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아닌 누군가와 여행을 시작한 건 올해 초의 일이다. 이전에는 혼자만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타인과 여행지에서 시간을 보내길 거부했다. 20대가 되고 대부분 혼자하는 여행을 고수했다. 특히 오랫동안 알고 지내지 않은 사람과는 여행지에서 함께하길 절대 거부했다. 그러다 Y를 만났다. Y와는 여행지에서 처음으로 얼굴을 맞대고 얘기했다. 물론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어느 정도 알고 지냈지만 그래도 처음 교류하는 사이였다. 우려와 다르게 목소리도 모르는 사람과 몇날 며칠을 보내는 일은 생각보다 부대끼지 않았다. Y와 나눈 시간 덕분에 난 그간 가졌던 ‘독립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는 사람’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편견을 깼다.
그 뒤로 M, D, 다른 M, 다른 Y까지 내가 있는 곳으로 와 시간을 나눠주었다. 가끔은 내가 다른 곳으로 가기도 했다. 그렇게 J와 J, M과 G, J와 M과 S를 만나 더없이 충만한 시간을 보냈다. 여행마다 나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사랑은 강하다는 것, 용기와 솔직함은 언제나 이긴다는 것, 서로 다른 시간을 같이 통과하는 사람은 어딘가에 있다는 것. 그리고 일상에서 자주 잊게되는,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여행에선 언제나 새로이 감각한다.
스웨덴의 회화 예술가 힐마 아프 클린트는 비교적 최근에서야 세계 최초의 추상화가로 이름을 알렸다. 칸딘스키, 몬드리안보다 앞섰던 클린트의 작업을 나는 대학원 수업에서 처음 접했다. 그리고 여름에 간 글래스고에서 J와 J의 추천으로, 영국 테이트모던에 방문했을 때 기획전의 일부였던 클린트의 그림을 마침내 하염없이 감상했다. 거대한 벽을 꽉 채운 동그라미들과 구불구불한 곡선을 눈으로 열심히 쫓았다. 부드러운 색감에 마음까지 말랑해지다가도 압도되는 크기에 숨이 턱 막히거나 가빠지기도 했다. 그리고 한 가지 재밌는 점을 발견했다. 클린트의 선은 비대칭이다. 누가 봐도 사람이 그린 그림이라는 점이 날 매료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클린트 그림의 특성은 대칭성이다. 반으로 나뉘어 색깔의 대비를 만들고 그 안에서 조화를 찾는다. 정확성을 목표로 하지 않는 대칭성은 삶과 닮은 것 같다.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오랜 시간 자신의 길을 걸은 작가는 시간을 건너 내게 위로와 용기가 됐다. 클린트의 그림처럼, 나는 삶이 주는 어지러움 속에서 패턴을 발견한다. 삐뚤빼뚤 뭐 하나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은 없지만 한데 모아두면 이질감을 찾기가 더 어려운 작가의 그림을 볼 때 난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의 그림은 길을 잃고 방황하던 내 주변인들이 가까스로 한 곳에서 만나 마음을 나누는 순간같다.
한 해의 끝자락을 맞이하며 가장 최근 한 여행에서 다른 Y와 함께 우릴 살린 여자들 이야기를 했다. 늘 한 곳에 있으면서 혹은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며 무언가를 계속 나눠주는 여자들. 클린트의 그림처럼 곡선으로 움직이지만 그런 건 상관 없다는 듯이 점 하나에서 반드시 만나는 사람들. 다가올 새해에도 생을 다시 마주하게 만드는 그들에게 베풀고 빚지며 살 예정이다. 권위있는 누군가에게 발견되든 말든 자신의 길을 가는 힐마의 정신을 이어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