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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르미 Apr 07. 2021

때로는 마음이 아니라 돈을 쓰자

식기세척기를 사라. 건조기를 사라.음쓰처리기를사라. 커피머신을 사라.

  함께 살기 위해서 부부는 서로의 가장 소중한 것들을 나눈다. 돈, 시간, 노동력, 마음 등이다. 사랑해서 결혼한다는 말은, 내가 가진 소중한 것을 너에게 네가 원하는 방식대로 주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개념을 포함한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와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은 전혀 상관관계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밖에서는 참 열정적이고 성실한 사람이 집에서는 하루 종일 널브러져 있을 수도 있다. 가족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참 좋은 사람인데 정작 가족들과 지낼 때는 지나치게 긴장을 푸는 사람도 있다. 물론 겉과 속이 완전히 같은 사람은 없다. 그리고 집은 서로 좀 긴장을 풀고 본래 모습(?)을 보여도 안전한 곳이어야 한다. 그런데 결혼 초반에는 이것도 좀 어렵다.




  '어머, 이런 사람이었어? 실망이야.'라는 생각을 1~2년 내에 수백수천 번을 한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아직 우리는 내 소중한 것을 온전히 제공할 준비가 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내 것을 좀 덜 주어도 될만한 핑계를 본능적으로 찾기 시작한다. 그래서 역할 분담을 아무리 공평하게 해도 어느 지점에서는 서로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원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완벽하게 공평하거나 무조건적인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부부는 돈과 시간과 노동력과 마음을 적절히 나누고 서로에게 주는 과정에서 서로를 오해하기 시작한다. 한번 오해하기 시작하면, 전부 그렇게 보인다. 예를 들어 "오빠가 나를 싫어해서 내가 말했는데 무시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어오면 그다음부터 그가 하는 모든 일과 말이 그렇게 보인다. "나를 무시해서 지금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지?"라고 믿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아내가 하는 모든 말이 무시로 들린다. 종교가 있든 없든 사람은 대부분 믿음이 강하다. 한번 믿기로 하면 잘 바뀌지 않는다.


  이것은 일종의 '신앙'과도 같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아니라고 아무리 진심을 다해 설명해도 상대방의 그 믿음은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잘해봐야 "그러니까 평소에 잘하지 그랬어."라는 말만 돌아올 뿐이다. 조금 분위기가 좋아지다가도 조금만 갈등이 생기면, "그것 봐. 역시..." 하며 다시 그 '신앙'이 부활한다. 부활절은 교회에서나 좋은 거지, 이런 부활은 사양이다. 그런데 보통 저런 종류의 신앙은 불로불사인 경우가 많다.


  자연스럽게 부부는 서로 복수의 기회를 노리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복수의 칼로 회심의 일격을 가하는 순간, '내로남불'의 카운터 펀치를 맞고 그로기에 빠진다. "네가 저번에 이런 상황에서 나에게 이렇게 얘기했잖아. 오늘 똑같은 상황이니까 나도 그렇게 너에게 말할 거야."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이 밴댕이 소갈딱지야. 복수하니까 좋냐?" 삐짐과 삐짐을 쌓아가며 삐돌이와 삐순이는 한 마을에 살아간다. 파국이 멀지 않다.




  이런 문제로 감정이 상한 부부들에게 의외의 구원병이 있다. 식기세척기, 건조기, 음쓰처리기, 커피머신, 로봇 청소기 등이다. "돈도 없는데, 내가 설거지할게." "돈도 없는데 그걸 왜 사. 그냥 내가 빨래 널면 돼." 그렇게 말하고 솔직히 그렇게 못하기 때문에 또 마음이 상한다. 그러나 인생은 식세기를 구입하기 전과 후로 나뉘며, 진정한 부부 생활은 건조기를 구입하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한다. 살림은 장비빨이다. 우리의 시간과 감정 낭비를 아끼기 위한 비용으로는 사실 그렇게 크지 않은 것들이다. 우리는 10년 전 하나도 없이 결혼했고, 이런 이유로 무진장 싸웠다. 기회비용으로 따지면 뻥 조금 보태서 건조기 100대쯤 살 수 있을만큼 싸웠다.


  요새는 대부분 결혼할 때 장만할 것이다. 예식장은 좀 후진 곳을 고를지라도 저런 친구들은 꼭 데리고 결혼하는 것이 지혜롭다.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돈을 쓰고, 돈보다 내 배우자가 더 소중하다고 굳게 믿으라. 그렇잖아도 힘든 세상, 서로 상태 괜찮아도 다툴 일은 마르고 닳도록 쎄고 쎘다. 처음에는 단순히 역할 분담이었는데 그게 책임 문제로 번지고, 던지지 말아야 할 말을 던지며 감정싸움하다가, 사랑이 식었다느니 어쨌다느니 하는 것보다 카드 할부 10개월 확 그어 버리고 알바 며칠 뛰는 것이 더 낫다. 아무리 형이상학적인 인간도 살림은 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래서 돈이 해결해주는 게 솔직히 있다. 변호사 비용보다는 훨씬 싸다. 서로에게 마음 말고 돈을 써라. 아니 마음을 담은 돈을 서로에게 선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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