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기 전에 누가 좀 알려줬으면좋았을 법했던 것들
누군가 말했다. "역할의 문제에 감정이 섞이니 책임의 문제가 되고, 정신 차렸을 때에는 이혼밖에 답이 없더라." 지옥이다. 이런 걸 원했던 건 아닌데. 차라리 혼자 살 것을. 적당히 살려고 하면 오히려 나을 텐데. 그게 서로 포기가 안 되는 특이한 세상, 부부의 세계.
라떼든 말이든 누구든지 좀 알려줬으면 좋았을 것을. 부부, 가정, 아내, 남편, 아빠, 엄마, 아무것도 모르고 결혼식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지 뭐야. 사랑이라고 믿었던 막연한 감정과 생계를 위한 수입, 살 집 정도만 있으면 그냥 할 수 있는 줄 알았다. 사실 그때 그만큼이라도 서로 필요충분조건이 대충 맞은 것만 해도 기적이기는 하다.
많은 순간 그랬다. 이혼하고 싶은데 이혼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혼할 수 없었다. 이런 건 누구한테 편하게 얘기할 수도 없다. 나도 내 감정을 다 모른다. 너도 마찬가지고. 친구는 편하게 얘기하라고 하지만 하늘을 향해 뱉은 침은 결국 내게로 떨어진다. 그 미묘한 감정싸움과 섭섭함, 상한 마음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하리오. 차라리 욕이라도 한 바가지 시원하게 하고 깔끔해지는 거면 좋겠는데, 친구를 만나 내가 최 애증 하는 그(혹은 그녀)의 욕을 아무리 해도 풀리지 않는 한은 오뉴월에만 아니라 일 년 내내 서리가 내리게 한다. 결국 타인에게서는 '너 억울한 것 알겠는데, 애초에 왜 그런 남자(여자)랑 결혼했느냐.'는 안타까운 시선 밖에는 얻을 것이 없다. 살다가 불쑥불쑥 올라오는 '그때'의 감정은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오롯이 내가 감당할 몫이다.
결혼하고도 엄마한테 쪼르르 달려가서 다 얘기하는 쪼다 짓에 대해서는 차차 쓰려고 한다. 결혼 초기에는 쪼다 아닌 사람이 별로 없지 않나 싶다. 한 번쯤 하는 실수라면 좋겠는데 결혼 10년 지나도 너네 집 우리 집 하고 있으면 참 슬프다. 그렇게 멋있어 보였던 오빠가 왜 저런 쪼다가 됐지? 그래서 변했다고 느낀다. 아니, 원래 쪼다였는데 같이 안 살아서 몰랐던 것뿐일까. 어디선가 봤는데 '부모를 떠나 한 몸이 돼라.'라고. 쪼다가 한 몸이 되면 다시 그 옛날 멋있던 오빠로 돌아오려나.
결혼 초, 많은 남자들이 일에 미친다. 인원은 한 명에서 두 명으로 늘었을 뿐이지만, 남자라는 동물이 가진 부담감과 책임감은 최소 승법으로 증가한다. 같이 살면 아끼는 돈도 있고 더 들어가는 돈도 있다. 처음에는 사랑하며 살아가기 위해 돈이 필요했는데 어느새 그냥 돈이 필요하고 사랑은 뒷전이다. 아이라도 일찍 생길라치면 더하다. 수입이나 늘어나면 좋겠건만 부담감과 피곤함만 늘고 말수는 줄어든다. 꼭 경제적 안정감 문제만은 아니지만, 오히려 맞벌이 부부가 더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이유다. 일하고 돈 버는 거라도 재밌어야 그나마 살기라도 하지 말입니다.
거기서 시작된다. 바로 거기. 바로 그때. 남편이 '쳐 자고 있는' 휴일에(어머 죄송. 사실 생각은 그보다 더 심한 말을 썼는데.). 바로 그때 여자는 마음을 나눌 상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필요하지 않다고 느낄 수는 있지만, 언제나 real needs와 felt needs는 다르다. 내 몸에 살아 있는 누군가가 들어있는 경험은 나도 처음이니까. 내 마음이 왜 이런지, 내 몸이 왜 이런지, 차분히 관찰할 기회가 필요하다. 아무리 공부했어도 이런 건 겪어보기 전에는 아는 게 아니지. 그것도 일하고 두배의 살림을 살아 내면서 겪어야 한다. 어느 휴일, 지친 남편이 쳐 자거나 게임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눈에는 분노와 측은함이 공존한다.
무슨 TV프로가 있었던 것 같은데, '동상이몽' 딱 그거다. 그리고 말은 칼이 되어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아이를 가진 여성은 생리할 때의 여성과는 또 다른 차원의 구조적, 존재적 복잡성을 지닌다. 남자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고, 공감할 수도 없는 영역이 있다. 성경에 그러던데 남자는 흙으로 만들었고, 여자는 뼈로 만들어서 완성도 면에서 심각하게 차이가 난다고. 뭐가 더 잘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도자기냐 본차이나냐. 그게 그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칼이 날아다니기 시작하면서 청자고 본차이나고 상관없이 와장창 깨어져 간다. 완성도는 달라도 강도는 비슷한가 보다.
깨어진 가슴으로 깨진 조각을 이어 붙이기도 하고 금 간 마음 자국을 만져보기도 하며 글을 쓴다. 우리는 이혼하고 싶은데 이혼하고 싶지 않고, 이혼할 수 없는 시간들을 보내기 위해 결혼을 한 걸까? 결혼 10년 차, 시작할 때보다는 좀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같은 생각을 하며 힘들어하는 누군가는 읽고 조금이라도 덜 힘들었으면 해서. 결혼하기 전에, 아니면 이렇게 망가지기 전에 누가 나에게 좀 해줬다면 더 좋았을 이야기들을 조심스럽게 해 보려고 한다.
내가 뭘 알아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그냥 좀 더 나은 세상이 되었으면 해서 글을 쓴다. 진짜 죽을 만큼 힘들 때는 라떼고 말이고 다 필요 없더라. 우리가 꿈꾸는 좀 더 나은 그런 세상에 꼰머는 필요 없다. 그냥 하루 땡땡이치고 브런치 한 끼 함께 해 주는 친구가 필요하다. 이런 나라도 힘들어하는 나의 이웃들에게, 그리고 세상에 이바지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