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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은진 Apr 17. 2021

어느새, 그 간격에 담긴 것들

장필순, <어느새>

시간은 사랑하는 사람마저 빼앗아

나를 상심하게 만들었지만 어느새

이제는 가슴 시린 그런 기억조차도

모두 깨끗하게 잊어버린 무뎌진 사람이 돼가네


장필순, 어느새












 하루가 더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날도 있고, 돌이켜보면 굉장히 느리게 흘러가는 날도 있다. 공통점이 있다면 결국 시간은 공평하게 흘러가 전부 과거가 되어버린다는 점뿐일까. 훌쩍 지나가 버린 시간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기에,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어릴 적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시간의 무게를, 지금은 얼마나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가. 이른 아침에 눈을 떠도 시간은 훌쩍 지나가, 어느새 눈을 깜빡이면 밤이 되어 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어느새 2021년의 3월이 지나갔다.



 어느새, ‘어느 틈에 벌써’라는 뜻을 담고 있는 단어. 의식하지 않은 사이에 흘러가고 만 것은 시간뿐만이 아니다. 세상도, 사람도, 한 자리에 오래도록 서 있는 물건들까지 뒤바뀌어 버렸다. 10년이 지나면 강산도 바뀐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어느 틈에 벌써 이뤄둔 것보다는 놓쳐버린 것들이 참 많다고 생각한다. 월초에 세워둔 계획이 밀리고 밀려 기억에서 잊혔다던가, 더 친하게 지내고 싶은 인연이 있었는데 멀어져서 서먹해졌다든가 등등 다시 붙잡으려고 해도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은 미련으로만 남아버린다.



 짧고 긴 하루 속에서, 바람처럼 지나가 버리는 세월 속에서 빼앗겨버린 것도 있다. 다시 붙잡을 수 없는 인연 중에는 떠나가 버린 사람도 있었다. 항상 다니던 단골 가게가 소식도 없이 망해버리기도 했고, 사소하게는 신청이나 참가해야겠다고 생각한 프로그램이 어느새 끝난 경우도 있었다. 어느새 사라지고 달라지고 새롭게 생겨난 많은 것들이 기존의 삶을 변화시키는 순간, 또 하나의 세계가 끝나고 시작된다.



 그리고 나는 약 2주 전, 하나의 세계를 잃었다. 거창하게 세계라고 표현했지만, 정확히는 내가 사랑했던 단골 가게를 잃었다는 이야기다. 청소년 때부터 친구들과 함께 자주 다녔던 동네 카페인데, 사장님도 우리를 기억하고 서비스를 종종 주실 만큼 관계가 좋았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눈에 들어온 카페의 인테리어도 아직 기억한다. 음료를 각자 한 잔씩 시켜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몇 시간이고 카페에 붙어 있던 때도 있었고, 작가가 된 후로는 매일 노트북을 들고 와 마감을 하기 위해 키보드를 불이 나게 누르기도 했다.



 사장님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오랫동안 카페 붙박이처럼 있는 우리가 귀찮을 법도 했지만, 우호적으로 우릴 반겨주셨기에 우리 역시 ‘단골 카페’로 지칭해 매일 그 카페를 드나들곤 했었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가 갑자기 터지면서 우리는 몇 달간 서로를 만나지 못했다. 카페에서 직접 만든 밀크티와 민트초코 음료가 무척이나 그리웠지만, 코로나가 종식될 때까지 우리는 철저히 방역 수칙을 지켰다.



  그러다가 상태가 좀 완화된 뒤에야 오랜만에 카페를 가게 되었고, 이전만큼은 못하더라도 단골 카페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려고 했다. 카페의 발전을 위해 리모델링을 하거나 새로운 메뉴를 추가하는 등 사장님의 노력도 돋보였고, 우리 역시 편안하고 점차 발전하는 카페가 좋았다.



 그렇게 약 3~4년간 인연을 이어왔는데, 어느 날 카페에 가보니 문이 닫혀있는 것이었다. 배달 앱에서도 카페 목록이 사라졌고 임대, 폐업 같은 종이도 붙여 있지 않아 의문이 들었다. 며칠 주변을 돌아봤지만 카페의 문은 그대로 닫혀 있고 어디에서도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고작 카페 사장과 손님의 관계였지만 우리의 추억이 담긴 좋은 카페였는데, 어느새 가지 않은 사이에 문을 닫아버렸다는 게 허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했다. 인근에 사는 사람들과 학생들이 자주 오가는 카페라 언제까지고 장성할 줄 알았더니만 코로나의 여파에 밀려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카페에 대한 미련은 이제 접어두어야겠지. 2주가 지났는데도 그 카페가 생각나 안타까운 마음만 든다.



  추억이 담긴 장소에도 이렇게 많은 회의와 감정이 드는데, 사람은 어떠할까. 떠나간 사람들을 생각하면 글이 울적해질까 봐 부러 말을 꺼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들과 함께한 지난 시간을 생각하면 깊은 관계가 아니었더라도 울컥하고 마는 것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연극부를 지도했던 강사 선생님이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장례식장에 갔는데, 영정사진을 보는 순간 울컥해서 유가족들이 있는데 엉엉 울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실례인 행동인지도 모르고 갑자기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무섭고 두려움이 들어 울었던 것 같다.



 친족들을 하나둘 떠나보낼 때도 식장에서 눈물을 흘리거나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은 점차 잠잠해졌지만, 그때를 다시 떠올릴 때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상심한 마음 역시 어느새 시간이 흐르고 나면 무뎌지는 걸까?



 처음 ‘어느새’라는 노래를 들은 건 가수 백예린의 리메이크 영상이었다. 참 잠잠하면서도 쓸쓸한 느낌을 주어 원곡도 들어봤는데, 옛날 곡이어서인지는 몰라도 원곡이 더욱 쓸쓸하고 가라앉은 도시의 새벽을 떠올리게 하는 것 같았다. 반복되는 가사 속에서 느껴지는 무기력, 혹은 세월에 찌들어 무덤덤해진 것들이 오히려 가슴 아프게 느껴지는 요즘. 어느새 내 나이도 희미해지고 그리움도 지워져 버리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의 나는 무엇으로 버티고 무엇으로 살고 있을까?






매주 토요일, 좋은 노래와 함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3~5분에 달하는 노래 한 곡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를 가져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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