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끌어모아 결혼식, 혹은 결혼을 준비하는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스드메' 요새도 그런 말 쓰나 몰라. 청담동 어디에서 했는데 머리 커트 5분, 드라이 5분 해주고 5만 원 받았던 것만 기억난다. 알아본다고 알아봤지만 너도 나도 처음이니 뭐가 좋은 건지 어디가 잘하는 업체인지 알 수가 있나. 네가 생각하는 선과 내가 생각하는 선이 본격적으로 충돌하기 시작한 지점. 결혼식.
10년쯤 되면 결혼식 영상이니 앨범이니 다 버렸다는 친구들도 꽤 된다. 힘들게 살았을수록 그때 그 빛나는 모습이 더 보기 싫은 법이다. 시간이 흘러 고스란히 남은 촌스러움과 오그라듬은 덤. 노래는 왜 불렀니. 으이그. 그때 천상의 세레나데를 부르던 그 모델 같던 사람은 어디로 간 걸까. 우리는 정말 서로의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사랑한 걸까.
결혼식 다음 날부터 현실은 시작된다. 우리는 제주도에서도 싸웠고 발리에서도 싸웠다. 첫날밤에 등 돌리고 잤으니 말 다했지. 생각이 안 나는 걸 보면 대단한 이유로 싸운 것도 아니다. 그래서 더 화가 난다. '결혼식' 준비도 중요했지만, '결혼' 자체를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어느새 깨달아 가야만 했다. '살 집, 차, 돈 관리는 누가?' 전부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게 준비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한 가지 예만 들어보자.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우리는 관계 맺는 방식이 달랐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할까? 각자가 남편과 아내의 역할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개념도 달랐다. 커먼 센스라는 건 엄밀히 말하면 없다. 전부 주관적인 기준일 뿐인데 남들도 다 그렇게 생각한다는 근거 없는 말로 자기주장을 고수할 뿐이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는데도 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다른 게 그렇게 싫어서 틀렸다고 믿고 싶을까.
외아들인 그는 갈등 해결 능력이 극도로 떨어지는 인간 유형이었다. (과거형임에 주목하라. 언제나 희망은 존재한다.) 그래서 모든 관계에서 적을 만들지 않고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것에 능하다. 밖에서는 괜찮은 인간일 수 있는데 같이 사는 부부의 경우에는 서로의 거리감이 0 이하이다. 그래서 다 뽀록이 나고 말았다. 갈등이 생길 때마다 화성에서 온 남자는 동굴로 곧잘 들어갔다. 한번 화가 나면 몇 날 며칠을 입을 닫고 있기 일쑤였다. 그럴 때 그의 관심사는 철저히 자기 자신이었다. 성을 쌓고 지키는 솜씨가 을지문덕이나 양만춘 뺨치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성 쌓고 지키는 인간들을 보라. 다 남자다.
한 여자는 그 성을 비집고 들어가야 했기에 개고생을 해야 했다. 여자는 갈등이 생기면 그때그때 풀어야 하는 성격이었고, 언성이 높아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갈등을 별로 겪어보지 않은 남자는 언성을 높이거나 막말을 하면서 감정 교류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남자가 꼭 그런 것만도 아니고 여자가 꼭 그런 것만도 아니고 그냥 너와 내가 다를 뿐인데, 우리의 '결혼'은 '결혼식'보다 훨씬 어려웠고 문제도 많았다.
'미리 대화를 많이 하면서 준비하세요.' 개떡 같은 소리다. 다 거짓말이다. 결혼은 공부해서 아는 게 아니고, 준비해서 잘 사는 것도 아니다. (좀 낫기야 하겠지만.) 그냥 우리보다 조금 먼저 결혼한 친구들을 부부 동반으로 자주 만나는 정도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내가 다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정도만 열어 놓고 시작해도 반은 성공이다. 결혼식을 준비하느라 정작 미리 대화를 많이 못했다면, 결혼하고 나서 상대방을(자신을) 알아가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는 것 정도면 일단은 패스. 상대방을 아는 만큼 자기 자신도 보인다. 결혼식 준비에 너무 열을 올리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진짜 하려는 것은 결혼식이 아니라 결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