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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은진 Oct 13. 2023

고오급 문화 생활을 누리는 중입니다

OOO만 봤을 뿐인데 백만 원이 날아갔어!




MZ들의 여가 생활이라 하면 다들 뭐가 먼저 생각나시나요? 요즘은 나이고 성별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손에 스마트폰을 달고 다니죠. 그래서 취미가 무어냐 물으면 '휴대폰' 이라고 답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정확히 휴대폰으로 뭘 하냐 물으면 게임하기, SNS, 인터넷 서핑 등….



그 손바닥만 한 전자기기로 할 수 있는 건 또 어쩜 이리 다양한지,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미있는 웹소설, 웹툰을 발견하면 최신화까지 쭉 정주행을 한다니까요. 지난 추석 연휴에도 그렇게 꼬박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그럼 온라인으로 즐기는 여가문화 말고, 오프라인에서 즐기는 여가를 찾아봅시다. 옛날 자기소개서나 사람들이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독서를 정말 좋아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한 달에 한 권 읽기도 빠듯합니다. 글을 쓰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 더 많이 읽어야 할 책을 오히려 글을 쓴다는 핑계로 읽지 않고 있어요. 자기계발을 위해선 뭐라도 읽어야 할 텐데 요즘엔 그 얇은 시집 한 권 읽기가 참 어렵습니다.



어릴 적과 달리 예전엔 싫었는데 지금은 제법 좋아하게 된 취미도 있습니다. 바깥에 나가서 걷는 게 그렇게 싫었는데, 혼자 노래 들으며 산책하는 게 꽤 즐겁더라고요.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떠드는 것도 재미있고요. 사람들이 없고 조용한 평지나 산책로를 걸으며 커피 한 잔 마시는 게 어쩌다 보니 한 달에 두세 번은 꼭 하는 취미가 되었답니다.



이렇게 돈이 들지 않는 즐거운 취미가 있는 반면, 정신차려보니 사악하게 내 지갑을 빼앗아가는 취미도 있기 마련입니다. 저는 쇼핑이나 음주가무에 그리 많은 지출을 쓰지 않는 사람인데요. 이번 달에 큰 돈이 빠져나갔다 싶어 내역을 살펴보면 그 원인에는 항상 '이것'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브로드웨이에 가서 뮤지컬을 보고 싶어요. (Unsplash, Axel Antas-Bergkvist)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뮤지컬을 그리 많이 보는 편이 아닙니다. 기껏해야 두세 달에 한 번씩 보는 정도이고, 마음에 드는 뮤지컬만 찾아서 봐요. 문제는 그렇게 선택한 대부분의 뮤지컬이 '대극장'에서 열린다는 겁니다.



뮤지컬의 규모와 구성에 따라 가격도 달라집니다. 조그마한 무대에서 하는 소극장 뮤지컬은 정말 저렴하면 3만원 대의 가격에도 구할 수 있는반면, 3층까지 완비된 대형 뮤지컬은 아무리 저렴해도 8, 9만원의 좌석을 구매해야 하죠.



처음 시도하기에는 너무나 두려운 가격. 돈이 없는 학생 시절에 뮤지컬은 저 멀리서만 보아야 했던 취미였고, 유튜브에 올라오는 프레스콜이나 일부 넘버를 듣는 데에만 만족해야 했습니다. 뮤지컬은 영화나 드라마처럼 재방송되는 매체도 아니거니와 DVD를 파는 곳도 몇 없었거든요. (그리고 집에는 DVD 플레이어가 없습니다.)



성인이 되고 내 스스로 돈을 벌 기회가 생기면서, 친구와 호기롭게 첫 대극장 뮤지컬에 도전합니다. 이름하야 '프랑켄슈타인'. 정말 무시무시한 극이었죠. 첫 뮤지컬에 너무 강렬한 선택을 해버려서 똑같은 뮤지컬을 세 번이나 연달아 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당시 그 뮤지컬의 VIP석 가격은 149,000원. 예매 수수료 등이 포함되어 151,000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대극장 뮤지컬의 VIP석 상한선은 190,000원이죠. 여러분 뮤지컬이 미쳤어요!



그 비싸고 교양 있는 사람들만이 볼 것 같은 고오급 취미는 비싼 이유가 있었습니다. 처음 마주한 종합예술에 정신을 못 차린 저와 친구는 그날 새벽이 지나가도록 다음 공연의 양도표를 찾으며 꼬박 밤을 새웠습니다.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과 쾌락에 도파민이 끝없이 상승하더라고요.



눈 앞에서 펼쳐지는 연기, 노래, 춤. 딱 들어맞는 세 박자의 예술과 어우러지는 종합예술. 극 중 펼쳐지는 다양한 무대 연출과 시나리오의 재미, 매력 등… 세 시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저는 무대에 잔뜩 빠져들었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신세계였죠.



요즘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은 브랜드와 명품을 찾는다더라, 충동구매가 심하다더라 뭐라 하지만 정작 그 사이에 문화예술에 사치를 부린다더라 하는 이야기는 없는 것 같습니다. 뮤지컬이라는 문화예술은 생각보다 더 많은 체력과 비용을 요구하거든요. 특히 체력이 없으면 결코 향유할 수 없는 문화입니다.



티켓 값만 비싼 게 아니라, 극장까지 오가는 시간 및 작중 내내 집중하는 시간을 포함하면 최소 서너 시간에서 대여섯 시간은 꼬박 들여야 하는 취미랍니다. 그래서인지, 서울에 오가는 게 일상인 저도 뮤지컬 하나만 보고 와도 그렇게 피곤할 수가 없더라고요.



이런 뮤지컬도 비용의 문제로 마음껏 즐길 수 없는 게 한입니다. 작년 뮤지컬에 소비한 비용을 대략적으로 정리했더니 일백만 원이 훌쩍 넘더군요. 보았던 공연은 열 손가락도 넘기지 못했는데 말이죠! 충격적인 소비 내역에 저는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남들이 술 마실 때 돈을 아낀다고 생각했는데 다 여기에 지출하고 있었더라고요.



지금은 생활을 풍요롭게 만드는 문화생활이 오히려 내 경제습관을 망칠 수도 있다는 사실에 항상 경계심을 품고 있는 중입니다. 11월에 예약한 콘서트와 12월에 예약한 뮤지컬은 예외로 둔 채로 말이죠. 올해는 뮤지컬을 두 번 밖에 보지 않았으니 그러려니 해주세요. 큰 맘 먹고 쓰는 십만 원 단위의 돈은 뮤지컬 밖에 없으니까요. 누구에게나 매료될 수 밖에 없는 취미는 있기 마련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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