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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Dec 08. 2021

호주 시골, '마을 발전 위원회'가 하는 일

타운 파티(Town Party)의 미덕 3가지

며칠 전 스킵튼 ‘타운 파티’를 다녀왔다. 한국으로 치자면 시골의 마을 잔치쯤이 될 듯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마을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 해를 정리하는 연례행사인데 마을 발전 위원회가 주관을 했다. 지난 두 해와는 달리 날씨까지 푸근해 동네 축구장 잔디에 둘러앉아 가족과 이웃들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내가 이 파티에서 생각했던  미덕 3가지와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 가는 주민들의 모습을 사진과 함께 나눠 볼까 한다.

  

1.    건전 


호주의 연말 모임들엔 늘 가족이 중심에 있다. 남편의 직장모임 아내의 취미 모임 자녀의 학교 모임 등등에 가족들이 몰려다니는 경우가 많다. 가족 모임이라 해놓고 어느 순간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갈라서 노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가족 단위로 뭉쳐서 다른 가족과 만난다. 

그래서인지 모임이 건전하다. 술 취해서 흥청망청 하는 이도 없고 떠들썩할 것도 없다. 이런 모임을 통해 아빠 동료도 만나고 아들 친구의 부모도 만난다. 이웃 간 세대 간의 친밀함이 쌓이고 아내나 남편의 또 다른 생활 반경을 알아가는 시간이다. 매일 집에서 서로 얼굴을 보는 가족이라도 이런 자리에 나와보지 않는다면 상대를 충분히 다 알 수는 없을 것 같다. 

나와 내 가족의 존재와 자리를 새롭게 이해하고 이웃과 사회가 눈에 들어오면서 시야도 넓어진다. 학교와 마을 사회 일을 의논하면서 관여하고 기여도 하게 된다. 모든 개인은 궁극적으로 공동체와 더불어 산다는 것을 실감하는 시간이다.  

나는 한국사회에서 야기되는 많은 문제들이 가족 구성원이 서로의 삶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녀가 아버지를 모르고 남편이 아내를 모르는데 어떻게 가정이 소통하며 바로 서고 사회가 화합하여 모든 구성원이 공동의 선을 추구할 수 있을까! 

올해는 버스커(Busker:거리의 예술가. 길에서 모자 앞에 놓고 연주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하는)를 

초대해서 간단한 서커스를 관람했다.  아이들이 축구장 잔디에 누워 진지하게 보고 있다. 버스커에 의해 불려 나온 아빠들이 서커스 진행 보조를 열심히 했다.  

외발 자전거 위의 버스커에게 칼 던지는 옆집 엄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묘기에 웃음과 탄성이 따른다. 

맥주 한잔 걸치고 좋아라 하는 아들 친구 아빠의 웃음이 저리도 해맑다.

어여들 와서 드시게. 노인네가 이거라도 해야지. 나도 젊어봐서 아는데 일하고 애 키우느라 정신없더라고...

2.    솔선수범, 평등 


저녁은 소시지 바비큐였다. 식빵에 구운 소시지 얹고 볶은 양파 약간 케첩 한 줄 뿌리면 끝이다. 동네 슈퍼에서 후원한 음료수 캔 하나 마시고 아이들은 산타가 건네준 몇 개의 스낵을 얹어 먹는다. 사람들은 자기가 마실 맥주나 커피 등등을 피크닉 가방에 싸 들고 온다. 매우 간단하지만 제법 맛있고 한 끼로 적당한 양을 먹을 수 있다. 과식, 음식 낭비, 모임 준비를 위한 과잉 노동, 과음으로 흥청 되기 쉬운 연말에 이 얼마나 합당한 메뉴인지.  


그런데 소시지를 굽는 이들은 마을의 할아버지들이다. 동네마다 지부가 있는 라이온스 클럽 회원들인데 이들은 나이를 잊고 마을의 온갖 궂은 일과 봉사를 자원한다. (한국의 유명 기업인들이 호텔에서 조찬하며 모이는 그 라이온스 클럽과 동일하다.) 80이 넘은 한 할아버지는 몇 달 전 심장에 문제가 있어 바이파스 수술을 하고 몇 번을 중환자실을 들락 이며 어렵게 회복했는데, 이날 소시지를 구우셨다. 아무도 시키지 않지만 스스로 낮은 자리에서 궂은일을 하며 남은 얼마간의 삶도 헛되이 보내지 않고 남에게 보탬이 되며 하던 일 끝까지 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듯했다. 이런 분들을 보며 젊은이들은 절로 고개를 숙이고 또 자신들이 늙었을 때 배운 데로 다시 따라 하게 된다. 


조금 나이를 먹었다거나 지위가 높다거나 더 배웠다는 이유로 목을 곧게 하고 체면과 권위를 내세우며 대접받기를 즐기는 유교적 사고의 한국사회도 좀 변해야 하지 않을까. 여유 있는 위치에 있을수록 힘이 있을수록 섬기는 정신을 배우면 좋겠다. 꼭 노인이 요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지만 이들이 활동 영역을 넓혀 사회에 기여도 하고 존재 가치를 누릴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갈 필요도 있다.

내가 뽑은 올해의 베스트 크리스마스 트리. 5살 미만 아이들 십 여명이 만들었다. 고백컨데 실물보다 잘나온 사진.

3.    검소, 사회참여


먹는 요리도 검소하지만 평상시의 옷차림으로 편하게 와서 즐기는 모습도 자연스럽다. 이날은 아들의 플레이 그룹 모임이 있는 날이기도 했는데, 동네 엄마들과 아침에 이곳에서 피크닉 형식으로 모였다. 파티가 열릴 장소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아이들과 같이 장식하자는 목적이었다. 아이들과 눈물 콧물 발라가며 색종이로 뭔가를 뜯고 찢고 붙였다. 그래서 나온 작품이 짜잔~~ 

열명 가량의 엄마들이 아이들과 이렇게 만든 뒤 너무 뿌듯해하며 커피도 한잔씩 마시고 축구장 한쪽 코너의 놀이터에서 한참을 놀다 집에 갔다. ‘저녁 파티에서 다시 보자’ 인사하며.  

누구 하나 이 구차한 장식을 뭐라 하는 이가 없다. 마음과 정성 참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애나 어른이나 잘 알고 있고 행동으로 실천한다. 동네 아기들과 엄마들이 놀며 놀며 여기저기 장식을 함으로써 파티에 재능기부(?)를 한 셈이다. 돈 안 들어 경제적이고 미술과 사회기여를 배우는 통합교육이 삶의 현장에서 간단하게 이루어졌다. 사교육이 필요 없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건 이렇게 유치원에서 다 배울 수 있나 보다. 


마을 발전 위원회의 주도 아래, 여러 단체와 주민들이 제각기 한몫을 담당해서 함께 일하고 함께 즐기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마을일에 나서니 공동체는 탄탄해지고 발전을 하는 것이다. (2010/12/23 씀)



이건 다음날 갔던 옆마을 리스모 타운 파티 사진. 소방차 타고 와서 아이들에게 사탕을 건네주는 산타. 불 안날 땐 소방수들이 이런 일도 한다.

CFA(Country Fire Authority)-호주는 땅이 넓고 인구는 적다. 마을마다 산불의 위험은 늘 있는데 소방수가 상주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이 자원봉사로 운영하는 소규모 소방서가 전국에 있다. 마을 주민들이 소방 훈련도 받고 비상연락망도 구성하여 함께 일한다. 초등학교에서 소방서를 탐방하여 소방 교육을 받기도 한다. 크리스마스 철엔 산타 할아버지가 되어 동네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일도 도맡아 한다. (차가 빨갛다는 이유로) 이런 모든 일들이 주민들의 100% 자원봉사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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