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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재 Nov 12. 2023

무너지지 않는 집, 서도호

나는 집이 없다. 내 한 몸 뉘일 공간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치만 온전히 쉴 수 있는 공간은 없다고 느껴진다. 지금 사는 집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위치한다. 비싼 집값 탓에 타인과 집을 공유해야 하는 구조가 지배적인 이곳은 내게 집으로 인식되기엔 불편한 점이 더러 있다. 방광이 터질 것 같을 때 누군가 화장실을 점유하고 있다든가, 태운 요리를 다 갖다 버리고 다시 도전하기엔 눈치가 보인다든가. 가끔은 옆집의 싸움 소리가 잠을 방해하고 내 쪽 공간은 건물로 사방이 가려진 탓에 창밖의 날씨와 실제 날씨는 자주 다르다. 한국으로 돌아가도 상황은 별로 다르지 않다. 나는 얇은 벽 때문에 밤 늦게 통화할 수 없고 창 밖을 볼 수 없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비밀스레 밤늦게 나갔다 늦은 오후에 돌아올 수 없다. 그래서 난 집이 없다.


한국의 설치 예술가 서도호는 이런 복잡한 심경이 담긴 집이라는 공간을 탐구한다. 다만 특이한 점이 있다면 서도호의 집은 얇은 실의 짜임으로 만들어져 반투명해 속이 훤히 보인다는 것이다. 물도, 빛도 막아낼 수 없고 혹여나 날카로운 물건에 찢기진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서도호의 집을 화면 너머로 마주하고 처음 든 감정은 아늑함이다. 그리고 뒤를 이어 아늑함에 대한 그리움이 찾아온다. 돌아가고 싶은 곳이 생각나 가슴을 쿡 찌르기도 하고 내가 한 때 속했던 곳에서의 좋았던 기억이 생각나 마음이 푸근해지기도 한다. 서도호의 작업 앞에서는 내 마음이 반투명 천으로 만들어지기라도 한 듯, 그 속이 훤히 내비춰지는 기분이다. 그리고 내 취약성을 들킨 채로, 더 드러내도 될 것 같이 안심된다.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서도호, 2013


미국의 3층 건물 안에 한국의 한옥이 자리잡았다.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에서는 집이었던 곳이 켜켜이 쌓인다. 반투명 천 너머로 아득해지는 실 한 올 한 올이 기억의 파노라마와 중첩된다. 정교한 구조와 마감이 완성하는 집의 영혼, 유령, 환영 같은 형체를 보고 있자면 으스스해지기도 한다. ‘이 건물에 생명이 산다면,’ 상상하며 그 하나 하나의 삶이 어떨지 궁금해진다. 내부와 외부의 서로 다른 건물 양식은 작가의 혼란, 뒤섞인 정체성, 물리적 거리가 일으키는 그리움 같은 걸 짐작케 한다. 그를 위로하며 나도 덩달아 위로받는다. 결국 작가는 집, 그리고 그 안에서의 기억이 주는 힘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어릴 때부터 해외로, 다시 한국으로 장기 단위 이동을 한 기억이 많은 나는 서도호의 작업을 만나고 위로받았다. 작가의 작업을 결국 내가 위치한 곳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보다는, 내가 만들고 기억한 장면, 감정, 감각이 중요하다는 말로 받아들였다. 2023년 4월, 마르테 오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사람이 불과 몇 초 전에 발생한 일에 대해서도 기억을 왜곡해 저장할 수 있다는 단기 기억 착시 현상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즉, 사람은 기존 지식이나 자신이 기대하는 바에 따라 상황을 재구성해 기억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든 원하는 방향으로 기억을 재창조하고 저장할 수 있다는 뜻 아닐까.


로마 제국의 작가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는 “마음이 있는 곳이 곧 집이다 (Home is where the heart is)”라는 말을 남겼고 이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 제목으로도 유명한 말이다. 난 서도호 작업의 중심 주제, 인간 기억력의 한계와 함께 이 말을 간직하고 살려고 한다. 접었다, 폈다, 다시 접어서 어디든 가져갈 수 있는 기억으로 만든 집. 마음 속에 그런 집을 품고 산다면 어디에 눕든 그곳이 내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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