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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Feb 09. 2022

한국 vs 호주, 선호하는 ‘배우자 직업’은?

호주 시골 농부 와이프들의 직업을 알고 나서..

호주 시골에서 살면서 놀란 건 이곳 농부(Farmer)들이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었다. 배운 게 없고 달리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하는 것도 아니고 내 자식만큼은 이 일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도 없다. 모이면 하는 일이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면서도 도시에 나가 사는 것보다는 백배 낫고 일이 즐겁다고도 한다. 

이유를 들자면, 대부분의 농부들이 대규모의 농장을 보유해서 소득이 높고, 기계화가 잘 되어있어 허리 한번 못 펴고 일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리라. 또 자기 분야에 관한 한 전문 지식과 실무를 겸비한 나름대로의 고급 인력들이라 자신감이 있는 것 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막상 농장엘 가보면 그들은 다 찢어진 거친 작업복을 입고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온갖 동물 오물 냄새가 진동하는 헛간에서 하루 종일 막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노동으로 잔뼈가 굵은 그들의 거친 손을 보면 농장일의 성격은 어쨌든 블루 칼라 쪽인 것이다.

깡촌의 아이들은 노동을 진지하게 대한다. 담을 맞대고 있는 이웃집 양들을 살뜰히 거둬먹이는 아들. ^^
많이 먹고 쑥쑥 크렴..


맛있네..고마워..
오늘도 보람찬 하루.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이들 아내들의 직업이었다. 전현직 초중고 교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대학강사 등등. 

뽀글대는 곱슬머리를 하고 애 셋을 이고 지고 동네 놀이터에 오는 이웃 마을 여자와 한 번씩 대화를 나누곤 했다. 언젠가 그녀는 조만간 다시 일을 하게 됐다고 했다. 전 직장에서 일주일에 하루씩 일해주기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물었다.


나 : 직장이 어딘데?

뽀글 머리 아줌마 : ** 병원이야.

나 : 거기서 뭐 하는데?

뽀글 머리 아줌마 : 치과 의사야.

나 : 헉, 그래?


많이 놀랬다. 학벌이나 부 직업 따위로 사람을 다시 보거나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이 경우는 내 상상을 좀 뛰어넘었다. 이 깡촌에 사는 농부의 아내가 애 셋을 키우며 살림에 파묻혀 있다가 도시의 그 세련된 종합 병원으로 환자를 치료하러 나간다는 것이.


헌데 이런 경우는 꽤 종종 있었다. 옆집에 사는 남자는 농장의 경운기나 트럭 등을 고치는 수리공이다. 그 아내는 헐렁한 티셔츠, 물 빠진 군복 바지에 투박한 슬리퍼를 끌고 두 살 딸아이를 무등 태운 채 동네를 하릴없이 잘 돌아다닌다. 언젠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얘기가 나왔는데,


군복 바지 아줌마 : 내가 가르쳤던 애들이 어쩌고..

나 : 누구를 가르쳤는데?

군복 바지 아줌마 : 내가 대학 강사였거든.

나 : 헉… 그랬어?


대학에서 조각을 가르치고 지금도 조각가로 활동한다는 소리를 듣고 그녀의 황당 촌티 패션에 무슨 철학이 있는 건가 다시금 뜯어봤는데, 그런 게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런 일이 시골에만 있는 건 아니다.

멜번에 살 때 어느 모임에 가서 처음 만난 멀끔한 남자와 얘기를 하게 됐다. 그의 직업은 수도 배관공(Plumber)이었다. 호주에서 배관공은 한국과 달리 좋은 기술로 인정받고 수입도 좋지만 그래도 하는 일이란 한국처럼 막힌 변기를 뚫거나 하수구를 설치하는 것 등등이다.


멀끔한 남자 : 약혼녀와 결혼하면 둘 다 일할 수 있는 동네로 이사를..

나 : 약혼녀는 무슨 일을 하는데?

멀끔한 남자 : 외과 의사야.

나 : 켁…

나는 순간 생각했다. 그 외과 여의사는 뚱뚱하고 못생겼을 거라고. 그녀가 그 자리에 없어서 확인은 못했지만 곧 나 자신에 놀랐다. 왜 그녀가 쭉쭉빵빵 미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인지. 호주가 직업에 귀천이 없고, 사람을 수직선상에 올려놓고 등급을 매기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지만 한 세대를 한국에서 살아온 내게는 아직도 그런 사고가 유연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내 안에 내재된, 사람의 격을 이런저런 이유로 재는 사고의 버릇이 한순간에 없어지지 않아서이다. 그래서인지 이곳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랑하고 그 사랑을 이유로 결혼하는 ‘당연한’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좋은 집안에서 곱게 자라 초등학교 교사가 된 미모의 어린 그녀가 (25살이었다.) 다섯 살이나 더 어린 고졸 무직자를 결혼 상대자로 집에 데려왔을 때 그녀의 부모님은 딱 한 가지 조건을 당부했다. “직장은 잡고 나서 결혼해라” 이들은 지금 딸을 낳고 잘 산다. 남자도 무슨 일인가를 하기는 한다.


나이 외모 학벌 직업 부모의 재산 등등으로 배우자를 등급화하고 거래하는 한국의 결혼 시장을 멀리서 보고 있자니 답답한 마음이 든다. 온갖 에이전트들이 끼어들어 바가지 쓰지 않고 장사 잘하는 법을 코치하고, 그들이 자신의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만든 공식에 맞게, 젊은 청춘들이 가슴속에 있어야 할 감정을 머리 위로 끌어올려 계산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값싸고도 값진 사랑으로 삶의 동반자를 찾아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가 썩은 돈 냄새 풍기는 시장 바닥으로 변질되어 가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인가? 청춘 남녀들이여, 사랑을 하라! 다시 오지 않을 그 시간에 미치도록 사랑 좀 하라!!!!!  (2010/1/26 씀)


어떤 여자를 만날까?

이 글은 12년 전 결혼정보센터를 통해 등급을 매긴 배우자를 골라 결혼하는 세태에 대한 기사를 읽고 쓴 글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지금의 젊은 세대는 복잡한 현실에 압도되어 아예 결혼을 포기한다 하니 마음이 더 아프다. 경쟁과 계산 계층이 견고해져 순수한 사랑을 허무는 사회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이전 21화 한국 vs. 호주, ‘노동환경’은 어떻게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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