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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은진 Apr 24. 2021

21번의 봄과 N0년의 생일

백예린, <Square>

“Come on let’s go to bed

“나와 같이 침대로 가자

we gonna rock the night away!

우린 이 밤을 신나게 보낼 거야

who did that to you, babe

누가 너에게 그런 짓을 한 거야

If you’re not in the right mood to sleep now then,

네가 당장 잠들 수 있는 기분이 아니라면

Come on, let’s drink and have very unmanageable day”

나와서 나랑 마시고, 감당하기 힘든 하루를 보내자”     


백예린 – Square











       

21년도 21일의 21번째 생일! 거창하게 말했지만 사실 전날까지도 기분이 안 좋았다. 생일 당일에도 기분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던지라, 이제 막 지나가는 자정을 보며 글을 적고 있다. 벌써 21년이 된 게 믿기지 않고, 내가 21살이 된 게 믿기지 않고……. 태어난 날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지만, 역시 누군가에게 축하받고 싶은 날임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너무 바쁘고 피곤한 해의 연속이라 그런 걸까? 공부와 일에 찌들어 퇴근한 생일 전날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케이크 대신 햄버거를 먹겠다는 변덕을 부렸고 굳이 피곤한 엄마를 끌고 함께 햄버거를 잔뜩 구매했다. 햄버거 냄새에 침이 고일 법도 하건만, 요새 먹고 있는 약효가 너무 강한 탓에 입맛조차 돌지 않았다. (하지만 햄버거는 다 먹었다. 당연하다. 먹고 싶었으니까.)



내가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않은 걸까 곰곰이 생각하다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일찍 생일상을 차리기로 했으므로, 반강제로 눈을 떠서 아침상으로 여섯 개 얹은 햄버거 상에 앉았다. 물 대신 미역국을 먹고 생일 초를 대신할 향초를 켜서 생일 축하를 받았다. 일반적인 축하와 다르지만 아침의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아침부터 햄버거랑 미역국을 동시에 먹어본 적 있는 사람? 미역국에 아무것도 넣지 않아서인가, 궁합이 꽤나 괜찮았다.     


전날 저녁에 햄버거를 먹고, 아침에도 먹고, 점심에도 먹고 일을 나가고……. 생일과는 별개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기에, 집에 돌아오니 저녁이 훌쩍 지나있었다. 늦은 저녁을 먹고 피곤함에 찌들어 누워 있다가 일어나니, 생일이 고작 몇 분밖에 남지 않은 것 아닌가! 사실 축하받을 사람들은 진작 축하 인사를 보내줬기 때문에, 나 역시 아쉬운 마음으로 내 생일을 보내주기로 했다.



사실 지난 생일들도 거창하고 화려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이상할 정도로 기분이 좋지 않아서 나 스스로도 의아했다. 모두가 바쁜 삶을 살아가고, 매년 돌아오는 생일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데 말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내 생일을 알아준 사람들의 축하를 받고,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아 이어폰을 꽂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었다. 좋아하는 것을 걱정 없이 먹고 즐기고 멋대로 하루를 지내고픈 마음이었다.



이제 여름이나 다름없는 날씨, 버스 안에서 맞는 더운 바람이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버스가 경쾌하게 출발하며 시작한 노래 역시 신나게 첫 박을 울렸다. 백예린의 청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묘한 슬픔을 건드리면서도 밝고 청량한, 마음을 적시는 시원한 여름비 같은 노래였다. 마치 지금의 나를 위로해주는 듯한 가사를 몇 번이고 눈으로 읽으며, 그제야 입가에 미소를 띨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이 가사처럼, 내 기분을 얼마든지 헤아려주며 달래줄 무언가를 찾고 있던 것은 아닐까? 벌써 지나가 버린 스물한 번의 봄을 위로하고, 한편으로는 앞으로 이어질 수십 년의 계절을 기대하며 내게 속삭여줄 기대 어린 말들을. 발음만큼이나 달콤한 케이크를 잔뜩 받고, 부드러운 침대 위에 녹아들 듯 누워 기분을 들뜨게 할 샴페인이나 칵테일 따위를 전부 마시고픈 기분이었다. 물론, 학교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린 순간 그 비일상은 눈 녹듯 사라진 상태였지만.



친구와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에 너무 피곤해서 표정이 좋지 못했다.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냐는 말에는 고개를 저었으나, 어기적어기적 집으로 들어가 힘겹게 저녁을 먹을 때도 뭐가 문제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의 일과를 전부 마치고 돌아와 앉으니, 문득 호르몬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이맘때 정혈이 시작될 것 같기도 하고? 정혈 전 증후군(PMS)으로 인한 기분 저조라고 생각하니 모든 게 이해가 되는 게 아닌가!



그래서 기분이 나아졌다.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호르몬에 따른 감정 변화는 꽤나 심오하고 사실적인 것이라 백 퍼센트 확신하지는 못해도 ‘아마’ 맞을 것이다. 이유가 이게 아니면 어떤가. 피곤해서 신경이 예민해졌다면 자고 일어나면 되고, 먹고 싶은 걸 먹지 못해서라면 먹으면 되는걸!



뭔가 노래랑도, 생일이랑도 전혀 관련 없이 흘러가는 글 같지만 오늘의 기분은 꼭 ‘스퀘어’ 같다. 네모나게 각진 것이 뾰족뾰족 모서리를 숨기며 굴러가다가, 어느새 둥그런 원이 되어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 매년 맞이하는 생일은 내가 또 일 년을 견뎌냈다는 뜻이 되고, 21번의 봄을 마친 시간은 22번을 향해 나아간다. 각진 네모를 깎아내고 깎아내 다시 원이 되듯이.



제대로 된 축하를 받지 못해 우울하다는 나에게, 친구는 앞으로 80년도 생일이 더 남았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가 진정으로 독립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지난날의 로망대로 맛있는 케이크를 잔뜩 사고 선물도 주고받기로 약속했다. 어쩌면 나는 어릴 적부터 생일에 대한 결핍이 있었던 것 같다. 모두에게 축하받아야 할 날이라 명명했으나 실제로는 그렇게 환대받지 못했기 때문에. 욕심 많은 아이라 주변 몇 사람의 축하와 케이크 하나로는 만족 못 했던 것이다. 그 욕심이 어른이 될수록 더 크게 자라나서, 지금 이렇게 섭섭해하는 건 아닐까?



솔직하게 나를 돌아보니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무슨 이야기를 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하든,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든 이 노래의 가사처럼 나도 내가 사랑받을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걸 안다. 그럼에도 내게 따뜻한 말과 행동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조차도 알 수 없는 마음을 달래주고 끝내주는 밤을 보내줄 이와 함께 한다면, 그거야말로 매일이 생일일 테니까.



그러므로 내일은 케이크를 먹어야겠다. 당일에 먹지 못한 하루 늦은 케이크를 한 조각 크게 먹고, 미처 주문하지 못한 바닐라 쉐이크를 입 안 가득 차도록 마시고 싶다. 어제는 땀이 날 만큼 더웠으니 이번에는 푸른 하늘의 여우비가 내리면 좋겠다. 그리고 내년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어서, 케이크 한 개가 아니라 두 개, 세 개씩 사서 내 생일을 축하해야지. 수고했다, 21살의 생일!





매주 토요일, 좋은 노래와 함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3~5분에 달하는 노래 한 곡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를 가져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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