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치타월 위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니...
나는 사람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대도시에 살 때는 카페의 통 유리 창가에 앉아 커피 한잔 홀짝이며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보곤 했다. 이 거리에 사람 참 많네. 무엇이 바빠 저리들 다니는가? 무슨 일을 해서 다들 먹고사는 걸까? 하는 공상을 하며.
이 많은 국민이 굶지 않고 무언가를 하며 살아나간다는 사실에 한 국가가 새삼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 공중의 나는 새도 먹이고 입히시는데 하물며 인간이야.. 성경 구절대로 하나님의 존재를 절감하기도 한다.
지난주 내내 바닷가에 머물며 원 없이 사람 구경을 했다. 그곳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다리가 짧은 휴대용 간이의자를 펴서 앉으며 “난 평생을 이 바다에서 보냈다. 이렇게 나와 앉아 바다도 보고 사람도 구경하다 보니 인생이 다 가는구나.” 하며 지나간 시간을 즐겁게 회상했다. 아닌 게 아니라 평생을 이렇게 앉아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바닷가에서 하는 사람 구경은 도시의 그것보다 더 재미있다.
단지 사람들이 덜 입고 있어서가 아니라, 훨씬 활발하고 다양하고 에너지가 넘치고 행복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의 기분도 어느샌가 한없이 가벼워져 있다. 모래사장에 수건 한 장 깔아놓고 그 위에서 먹고 자고 책 읽고 연인과 가족과 끌어안고 노는 무수한 사람들. 허접한 비치 타월 한 장 위에서 저리도 즐거운 인생이라니….
그러다 시간이 많은 관계로 수건에 대한 사색을 해봤다.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수건 한 장의 의미는 매우 크다. 단지 물기를 닦고 몸을 따뜻하게 감싸며 그 위에 누울 수 있다는 단순 기능 이외의 상징적 의미 말이다. 바로 내 수건이 깔려 있는 동안 이 만큼의 모랫바닥은 내 소유라는 것.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그저 빈 땅에 낡은 수건 한 장을 깔므로 써 소유를 주장할 수 있는 경우가 어디 흔한가. 게다가 주변 사람들은 별다른 저항 없이 그 소유를 인정해 준다. 내 수건을 거두고 자기 수건을 까는 이는 없다.
동물의 세계를 생각해봤다. 밀림의 왕 사자조차도 아주 소탈한 모습이다. 수건은커녕 가진 것이 몸뚱이뿐이라 고작 자신의 내장에서 만들어 낸 배설물이 자신에게 속한 것이랍시고 여기저기 똥을 싸놓고 돌아다니며 자기 구역을 주장한다. 그러나 인간은 아무리 가난해도 수건 한 장은 챙길 수 있으므로 이리저리 똥을 싸놓을 필요가 없다. 역시 인간은 동물보다 고상하다. 수건은 인간이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바닷가의 인간들은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인간다움’으로 서로가 수건으로 설정한 허술한 경계를 지켜나간다. 밀림 속의 동물처럼 물고 뜯고 싸우지 않아도 되고 도시 속의 인간들처럼 경쟁과 승부로 날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 수건 위에서 긴장을 풀고 휴식할 수 있는 이유다.
세상의 이치가 이렇게 단순하다면, 인간의 소유욕이 이렇게 쉽게 달래진다면 세상은 얼마나 평화롭고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세상이 이렇게 단순하지가 않다면, 인간은 좀 더 많은 시간을 수건 한 장 싸들고 바닷가 가는 일에 보내야 할 것이다. 막힌 숨통이 트일 수 있고 삶 중에 행복한 시간이 늘지 않겠는가!
얼마 전 신문을 보니 한국인들이 물질욕이 지나쳐 부유해졌음에도 행복을 느끼지 못한단다. 통계가 아니더라도 해외에 나오면 외국인들과 대비되어 더욱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던 것이 한국인들만의 유별난 물질욕과 경쟁심이었다.
천상병 시인은 ‘인생은 소풍’이라고 했다. 그런데 소풍은 너무 짧다. 아직 반백년을 살았을 뿐인데도 인생이 그리 짧지만은 않은 것 같다. (반백년만 살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나는 종종 말한다. “Life is one long holiday”라고. 이 문장을 영어로 쓴 이유는 한국엔 holiday를 대처할 개념의 단어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전에서 찾는 데로 혹은 한국인이 이해하는 데로의 휴가나 방학이 아니다. 한국의 휴가나 방학은 일이나 공부 일상에 치여 본래의 순수한 목적과 의도가 너무 많이 오염돼 본질을 잃은 듯하다.
어쨌거나 소풍이건 Holiday건 돗자리나 수건 한 장 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삶에 지치고,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살아갈 힘을 충분히 얻지 못한 이들에게 수건이나 돗자리 하나 들고 어디론가 떠날 것을 간곡하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