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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Jun 25. 2021

호주-풋티 맘의 일상은 이렇다.

풋티 클럽에서 했던 생각들.


1. 스포츠에 진심인 사회


호주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스포츠를 꼽자면 단연 풋티(Footy) 일 것이다. 한국이나 유럽에서 축구가 인기 있는 것처럼. 이곳 사람들은 여름이면 크리켓을 하고 (야구와 비슷) 겨울이면 풋티(축구와 럭비를 섞은 듯한 터프한 게임)를 한다. 겨울 시즌이 시작되면 남녀노소 구분 없이 주말마다 자기들이 응원하는 팀의 게임을 보기 위해 스테디움에 가득 모이거나 밤늦도록 중계를 보며 맥주 한잔 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자 행복이다. 그 응원의 정도가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진지한데, 몇 세대를 이어 내려가며 한 팀을 응원하는 것은 기본이고 응원 팀을 바꾸는 것은 종교를 바꾸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하기도 한다.


2. 팀 운영은 프로페셔널하게.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아이들은 걸음마를 떼기만 하면 풋티 공을 굴리며 놀고 유치원 때부터 연령별 팀을 동네마다 구성하여 주 중에는 훈련을 하고 주말에는 여러 리그를 따라 여기저기 이동하며 경기를 치른다. 주 중에 두 번씩 모여 연습을 하는데 코치는 (대부분 자원봉사자 학부모) 기초체력 훈련부터 기술 연마까지 매뉴얼대로 연령에 맞게 체계적으로 가르친다.


시즌 시작 즈음엔 팀 빌딩 모임을 열어 서로를 알아가고 팀워크를 다질 수 있도록 한다. 바닷가에 모여 수영을 하고 바비큐를 하면서 놀거나 볼링을 치거나 하는 것이다. 시즌 중에는 프로팀 선수를 초빙하는 클리닉을 열어 현장에서 뛰는 선수들의 노하우를 배우고 강연도 듣고 영감도 얻는다. 프로 팀은 지역의 어린 선수들을 키우고 팀의 홍보를 위해서 또 재능을 기부하고자 이런 활동들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그래서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유명하고 바쁜 선수들을 동네 꼬마들 운동 모임에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


매 게임마다 베스트 선수를 뽑아 메달을 주고 시즌이 끝날 땐 클럽 하우스에서 프레젠테이션(시상식)을 공식적으로 한다. 연령별 팀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하며 (식비는 각자 냄. 이건 동네 수준에 따라 소시지 바비큐를 하기도 하고  호텔에 모여 정찬을 먹기도 한다.) 각종 선수 시상을 하고 코치나 스태프들에게도 감사를 전하며 시즌을 마감한다.


동네 팀이라 해서 대충 하는 것이 없이 중앙 본부의 방침대로 전국적으로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가령 아이가 이사를 하여 팀을 옮겨도 그동안 쌓아 온 기록들이 그대로 전달되어 새 팀에서 개인 성적을 지속적으로 관리한다. 어린 선수 하나하나를 프로급으로 관리한다고 해야 하나.


3. 지역사회의 지원.


그러나 이 모든 활동이 가능한 건 지역사회의 지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일단 동네마다 축구장이 있고, 클럽 하우스가 있으며 주야간 경기를 치를 수 있는 조명 시설 등등 기반 시설이 온전하다. 지역 정부나 주정부는 사회 체육 시설 관리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스포츠 용품 회사나 동네 상점들도 다양하게 후원한다. 팀마다 마케팅 관리자가(이것도 자원봉사자) 따로 있어 재정과 후원을 모으고 관리한다. 자원봉사로 팀운영을 관리하는 엄마들은 집에서 설거지하다가 지역 정치인과 통화해 내년 스포츠 예산에 대해 협의도 하고 대기업 홍보실과 물품 협찬도 논의하고 한다. 아는 인맥을 찾아다닐 필요도 없고 뒤에서 접대하고 아부하고 뒷 돈대고 할 일이 없다. 모두들 투명하게 소통하고 공정하게 원칙대로 일한다.


그러니 학부모들은 이 좋은 시설에서 안전한 코치로부터 배우고 마음대로 훈련하고 경기 뛰는 비용을 최소한만 지불해도 되는 것이다. 대략 한 시즌 5-6 개월 동안 등록비  250불 + 개인 지출 200불 (신발과 일부 유니폼, 부속 장비)를 지불했다. 호주 물가나 최저 임금을 기준으로 보면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적어도 재능과 흥미가 있는데 돈이 없어 못하는 경우는 없다고 본다. (대략 한 달 10만 원 이하)

4. 풋티 맘을 바라보는 시선


유치원 때 잠시 풋티를 하다 관뒀던 아들이 갑자기 다시 하겠다 하여 올 시즌을 등록하게 됐다. 근 10년 만이다. 나는 선택의 여지없이 다시 풋티 맘이 됐다. 써커 맘이란 말이 있다. 아들 축구장을 따라다니며 자녀교육에 올인하는 극성 엄마들을 좀 비하하는 투의 말로 해석된다.

다른 나라 사정을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호주에서 경험한 풋티 맘들의 (혹은 다른 여러 스포츠를 지원하는 부모를 포함해서) 위상은 상당히 다르다.  코치 트레이너 행정 응급처치 심판 등등 경기 진행에 필요한 모든 요직은 자원봉사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부분은 학부모들이다. 이들은 자기 자녀를 지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동네(공동체)를 대표하는 팀(물론 자녀가 포함되어 있지만)을 위해 재능과 시간을 기부하는 것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스스로 자부심이 크고 동네 전체에서도 이들을 고마워하는 분위기다.

코치나 응급요원처럼 한 시즌을 통 틀어 책임을 맡는 직도 있고 심판이나 물품이동처럼 팀채팅 앱을 통해 그때그때 지원자를 찾는 직도 있는데, 모든 학부모들이 맞벌이를 하는 와중에도 금쪽같은 시간을 내어 운동장에서 시작부터 끝까지 같이 뛴다. 자식을 위한 헌신으로 뛰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마을을 대표하는 팀을 운영하는 것이기에 이기적이지 않다.

이런 지지를 받아서인지 풋티는 성격상 태클이 심하고 거친 면이 있는 스포츠인데도, 막상 선수들은 상대 선수들에게도 온화하며 분위기는 신사적이다. 누군가 넘어지면 상대팀이라도 일으켜 주고 등을 두들겨 준다. 한참 거칠을 십 대들인데 체력을 너무 소진하니 성 낼 기력이 없는 것인가? 어쨌든 스포츠는 여러 이유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꼭 필요한 활동이란 생각을 많이 한다.



5. 일과 삶의 균형.


학부모들이 백수가 아님에도 이 만큼의 시간을 낼 수 있는 건 일과 삶의 균형이 사회적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호주에서는 35시간 이상 일하면 풀타임으로 본다. 탄력 근무로 일찍 퇴근한 부모는 훈련 때도 운동장에 나와 같이 뛰고 주말이면 원정 경기를 위해 장거리 운전을 마다하지 않는다.

게임 내내 몸으로 같이 뛰며 이런저런 뒤치닥 거리를 하는데(등록비가 저렴한 만큼), 부모나 자녀들 모두 만족감이 크다. 자기 자식이 눈앞에서 뛰는 만큼 매 게임을 진심으로 바라보고 응원한다.


아들 다리에 쥐가 났다. 팀 닥터는 이 날 처음 만났는데 아들 친구의 엄마였다. 그녀는 실제로도 스포츠 마사지를 업으로 하고 있단다. 팀으로서는 이런 봉사자가 있는 게 큰 행운이라 하겠다. 커다란 응급 가방을 메고 선수가 넘어질 때마다 내내 같이 뛰는 중년의 이 엄마가 존경스러웠다. 나도 조만간 봉사를 할 기회가 올 것인데 체력부터 다져 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참고로, 이 날 아들은 최우수 선수상을 받았다. 선수들도 학부모들도 모두들 축하와 격려를 쏟았다. 찬바람 맞으며(여긴 지금 겨울이다.) 두 시간 동안 운동장에서 동동거린 보상을 받았다.ㅎ






2023 시즌 우승으로 마무리. 결승전 마지막 2골을 넣은 아들은 생애 최고의 성취감을 맛보았으리라.


호주 스포츠 문화를 더 알고 싶다면 : https://brunch.co.kr/@dreamdangee/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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