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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Aug 25. 2023

파리, '에펠타워'에서 저녁 먹기

파리에 대한 환상을 그래도 이어주는 곳.

금요일 저녁인가 파리 에펠타워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에펠타워는 매우 큰 건축물이라 그 안에 여러 공간이 있는데, 저녁을 먹는 레스토랑이나 뷔페 점심을 먹는 카페 혹은 늦은 밤 술 한잔 하는 바도 꼭대기에 있다.

세계적 명소인 만큼 하루에도 관광객이 수천 명이 몰리니 당연히 레스토랑 예약도 최소 두어 달 일찍 해두는 것이 좋다.

줄.. 줄.. 어디를 가나 너무 긴 줄. 때로는 맥놓고 몇 시간을 기다린다.

내가 이곳 레스토랑을 가려던 이유

첫째는, 우습겠지만 레스토랑 줄은 그래도 길지 않다는 소리를 들었고 (예약을 해도 줄을 선다.)

둘째는, 타워 안에 좀 더 여유 있게 머물며 찬찬이 둘러볼 수 있는 방법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저녁식사 메뉴판. 예약할 때 메뉴를 미리 주문했다.

파리는 알아서 즐겁게 여행 다니려는 사람을 굳이 붙잡아 김을 쑥 빼는 안타까운 도시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는데, 이 날은 화장실에서 시작되었다. 타워 주변에 도착하자 화장실부터 찾았다. 종일 운동화를 신고 다니다 저녁을 먹기 전 '리틀 블랙 드레스'를 갈아입어야 했기 때문이다. 타워 옆에 세워진 안내도를 보니 화장실은 이쪽과 저쪽 두 곳에 있었다. 이쪽으로 가보니 공사 중이라 문이 닫혀 이었다.

 심플한 듯 맛있다. 어린이 메뉴에도 신선한 야채를 그대로 올려주는게 맘에 들었다. 메인은 닭 가슴살 요리.

저쪽으로 가보니 이동화장실이 달랑 한 칸 있었다. 광장엔 수천 명이 모여있는데. 관리도 설치도 너무나 쉬워 호주에선 개인파티를 할 때도 뒷마당에 하나씩 대여해서 세워 놓곤 하는데.

천만다행으로 줄이 길지 않았다. 한 열명쯤. 그래서 뒤에 섰는데, 도저히 줄이 줄어들지를 않는 것이었다. 

30분이 넘도록 기다렸다가 차례가 되어 들어가 보니 이 화장실은 전자동인데 한 사람이 이용하고 나면 문이 닫히면서 자동청소를 하는 시스템이었다. 한 사람 쓰고 청소하고 한 사람 쓰고 청소하고 그러니 줄이 줄지를 않는 것이다. 아.. 이 한심하고 기가 막힌 상황을 어쩌면 좋으랴.


그래도 방광이 터지려는 사람은 없는 건지 아님 이것이 프랑스 사회를 지배한다는 똘레랑스(인내, 관용) 정신의 시험장인 건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어이없어하면서도 앞사람 뒷사람 통성명을 하며 줄 안에서 사교를 하기도 한다. (앞에 섰던 캐나다 중년 부부는 그 앞에선 어느 배낭여행 처자 둘과 대화를 한참 나누다 그들이 캐나다를 곧 간다고 하자 자기네 집으로 초대를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게다가 내가 긴 줄을 서는 동안 남편은 아들과 광장을 돌아다니다가 사인을 요청하고 기부를 강요하는 난민 여인에게 약간의 사기를 당했다. 무슨 단체를 위해 서명을 해달라고 하고는 20유로를 요구하는 집시 소녀들이 파리엔 아주 많다. 너무 당당해서 사기인 줄도 모르고 당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일들로 인해 우리는 이곳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는 감정에 사로잡히며 우울해졌다.


타워 맨 아래층에 자리 잡은 레스토랑은 2개의 층으로 되어있다. 매우 컸고 사람들로 바글댔다. 난 좀 더 조용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예상했었는데, 적당히 활기 있고 북적대는 분위기가 나쁘진 않았다. 웨이터들은 매우 친절해서 빵도 더 갖다주고 사진도 찍어준다. 그런데 그런 친절조차도 '나는 당신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 다 안다. 심란하지? 내가 잘할 테니 그냥 먹고 풀어.' 같은 어색한 위로로 다가왔다.

자본주의 사회는 밥상 위치로도 차별한다. 예약을 할 때 일종의 세트 메뉴를 주문하는데 그 가격에 따라 앉는 자리가 결정된다. 우리 테이블은 창가가 아니었고 거기 앉으려면 더 비싼 메뉴를 주문해야 한다. 그런데 마침 대규모 레노베이션 공사 중이었던지라 어차피 창가 자리도 시야가 다 막혀 있긴 했다.;;


해는 저물어가고 도시의 불빛은 하나씩 켜진다.

어쨌거나 저녁은 맛있었고 가까스로 기분을 추스르며 식사를 마쳤다. 여름해가 길어서인지 아직도 밖이 환했다. 레스토랑을 나와 타워를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엘리베이터도 있었지만 계단을 오르기로 했다. 사방으로 돌아가며 수백 개를 오르는데 방향을 조금씩 바꿀 때마다 혹은 한 걸음씩 오를 때마다 달리 보이는 아랫세상이 너무 아름다워 멈출 수가 없었다. 계단은 끝도 없이 이어졌는데 더 많아도 군소리 없이 다 올랐을 것 같다.

센 강, 엘리제 궁, 여러 개의 다리. 어느새 해는 저물어 불빛이 하나씩 들어오고 철제 타워는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우주선 기착지 같기도 하고 여인의 섬세한 레이스 속치마 같기도 하다.

마침내 밤이 깊어 색색의 불빛쇼가 시작되었을 땐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주저 않았다. 아! 내가 정말 파리에 있구나. 이 잘난 에펠 타워 속에서 이 불빛을 보고 있다니. 이게 꿈이 아니라니. 뭐 이런 류의 많은 이들이 파리에서 느낀다는 그 감정이 내 안에서도 솟구쳤다. 시간아 멈추어라. 흐르지 말아라.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타워 안 엘리베이터.

마침내 밤이 늦어 지상으로 내려왔을 때 현실은 여전히 현실로 남아있었다. 무슨 줄이 아직도 그리 길은지. 사람들은 광장에 바글대며 턱을 쳐올려 타워감상에 빠져있고 아프리칸 난민들은 기념품을 사라며 자꾸 달려든다. 

길을 물어물어 지하철을 몇 번을 갈아타고 집으로 왔다. 꿈에서 깨어난 파리의 현실은 여전히 노숙자, 거지, 찌렁내로 덮여 있다. 에펠탑이 눈앞에 있어도 '여기가 파리 맞냐'라고 자꾸 묻고 싶어 진다.(2013/10/24씀)


여행팁: 

당시 아이는 대부분의 호주 아이들처럼 저녁을 먹고 8시가 되면 잠자리에 드는 습관이 있었다. 여행이라 해서 일상의 리듬을 다 깰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래서 우리의 여행 일정은 대부분 해가 지기 전에 마무리가 되어 숙소에서 저녁을 먹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또 여행인지라 각 도시별로 하루나 이틀쯤은 밤에 나와 무언가를 해보려고 했다. 런던에서는 런던 아이 관람차를 타고 야경을 즐겼으며 라이언 킹 뮤지컬도 밤에 관람했다. 파리에서는 에펠타워에 올라 야경을 내려보았고 몽마르뜨 언덕도 늦은 밤 올라 조금은 색다른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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