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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Jan 19. 2022

호주, 에너지 넘치는 '해양 구조대' 이야기

바닷가 생명구조에 나서는 자원봉사자들.

한동안 바닷가에 머물다 왔다. 호주의 유명한 국제적 관광지인 그레이트 오션 로드 (Great Ocean Rd) 일대의 바다를 떠돌며 놀던 어느 오후, 앵글시(Anglesea)라는 바닷가에서 벌어진 이색 대회의 모습이 흥미롭고 새로워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이름하여 해양 구조대(Life Guard)들의 기량을 겨루는 친선대회였다. 

호주는 알다시피 섬나라이고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대륙도 섬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노상 바닷가에 나와 놀거나 일하는데 그런 만큼 안전사고도 자주 일어나므로 그들을 돌보는 해양 구조요원들을 무수하게 양성하여 곳곳에 배치해 놓고 있다.     

가령 지난 한 해 동안 호주에서는 근 400여 명이 바다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1천여 명이 안전요원들에 의해 구조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조난자들은 대체로 수영을 못하는 초보자들이 아니고 의외로 너무 잘해서 바다 멀리까지 갔다가 자칫 파도에 휩쓸리거나 급류의 방향을 잘못 읽어 헤쳐 나오지 못하거나 하는 경우가 많단다.     

예를 들면, 급류에 휩쓸릴 때 사람들은 멀리 보이는 육지를 향해 급하게 수영을 하는데 이럴 때일수록 파도를 타며 육지와 평행이 되도록 수영을 해야 한단다. 근데 이게 말이 쉽지,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매우 부담되지 않겠는가.  

그러니 초보자건 능숙자건 조난의 위험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고 실력 있는 구조요원의 수요는 대단히 높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각 해수욕장에 있는 비치 클럽들은 다양한 연령과 성별의 자원봉사자를 모집하여 맹렬하게 훈련시키고 현장에 투입한다. 유아부터 성인까지 남녀노소 자원봉사자들이 바다와 해양 스포츠를 사랑하는 마음과 인명을 구한다는 자부심으로 구조 훈련에 임한다.  

어릴 때부터 (훈련 프로그램은 초등학생도 참여한다.) 보드를 타기 시작해서 (유아용 보드 말고) 거의 매 여름 매 주말마다 혹은 바닷가에 생업을 정해놓고 거의 매일 바다에 나와 살며 훈련 내지는 단련, 시합 혹은 실전을 하며 사는지라 아마추어라 해도 선수급 기량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각 바다의 그런 클럽들이 훈련을 점검하고 홍보도 하고자 이날 한자리에 모인 것이었다. 그러니 조용하던 평소의 바닷가 모습과는 달리 울퉁불퉁한 근육질에 구릿빛 피부를 자랑하는 이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핑크색(다소 어울리지 않는 색상) 유니폼을 입고 여러 종목에서 열띠게 시합을 했다.    

대략 시합은 3가지 종목으로 분류되는 듯했다. (그저 눈으로 한 번 보고 적는 것이라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1. 파도가 다소 깊은 곳에서 보드를 타고 이십여 미터 나아가 구조를 마친 뒤 돌아오는 것. 

2. 물이 얕은 곳에서 보드를 옆에 끼고 백여 미터 전력 질주 한 뒤 파도가 깊어지면 보드를 타고 

백여 미터 헤치고 나가 구조를 마친 뒤 돌아오는 것. 

3. 보트에 4명 내지 8명이 타서 파도를 헤치며 노를 저어 백 미터쯤 나아가 구조를 마친 뒤 돌아오는 것. 


어느 종목이건 쉬워 보이지 않았다. 일단 보드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성인 남자가 두 손으로 들기도 버겁다. 그런데 그걸 날렵하게 한쪽 옆구리에 끼고 (중심 잡기도 쉽지 않을 텐데) 우샤인 볼트처럼 전력질주로 달린다. 평지가 아닌 거친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깊은 곳으로.... 사실 파도가 드센 곳은 그냥 서 있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10대 소녀들이나 젊은 처자들이 남자들과 동등하게 훈련하고 인명구조 작업에 뛰어드는 것을 보며 

성차별이 적은 사회에서 여성들의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란 생각도 들었다. 이곳엔 배 타고 떠난 남자를 기다리다가 돌이 되어 버릴 여자는 없는 듯하다. 파도를 헤치고 나가 잡아오거나 같이 배를 타고 나갈 것이다.     

사실 새해 첫날 '라이프 오브 파이'란 영화를 보고 바닷가에 나와 있자니,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엔 대한 상념이 그치질 않았는데, 이런 구조원들이 어떤 해안가에는 있다는 것이 안심이 되기도 하고 

나도 이 참에 체력을 좀 다져볼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이들은 스스로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하고 호주 사회에서도 이들의 업적을 굉장히 치하한다. 이들의 구조활동을 보여주는 티브이 프로그램도 있다.('경찰청 사람들' 같은) 사실 아무리 자기가 좋아서, 잘해서 하는 일이라지만 자기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데 자원봉사자로서 파도에 뛰어든다는 것은 실로 대단하지 않은가!     

게다가 잘 단련된 에너지 넘치는 균형 잡힌 육신도 아름다우니, 정신도 육신도 멋진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던 오후였다. (2013/01/10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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