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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Aug 01. 2023

유럽 여행과 시할아버지의 죽음

계획과 사건, 예측과 변수, 여행과 인생은 닮았다.

예측과 변수, 꼼꼼한 계획과 별안간 닥치는 사건. 여행과 인생은 참 많이 닮았다.


긴 여행에서 돌아왔다. 7주 만이다. 기다리는 이 없어도 돌아왔다. 내 집이 여기 있기 때문이다. 예정했던 대로 중국을 거쳐 서유럽 4개국을 돌아다니다가 예정에서 벗어나 카타르를 거쳐 싱가포르에 잠시 머물렀고 필리핀을 거쳐 호주로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이 여행은 애초부터 예정대로 잘 진행되던 여행은 아니었다. 남편이 영국의 모 대학에서 2주 정도 단기로 공부를 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면서 계획은 시작되었다. 기왕 가는 거 영국을 여행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로 얘기가 진행되다가 가까운 옆나라도 몇 개 가보자로 커지면서 6주 간의 시간과 경비를 근근이 마련했다.

그런데 해마다 개설되던 그 코스가 올해는 광고도 뜨지 않고 감감무소식이었다. 결국 공부계획은 접기로 하고 여행을 연기하느냐 포기하느냐 진행하느냐로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가자는 쪽으로 결론을 냈고, 또 거기에 맞추어 성실히 준비를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코스는 예년처럼 진행이 되었었다. 무슨 이유로 광고 방법을 바꾸어 검색이 되지 않았다는 좀 황당한 이야기.)


한 주에 한 나라씩 6개국을 돌기로 했는데, 준비 과정에서 이런저런 피곤함을 느낀 나머지 독일을 우선 제쳤고, 그래도 스위스와 묶어 어찌어찌 가보려 했던 오스트리아를 최종적으로 뺐다. 아이가 어리니 좀 더 여유 있게 쉬엄쉬엄 여행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런던 아이에서 내려다본 빅벤과 야경. 너무도 런던답다고 말할 수밖에 없던 멋진 런던.
아이가 커졌어요.^^ 루브르 박물관 뒷마당에서 비둘기랑 놀다가.

(돌이켜보면 별로 나쁠 것도 없었다. 그러나 감히 말하자면 파리는 더 이상 파리가 아니라는 것.

무엇이라 표현하기도 애매하지만 그 옛날의 파리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게 다가왔다.)

(9월의 폭설이 아름다웠던 스위스의 높은 산들. 융프라우를 바라보며 커피 한잔. 세상엔 도대체 무슨 시름이 있다는 거냐.... 나는 신선이 되어 그런 건 다 잊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박물관에서 내려다본 밀라노 쇼핑거리. 이쯤에서 계획했던 여행을 접어야 한다는 아쉬움. 그래도 얼떨결에 하루씩 하루씩 3일을 잘도 보냈던 곳. 좀 피곤했는데 차라리 잘되었다는 안도감. 어서 빨리 시할아버지의 임종에 동참해야 한다는 걱정들.)

싱가포르 가든 베이. 마리나 베이 호텔의 정원 격 되는 인공가든. 자연을 철저하게 분해해서 다시 인공으로 완벽하게 재조립해 놓은 오만하지만 볼만한 정원.

우리는 한 달을 아주 잘 여행했다. 그러다 시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실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 밀라노에서 부랴부랴 비행기표를 새로 구해 싱가포르로 날아가게 된 것이다. 96년. 짧지 않은 시간. 지상에서의 여행을 이제는 마치겠다는 할아버지를 뵈러 우리는 계획을 바꾸었다. 예정에 없이 벌어지는 일들에 맞춰 타지에서 계획을 바꾸기란 복잡하고 익숙하지 않았다. 하루니 한 달이니 하는 시간이란 시계 위의 초침이 잠시 떠는 순간의 이어 짐이다. 초침을 앞에 두고 임종을 앞둔 할아버지의 가냘픈 호흡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를 먼 곳에서 가늠해 보는 슬픔이란...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누군가의 죽음만큼 분명한 예정이란 어디 있겠으며, 잘 수행될 치밀한 계획이라는 것들이 얼마나 내 손을 벗어나서 제멋대로 흘러가는가 말이다. 그저 어쩌다가 그 제멋이라는 것이 나의 계획과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오히려 다행스럽고 감사할 뿐이란 생각도 들었다.


나의 시할아버지는 좋은 분이셨다. 남편에게는 아버지보다도 각별한 조부였다. 어릴 때 손 잡고 다니시며 없는 살림에도 동네 구멍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주셨던 좋은 기억이 난단다. 인간이란 그저 그렇게  사소하게 감정을 전하고, 그런 하찮은 일을 두고두고 기억하며 감동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미 곡기를 끊으셔 기력이 쇠해진 할아버지는 멀리서 날아온 손자와 증손자 손을 잡고 '많이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셨다. 정말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 일주일을 의식이 없으셨다가 평안히 돌아가셨다. 석 달 전까지도 홀로 독립해서 사실 정도였고 마지막까지 정신도 말짱하신 데다가, 병원에서 돌아와 시동생 집에 머물며 모든 가족과 일일이 작별을 하고 맞은 매우 축복된 죽음이었다.


일주일여의 시간 동안 남편은 병상에 누워계신 할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씻기고 돌봤고, 틈틈이 두 손을 마주 잡고 기도했다. 이제 세상 짐 내려놓고 편안히 가시라고. 그 시간 내내 무수한 대가족들이 크지도 않은 시동생의 아파트를 드나들며 할아버지와 작별 인사를 했다. 사람들은 모여 울다가 웃다가 때 되면 음식을 사다 먹거나 끼리끼리 모여 나가 먹고 그러다 보면 자꾸 잔치 분위기로 흐르기도 하여, 즐거웠던 여행 이야기도 하고, 할아버지와의 추억도 얘기했다. 고모 사촌 사돈까지 모여 앉아 즐겁게 노는 분위기였다. 지상에서의 여행이 우리의 마지막이 아니라는 믿음으로 우리는 평화로웠고 행복했으며, 다시 한 주 휴가를 연장하여 장례식도 잘 마치고 호주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이제 막 나의 짧지 않았던 여행 얘기를 이곳에 풀어놓으려는 것은, 그냥 지상에서의 인생여정 중 좀 달랐던 얼마간의 시간을 돌아보겠다는 정도인 것이다. (2013/10/13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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