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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Jun 08. 2021

호주-락다운이 만든 변화들.

뒷마당불. 멍. 밤그리고 닭 이야기.

4차 락다운이 시작됐다. 올해 들어 마스크도 거의 쓰지 않았고 확진자도 제로에 가까웠으며 느리지만 백신을 접종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대로 끝이 나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비록 한자리 숫자의 감염자지만 호주는 바로 락다운을 해버린다. 처음엔 왜 이리도 미친 듯이 봉쇄를 하는가, 자영업자들이나 일을 못하는 이들을 어쩌려고 하는가,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호주는 뉴질랜드와 더불어 코로나를 가장 잘 대응한 나라로 꼽히게 되었고, 엄청난 자금을 풀어 실업자를 구제하고 있으며, 경제도 우려했던 것보다 타격이 적어 국민들의 분노도 좀 사그라지는 듯하다. 


일주일 락다운이 다시 한 주 연장되어 이어지고 있지만, 지난해의 경험을 살려 최대한 유익하고 즐겁게 지치지 않게 살아보자 마음먹었다. 그래서 아들이 온라인 스쿨을 마친 어느 날 마당에 불을 지피기로 했다. 지난해 마당의 나뭇가지들을 잔뜩 쳐낸 뒤 한쪽에 쌓아 말려 두었는데 그것들을 태워 정리하며 불멍 밤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닭장 안의 닭들도 모처럼 앞마당으로 나들이를 나왔다. 지난해 코로나가 처음 발발했을 때, 호주에서는 참으로 의외의 것들이 파동이 났는데, 바로 휴지와 닭이었다. 휴지는 공급이 한 번도 문제가 된 적이 없는데도 여전히 락다운이 시작되면 휴지를 사재기하니 정말 이유를 모르겠다. 닭은 파동의 이유가 분명히 있다. 사람들이 직접 뒷마당에서 닭을 키우며 집에서 소일도 하고 계란도 직접 공급해서 먹겠다는 것.


사실 우린 오래전부터 닭을 키우자고 몇 번씩 얘기만 나누다가 마침내 코로나로 인해 시간이 생겨 동네 부띠끄 양계장을 찾아갔는데(그 양계장 주인이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보통의 닭과는 다르게 좋은 종자이고 오가닉 사료만 먹이며 최상의 관리를 한다고..^^), 그냥 사 오면 되는 줄 알았던 것을 세 달이나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매우 놀랐다. 이미 사람들이 다 사가버렸고 예약 줄도 길게 늘어선 것이다.


불멍의 밤, 우리는 나무를 태우고 따뜻함을 즐기고 밤하늘의 별도 보다가 하며 긴 겨울밤을 잘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니 남편이 불쑥 군고구마를 내밀었다. 어제 남은 재가 제법 따뜻해 고구마를 묻었다는 것이다.

김이 모락모락한 군고구마를 맛있게 먹고 밖에 나가 보니, 통 안의 재가 180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오븐 요리하기 최적의 온도가 아닌가! 그래서 해동된 닭다리에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서 다시 통 안에 넣어 보았다. 푹 익은 닭다리를 점심으로 맛있게 먹었다.

지난해 교회 할머니께 얻어 심은 메리골드(금잔화)가 마당에 활짝 피었다. 오렌지빛 꽃잎을 샐러드 위에 얹어 점심 닭요리에 곁들였다.

점심식사 후 아들이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는 것도 코로나로 인해 생긴 일상이다. 잠깐 넣어 둔 밤이 그새 잘 익어 디저트로 먹었다. 아들은 온라인 수업을 들으러 들어가고 드럼통의 열기는 오후가 되도록 아직도 쓸 만했다. 

이 불에다 무엇을 해 먹어야 할까 궁리하다가, 헤이즐 넛을 구웠고 호도를 구웠고 계란을 잔뜩 넣은 케잌을 구웠다. 무엇이든 척척 넣는 대로 요리가 잘 되어서 놀랄 지경이었다. 추가로 나무를 넣지도 않았는데 하루가 꼬박 넘도록 지속되는 이 열기란 무엇일까...

불씨..불의 씨앗..작은 씨앗에서 큰 나무가 자라고 열매가 열리듯, 이 불씨 하나에서 불길은 언제고 활활 타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한국의 친구들과 카톡 하며 나눴다. 또 중년의 우리야말로 이 타고 남은 재처럼 보잘것없는 듯, 힘 있고 강한 것이 아닐까 서로 격려했다.


결론은 꺼진 불도 다시 보아야 한다는 것.^^

수업을 마치고 나온 아들이 닭들과 논다. 지난 일 년간 사춘기 아들과 얼마나 많은 닭 대화를 나눴는가..

닭이 알을 낳았는지, 몇 개를 어디에 낳았는지, 먹이는 주었는지, 닭장 청소는 했는지...방과 후면 닭장부터 찾는 게 아들의 일과가 되었고, 한번 나가면 꽤 시간을 보내며 노느라 폰이나 게임 따위로 옥신각신 할 일이 줄었다. 닭들도 어찌나 유순하고 아들 말을 잘 듣는지 놀랄 지경이다. 닭대가리라고 비하하는 것은 닭에 대한 모독이다.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고 감정 교류도 잘한다. 머리에 베고 가슴으로 끌어안고 다리로 눌러도 그저 좋다고 잘 논다.^^

닭들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다. 데이비드 에센보로(David Attenborough)의 생태 다큐를 보니, 매일 알을 낳는 닭들의 배 속에서 작은 노른자들이 흰자에 쌓이고 다시 흰막에 쌓여 서서히 자라다가, 단단한 칼슘으로 된 껍질이 하루 만에 만들어져 완전한 달걀로 세상에 나오는 것이었다. 저 작은 닭이 그런 계란을 매일 하나씩 수년에 걸쳐 낳는다는 것이 경이롭지 않은가!

나도 예전엔 닭을 만져본 적도 없고 닭발이 징그럽다는 생각도 하고 똥냄새가 역겹다고 느꼈는데, 하루하루 그 경계를 다 넘어섰고 지금은 애완동물처럼 아끼게 되었다. 나 스스로도 나의 변화가 놀랍기도 하다.

어쨌든 이 모든 일이 지난해 락다운으로 인해 우리 집에 생긴 변화인 것이다.

놀랍게도 불씨가 여전해 저녁으로 나쵸를 구워 먹었다. 이 날은 삼시 세 끼를 뒷마당 오븐으로 해결한 셈이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락다운은 우리 가족이 더 많은 시간을 집에서 함께 보내며 다양하게 일하고 결속하게 만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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