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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Aug 16. 2023

스위스 '필라투스', '설국열차' 타고 첫눈 맞다.

한 사회가 아이를 대하는 자세는?

이 날은 루체른에서 가까운 필라투스 산을 오르기로 한 날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니 세상이 달라져 있었다.

루체른 시내에서 저 멀리로 보이는 산마다 꼭대기가 하앴다. 여행자 정보센터에 갔더니, 첫눈이 왔다는 것을 확인해 주면서도 필라투스 산에서 눈을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9월에 첫눈이라....

루체른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필라투스 산 밑둥으로 가 케이블카를 탔다. 맑고 시원한 가을 날씨였다.

며칠 전 리기산에서 대화를 나눴던 노부부는 이런 말을 했었다.

"스위스는 여름이 지나면 바로 겨울이야. 지난주엔 개울에서 수영을 했지만 2주 뒤면 벌써 눈이 오는 걸."

우리는 다음 주에 떠나 눈을 못 볼 것 같다고 아쉬워했더니, 다음엔 겨울에 와서 꼭 눈구경을 하라 했었는데,

불과 이틀 뒤에 루체른 산 어딘가에 첫눈이 내린 것이다. 어제까지는 그렇지 않았는데 산꼭대기마다 눈이 쌓였다. 아직은 이른지라 그 눈이 살짝 내리다 마는 정도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필라투스 정상에서 눈을 맞으리란 기대는 거의 하지 않았다.

필라투스 산 중턱의 놀이터. 케이블카의 첫 번째 정류장. 계속 쭉 타고 정상으로 올라갈 수도 있지만 중간 역마다 내려 기구를 타거나 하이킹을 하거나 밥을 먹거나 숙박을 한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며 하늘에서 찍은 놀이터.

스위스의 산을 즐기는 방법을 나름대로 소개해볼까. 스위스의 산은 정상을 케이블카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놀이동산 개념으로 이해해서 산을 구석구석 즐길 수 있다. 사실 한국산도 마찬가지일 게다.


첫 번째 정류장엔 아이들 놀이터가 있었다. 바비큐도 해 먹을 수 있고 산장도 있고 근사한 곳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도시락을 까먹고 주변 숲 속도 돌아보고 놀이기구도 타며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꽤 크고 시설도 훌륭한데 이 날도 우리가 전세를 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하챦케 여기며 너무 바쁘게 정상으로만 향한다.


케이블카의 두 번째 정류장에 내리니 청소년들을 위한 시설이 있었다. 캠프장도 있고 야외 체력 단련장도 있는데 이곳에서 잠시 봅슬레이를 탔다. 이쯤에서 진눈깨비가 아주 잠깐 날렸는데, 우린 그것만으로도 너무 감격해 첫눈을 맞았다고 흥분을 했다.

그러는 동안 봅슬레이 관리인들은 시설의 개폐장을 반복했다. 매뉴얼에 따르면 눈이 내리면 썰매를 타다가도 중간에 멈추고 레일에서 썰매를 들고 나와야 된단다. 그런데 이 매뉴얼을 엄격히 잘 따르는 이 사람들은 진눈깨비가 흩날리자 시설을 바로 폐장시켰다가 눈이 멈추자 담요를 들고 레일 닦기를 몇 번씩 반복하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온 대가족 여행그룹과 우리 가족은 여러 번 주의사항을 듣고 이들이 안전점검을 다 끝내고 재개장을 한 뒤에야 썰매를 탈 수 있었다. 매우 철저한 사람들이다.

 

야~~~~ 후~~~~!!

레일은 어마어마하게 길었고 구불구불 산길을 다 돌아 내려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 타듯 산을 오르며 하나씩 찾아 무언가 색다른 활동을 하고, 산 주변을 찬찬이 돌아보고 또다시 산을 오르는 재미가 있다.


갑작스레 내린 눈 밑엔 아직도 푸른 초원이...

다시 케이블 카를 타고 정상을 향해 오르는데 날씨가 급변했다. 눈비가 내리다가 눈보라가 치더니, 아... 여기는 겨울이 아닌가. 갑자기 세상이 달라졌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이곳은 완전 '눈의 나라'였다.

이게 말이 돼? 불과 몇 분 만에 날씨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고 전혀 다른 세상으로 와버린 것이다. 내가 탄 케이블카가 타임머신이었나?


눈의 나라에서 바라본 저 아래 세상은 아직도 푸릇푸릇했다.

겨울 쟈켓은 애초에 여행짐으로 꾸리지도 않았던지라 비상용으로 들고 갔던 방풍재킷 방수재킷을 겹으로 다 꺼내 입었다. 그리고는 최정상까지 진격!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눈보라가 사정없이 날리고 미끄러워 눈도 못 뜨고 거의 네 발로 기어 올라갔다. 그곳에서 바라본 눈의 나라. 꼭대기에 세워진 건물 안엔 호텔 카페 기념품점등이 있었다. 케이블카에 트렁크를 들고 타는 이들이 있었는데 저 호텔에서 하루를 묵는 이들이었나 보다.

얼음동굴도 있었다. 고드름을 꺾어 칼싸움을 했다. 이게 정말 얼마 만에 해보는 일인지. 산꼭대기 바위 사이에 세운 전망대.

이런 날씨에도 끄떡없이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열차가 놀라웠다. 하얀 눈의 나라를 오르는 빨간 산악 열차 뒤로 아직도 푸르른 아랫산이 보인다. 아아.. 믿을 수 없어라. 동화의 나라. 환상의 세계.

넋을 빼고 앉아 산을 올려 보고 세상을 내려보다가 맨손으로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전망대 안으로 뛰어들어가 꽁꽁 언 몸을 녹이고 커피를 마시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세상만사 다 잊고 아이가 되어 지치도록 놀았다.

스위스는 놀라운 나라다. 참으로 정확하게 인간의 필요를 계산해 냈다. 춥다 싶으면 바로 몸을 녹일 곳이 나타나고, 커피가 생각날 즈음엔 카페가 나타난다. 그 모든 것을 빠짐없이 개발하면서도 자연을 망가뜨리지 않았다. 잘 찾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자연인데, 찾아보면 인간의 손이 다 닿았고, 어쩌다 눈에 띄는 인간의 구조물들은 이미 그랬던 것처럼 자연과 잘 어울려있다. 눈에 거슬리는 부분을 찾기가 어렵다.


이제 열차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갈 시간. 산맥 사이의 작은 철길들은 스릴 있고 아름답다. 해발 2천 미터 산꼭대기에 놓인 바위를 바늘구멍만큼 뚫어 터널을 만들고 철길을 놓았다. 손을 뻗으면 바위를 짚을 수도 있겠다. 수도 없이 변하는 절경은 뭐라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아름답다.

그렇게 절경에 취해있는 사이 계절은 겨울에서 다시 초가을로 바뀌어갔다. 이즈음에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거의 산꼭대기에서 오늘밤 머무를 사람들이다. 커다란 트렁크를 지고 올라가는 이도 많다.


너무도 아름다웠던 산, 필라투스. 먼 훗날 이 산을 다시 오를 때, 이번만큼 다시 즐거울 수 있을까. 첫눈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니.. 난 언제 저 산을 다시 오를 수나 있을까.

아니다. 다시 기회가 없다 해도 난 아쉽지 않을 것이다. 이 산은 이미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선사했다.(2013/10/27 씀)


설경 앞에서 통밀빵 점심먹다.



여행팁:

1. 스위스 파스(Swiss pass-기차 유람선을 포함한 모든 교통수단과 박물관등 입장료를 무료 혹은 할인해 주는 티켓)

스위스는 물가가 비싼 곳이다. 여행비 절감을 위해 스위스 파스를 미리 구입하면 버스나 유람선 산악기차등 여러 대중교통을 무제한 탈 수 있다. 세계 최고라는 전망 기차(Golden pass Panoramic기차의 앞 옆 천장까지 유리로 되어 스위스의 절경을 파노라마로 볼 수 있다.)를 타고 제네바에서 몽트뢰를 거쳐 루체른까지 6시간에 걸쳐 멋진 뷰를 즐기기도 했다. 본전 뽑았다.


2. 무리하게 일정을 짜지 말고 놀이터가 나오면 쉬며 충분히 놀자. 세상엔 다양하고 색다른 동네 놀이터가 많고 아이들은 유명한 관광지보다 이런 순간들을 여행 후에 가장 많이 기억하기도 한다.


3.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면 좋다. 스위스 쿱(Coop) 슈퍼에서 빵과 햄 치즈등을 구매해 조립해(요리가 아님) 먹으면 간단하다. 그 깊은 풍미와 조화를 음미하려고 야채도 소스도 점점 빼고 약간의 버터와 햄 치즈만 넣은 뒤 거칠고도 부드러운 빵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우적거리며 먹었다. 날마다 갓 구운 다양한 빵을 사다 먹으니 질리기는커녕 떠날 날이 되니까 더 못 먹을 생각에 아쉬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식당에서 사 먹는 것보다 70%가량 식비를 절약할 수 있다.(10년 전 물가 기준)  식사 때마다 먹을 곳을 찾아다닐 것 없이, 유럽 도시 어디에나 흔한 피크닉 장소에서 아이들을 맘껏 뛰어놀게 하며 간단하게 먹을 수 있다.


4. 스위스는 아이들 천국

다른 도시도 그랬지만 아이와 다님으로써 특별한 경험이나 혜택을 누리는 경우도 많다. 스위스에선 미끄럼틀등 놀이기구와 장난감이 비치된 어린이 전용 기차칸을 타기도 했고 산악기차에서 기관사의 특별 초대를 받아 기관실 안에 앉아 여행을 하기도 했다. 기관사가 그 많은 관광객 사이에서 우리 가족을 꼽은 이유는 당연히 어린 아들 때문이다. 

어떤 날은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멀지 않은 유람선 선착장까지 걸어가야지 했는데 보슬비가 내렸다. 비를 맞으며 걸어야 할지 기다려야 할지 망설이는데 차 한 대가 우리 앞에 섰다. 좀 전에 케이블카 안에서 짧게 대화를 나누었던 노부부가 태워다 주겠다는 것이었다. 차 안에는 아들이 앉기에 좋은 카시트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자기 손녀 자리라며 친절을 베풀었다. 아이에게 관대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세상엔 참 많고 아이에게나 부모에게나 이 나이에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들을 할 수 있어서 가족여행이 더 소중하기도 하다.


5. 개조차도 교양이 있다.

스위스 사람들은 개를 데리고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한다. 호주에도 간혹 장애인을 돕는 안내견등을 기차에서 볼 수 있지만, 스위스 사람들은 곰만 한 개를 끌고 기차도 타고 버스도 탄다. 그런데 이 개들이 어찌나 교양이 있는지, 주인옆에 다소곳이 쥐도 새도 모르게 앉아 몇 시간을 여행한다. 도대체 개훈련을 어떻게 시키는 건지.

개도 이 정도니, 공공장소에서 애들 소란 떠는 거 그냥 나눴다가는 X만도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 건 아닌가 싶다. 아이에게 예의와 공공질서를 지키도록 가르치는 일은 세상 어디에서나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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