 있기를.






매주 토요일, 좋은 노래와 함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3~5분에 달하는 노래 한 곡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를 가져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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