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은진 Oct 17. 2023

집사로 살아서 행복해

고양이가 있어 행복하다면 야옹해




저희 집에는 근 6년 째 살아온 유아독존 막내가 하나 있습니다. 무려 셋이나 되는 동생들 뒤치다꺼리 하기에도 벅찬데, 몇 년이 지나도 아기라서 먹는 것부터 싸는 것까지 처리해줘야 하는 매우 손이 많이 가는 녀석입니다. 2017년 여름, 생각지 않게 우리의 가족이 된 반려묘 '라따'입니다.



사진 속에서 라따가 누군지 짐작이 가시나요? 제 프로필 사진에 대문짝 만 하게 박혀있는 것처럼, 아기 고양이(일명 아깽이) 사이에서도 유독 커다란 머리(!)를 자랑하는 삼색 고양이입니다. 라따는 집순이 출신 엄마와 얼굴도 모르는 길냥이 출신 아빠 사이에서 5마리의 형제자매와 함께 태어났어요. 제 엄마처럼 하얀 털을 가진 고양이, 치즈냥이, 고등어 사이에서 삼색이까지. 아주 다양한 개성을 지닌 녀석들이죠.



이 모든 고양이들을 우리 가족이 품었던 것은 아니고요. 낳은 새끼들이 어느정도 자랐을 때 원 집사 분께서 새끼 고양이들을 주변 지인들에게 분양하셨습니다. 사촌 가족이 라따와 함께 자란 형제 수컷 고양이 '뚜이'를 데려왔고, 둘이 3개월 정도를 키우다 라따를 우리 집에 넘겨주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가족의 환영이었죠.




우리 집 고양이 머리 커요...?







그렇게 만난 라따는 도도한 고양이의 기본적 속성을 모두 갖고 있었는데, 만 하루 정도는 베란다에 숨어 집 안을 탐색하더니 그 뒤로는 편안한 그늘이나 의자 밑을 찾아 낮잠을 자기 시작했답니다. 아기 고양이는 정말 잠이 많더군요. 그런데 성묘가 되어서도 잠이 참 많은 걸 보니 고양이가 잠이 많은 건 기본적인 습성인가 봅니다.



고양이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귀엽다'는 감상 밖에 없었던 저와 가족들은 라따와 함께 살아가며 고양이 키우는 법을 알아갔고 반려동물과 교감하는 법을 배웠어요. 이 귀여운 털쟁이 녀석은 우리 가족을 웃게 하고, 때론 사고를 쳐서 골머리를 앓게 하고 질투의 원인이 되거나 싸움을 멈추는 화해 요소로 작용되기도 했습니다. 6년 차 성묘에 접어들면서 이 가족의 먹이사슬과 위계질서를 전부 파악해 느긋한 '진짜 집주인'으로 살아가고 있지요.



그리고 6년 동안 자발적 집사 역할을 수행한 자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라따를 돌볼 때부터 예뻐서 어쩔 줄 몰라하던 집사는 지금도 라따의 애교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입니다. 언젠가 한 번 집 문 밖으로 복도 구경을 나갔던 것이 그리도 신기했는지, 낮이건 밤이건 저를 보면 꼭 나가자고 대문 앞에서 울어댑니다. 무시하고 컴퓨터 앞에서 할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슬그머니 다가와 눈을 마주쳐 줄 때까지 저를 바라봅니다.



그 애처로운 시선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요. 눈을 마주치면 쓰담아달라는 듯 벌러덩 누워 기지개를 켜고, 몇 번 쓰다듬어주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목적지인 문 앞으로 달려갑니다. 따라가지 않으면 중간에 멈춰 서서 '왜 안 와?' 라는 표정으로 또 돌아봐요. 하지만 저는 고집스럽게 문 앞 발코니에서 멈춰 서고, 라따와 기싸움을 하다가 돌아갑니다. 매일 반복되는 패턴이에요.



그렇게 기싸움을 하고 있으면 이 고양이는 어느새 다가와 제 다리 사이로 한 바퀴를 돌고, 발 밑에서 또 벌러덩 누워 애교를 부립니다. 제가 반응할 때까지 계속 말이죠! 아주 뻔뻔하기 짝이 없는 녀석을 위해 물 그릇에 새로운 물을 떠다 놓고 사료 그릇에는 갓 꺼낸 건사료 냄새가 배도록 살짝 사료를 섞어둡니다. 간식이요? 간식은 제가 주지 않아도 가족들이 주기적으로 주고 있습니다.



집 안에 라따를 노리는 인간들만 여섯이니 오죽하겠어요. 그 여섯 사람의 사랑 아닌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는 녀석은 여전히 아기같습니다. 돌봄 받고, 돌봄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기며 때론 귀찮다고 인간의 손길을 피해버리죠. 이 고양이와 한날한시를 같이 보내고 있으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것도 몰라요. 휴일 전부를 고양이와 자고, 먹고, 노는 데 써도 아깝지 않죠.



나집사의 고양이 사랑은 앞으로도 여전할 듯 합니다. 연인 간 사랑의 유통기한도 최대 2년 5개월이라는데, 왜 고양이를 향한 콩깍지는 6년이 지난 지금도 벗겨지지 않는 걸까요? 이 앙큼하고 도도한 녀석에 대해 설명하려면 고작 한 페이지 분량의 원고로는 모자랍니다. 언젠가는 라따 탐구 생활에 대한 상세하고 TMI 가득한 브런치 시리즈를 가져올게요.

이전 15화 MZ 아니고요 아날로그인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