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을 향한첫걸음.
뒷마당에 한 번씩 이것저것을 심어 보곤 했다. 호주에서 마당이 있는 집에 살던 지난 20여 년 동안 심어 본 야채를 꼽아 보자면 감자 옥수수 토마토 가지 호박 오이 콩 상추 배추 양상추 파 마늘 파슬리 당근 갖은 허브 등등 온갖 것을 망라한다. 그러나 아직도 무언가를 잘 키운다고 자부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지로 종종 경작에 실패도 하고 게으름이나 싫증이나 바쁜 일상 등등을 이유로 지속적 관리를 잘하지 못한데 있을 것이다. 매년 봄이면 무언가를 해볼까 궁리하면서 의욕을 내보다가 뭉기적 시기를 놓치면서 한동안 잊고 지내기도 하니 농사를 짓는다든가 가드닝이 취미라든가 말하기가 좀 부끄러운 면이 있었다.
그러다 지난해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나는 다시 한번 해보자고 마음을 굳게 먹었고 텃밭을 새로 갈게 된 것이다. 자급자족이라는 원대한 그림을 그리며 배추 상추 양상추 수박 가지 피망 등등을 심었다. 부지런히 물 주고 잡초도 뽑으며 일했다. 간간히 수확의 기쁨을 누리며 즐겨 먹었다.
친구들과 카톡을 하다가 알게 된 스마트 렌즈는 유용했다. 어느 날 담장을 넘어온 이름 모를 하얀 꽃 사진을 올렸는데 한국에 있는 친구가 스마트 렌즈로 검색해서 그 이름을 대뜸 알려 준 것이다. 재스민 이름을 알고 난 뒤 난 신세계가 성큼 다가왔다고 느꼈다. 마당 여기저기에서 솓아오르던 온갖 꽃들과 야생초들을 탐색하며 이름을 알아내고 그것들이 한국에서 먹던 나물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기도 했다. '야생초 편지'(황대권 글 그림)에서 알아낸 잡초들은 가끔씩 샐러드에 얹어 먹었다.
아들이 어릴 때 놀던 커비 하우스(아이들이 노는 오두막집) 앞 모래밭을 갈아 실버 비트(근대와 비슷한 녹색 야채)를 심었다. 실버 비트는 된장국에 넣어 먹기도 하고 살짝 볶아 먹어도 맛있다. 한동안 폐허로 버려져 창고로 쓰였던 곳에 문을 달아 닭장을 만들었다.(달랑 세 마리가 사니 닭장 치고는 펜트 하우스급. 돈 주고 닭장을 사는 것보다 저렴해서 창고를 치우고 남아 뒹굴던 페인트로 앞 면만 칠했다. 해피 해니 해티는 매일 튼실한 계란 세 알로 은혜에 보답을 한다.^^)
지붕에서 흐르는 빗물을 물탱크에 저장하였다가 밭에 물을 줬다.
그래도 그렇게 텃밭에서 흙을 만지고 시간을 보내며 불안했던 그 시기를 잘 버텼다는 생각이 든다. 자급자족의 꿈은 아직도 멀었지만 고요하고 평화롭게 텃밭을 거닐며 그들을 만나고 다듬었던 추억들이 너무도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