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로병사 생애주기를 따르든 예기치 않은 사고를 당하든 개인적 이유로 죽는 사적인 죽음과는 다른 공적인 죽음이 있다. 전쟁 용사처럼 대의를 위해 하나뿐인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영웅들, 그래서 남아있는 사회 구성원들이 살아있는 동안 기억해야 하는 죽음을 호주 사회는 어떻게 다룰까?
4월 25일 앤잭데이(Anzac Day)는 호주의 국경일이다. 1915년 터기 갈리폴리 전투에서 희생된 호주와 뉴질랜드 연합군을 추모하는 날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전쟁이 추가되어 지금은 '전쟁 용사의 날'로 해석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RSL (Returned & Services League 재향 군인회-전쟁 용사와 가족을 지원하는 단체. 호주 전역에 1500여 개의 지부가 있고 유가족을 포함한 일반 회원만 2십만 명이 넘는다.)의 주관 아래 전국의 크고 작은 지역에서 마을 단위로 추모식이 열리고 도시 곳곳에서 대규모 퍼레이드가 벌어진다.
내가 이 행사에 처음 참여한 건 15년 전쯤 스킵튼(인구 500명의 작은 시골 마을)에 살 때였다.
이 날은 공휴일인데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마을 추모식에 참여하라고 권장을 했다. 아침 일찍 아들 손을 잡고 학교 교문 앞에 갔더니 큰 무리가 모여 있었다. 마을회관 앞 전쟁 기념비까지 2백 미터 남짓을 이들과 걸으며 퍼레이드를 했다. 300명이 족히 넘는 사람들이 동참을 해서 놀랐고 내 주변에 (이 작은 마을에) 참전 용사들과 가족이 꽤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1,2차 세계대전, 베트남, 한국,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역사책이나 뉴스 신문을 통해 보고 들었던 모든 전쟁에 호주의 어떤 이들은 연합군으로 동참을 했고 또 어떤 이들은 타지에서 전쟁통에 난민이 되어 호주로 피난을 와 정착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 전쟁과는 거리가 먼 나라인 듯한 호주에 다양한 전쟁과 연관된 용사와 그 가족들이 이리도 많은 것이다. 그들은 할아버지든 삼촌이든 누군가의 때 묻은 훈장을 가슴에 자랑스럽게 달고 와 그에 얽힌 자신만의 전쟁 이야기를 세세하게 해 주었다.
주민들과 학생들이 참가한 퍼레이드와 추모식. 2차 대전에 참전했던 늙은 용사들이 당시의 군용 지프차를 타고 있다.
전쟁 기념비 앞, 현역 군인들의 사열식이 끝나고 구세군 브라스밴드의 앤잭 레퀴엠 연주에 맞춰 마을 여러 단체장과 초등학생들이 돌아가며 헌화했다. 다 같이 눈을 감고 묵념하면서 전쟁이 무엇인지, 용사들이 무엇을 위해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죽어야만 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기가 막혔던 건 한국 전쟁에 갔다가 죽어서 돌아온 어느 청년의 이름을 기념비에서 보았을 때였다. 까마득한 70여 년 전, 한국이란 나라가 어디에 붙었는지도 몰랐던 시절, 이 깡촌의 젊은이가 몇 달 동안 배를 타고 그 땅에 싸우러 갔다가 그만 죽어서 돌아왔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가슴 아팠다. 그 전쟁이 그 청년에게 무엇이었길래.. 지금 이 동네에서 만나는 노인들처럼 가정을 꾸리고 자식 손자도 보며 평범하게 잘 살 수도 있었을 청년의 목숨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그날 마음을 먹었다. 해마다 앤잭데이 추모식에 참석을 하기로. 그 청년을 기억해야 할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의무가 내게 생겼다.
헌화가 끝나면, 마을회관으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기념식을 진행한다. 핵심은 초대 강사의 강연인데, 몇 해 동안 들었던 것들을 종합해 보면, 어떤 해는 꼬부랑 할아버지가 된 2차 대전 참전용사가 전쟁의 참상과 그 시대의 어려웠던 생활상을 얘기하기도 하고, 어떤 해는 최근의 전투였던 아프가니스탄 참전자의 경험담을 듣기도 하고, 또 어떤 해는 해군 장교쯤이 나서서 요즘 군대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설명하는 등 전쟁이나 군대를 주제로 한다. 누렇게 변한 책자나 꼬질한 훈장을 들고 오기도 하고, 역사를 담은 슬라이드 필름을 보기도 하고, 최첨단 기술을 동원해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이도 있었다. 동네 꼬마들, 농부들, 백발의 할머니 등등 민간인들이 이런 기회를 통해 군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전쟁 와중의 삶과 죽음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초등학생들이 직접 지은 추모의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식이 끝나면 한 접시씩 들고 온 음식을 나누며 평화로운 지금을 감사하게 누렸다. 시골이라 마을 사람들이 잘 모이는 줄 알았다.
추도식이 끝나면 이웃끼리 누군가의 집에 모여 뒤풀이 앤잭파티를 한다. 민간인들이 전쟁통의 군인에게 구워 보냈다는 앤잭비스켓을 구워 먹었다.
세월이 흘러 10년 전 지금 사는 바닷가 마을로 이사를 왔다. 내가 지금 사는 곳에서도 앤잭데이엔 마을 사람들이 모인다. 심지어 새벽 6시(Dawn Service), 11시 두 차례 기념식이 열린다. 4월은 가을(호주는 계절이 반대다.)이고 지금 사는 바닷가의 가을 아침은 두툼한 겨울 외투를 입어야 할 만큼 매섭게 차갑다. 어느 해에는 비바람이 몰아치기도 했다. 그런데도 어두컴컴한 새벽녘, 바닷가에 나가보면 수백 명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있었다. 이들이 다들 전쟁용사의 가족이라고? 깜짝 놀라 그렇지 않을까 추측도 해봤지만 그들은 유가족이 아니었다.
그다음엔 나의 첫 참석 이유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가 학교의 일원으로 합창이나 시낭송등 무언가를 해야 했기 때문에 따라온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가 다 자란 뒤에도 아니 어린 아기를 유모차에 재우고 무등을 태우면서 참가하는 이들도 많았다. 게다가 이런 추모식이 중앙 집권적으로 열리는 것이 아니라 작은 마을 단위로 전국에서 동시에 벌어진다. 무엇이 이 많은 이들을 자발적으로 이 추모식에 모이게 하는 걸까?
기념식이 열리는 RSL회관 앞은 임시로 교통을 통제한 일반 도로라 아이들을 배려하는 시설이 전혀 없는데도 온 가족이 참가한다. 온몸에 문신을 한 아빠가 딸아이를 무등태우고 유모차를 끌고 온다. 아이들은 뙤약볕 아래서 무엇을 보고 배울까.
앤잭 데이가 강조하는 것은 한 가지다. ‘Lest We Forget. 잊지 말자.’ 이들은 하루종일 모여 전쟁과 죽음을 이야기한다.
인류의 모든 역사를 통틀어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없었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선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지고 있으며 무고한 인명들이 셀 수 없이 죽어가는데, 이 전쟁을 멈추는 방법은 오로지 처참한 역사를 기억하고 반복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호주엔 전국 곳곳에 마을 단위로 전쟁 기념비가 있다. 저 멀리 태즈메이니아 섬 땅끝 마을에 가도 그렇다. (그리고 그 모든 전쟁 기념비엔 한국전쟁도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 한국 전쟁 기념비가 한국보다 호주에 더 많이 있을 거라 추정해 본다.)
며칠 전, 최태원 회장 딸의 결혼식장에 한미 전우 추모를 위한 '빈 테이블'이 놓인 것이 큰 화제가 되었다. 결혼과 추모라는 극과 극의 행사가 한 장소에서 이루어진 것이 생소했으리라. 호주에서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RSL 레스토랑(재향 군인 재정 지원을 위해 운영하는 레스토랑으로 맥도널드만큼 흔하고 친숙한 공간이다.)에 가면 매일 저녁 6시, 갑자기 불이 꺼지고 음악이 멈추면서 모든 서빙이 중단된다. 식사를 하던 이들이 스피커의 안내에 따라 1분간 서서 영웅들의 죽음을 떠올리며 묵념을 한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나면 다시 불이 들어오고 끊겼던 수다를 이어가며 식사를 즐긴다. 이런 일이 매일 저녁 반복된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하지 않던가! 하나뿐인 자신의 목숨을 바친 영웅의 죽음을 시민들이, 공동체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시도 때도 없이 떠올려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