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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르미 Apr 01. 2021

외아들과 함께 사는 법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사랑하기

  그는 적을 만들지 않는다.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고 이미지를 관리하는 데도 능하다. 특별히 의도하지 않아도 그는 수십 년간 연마해 온 이 분야의 장인이다. 무협지로 비유하면 이기 어검, 특별한 초식이 없어도 나오는 경지이다. 행동양식과 소통 방식에 탁월하게 녹아 있는 그의 솜씨는 사회생활에서 빛을 발한다. '외아들 티 내지 말라.'는 율법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외아들의 부모는 그를 더욱 엄격하게 키웠고, 그는 자기를 감추는 것과 티 내지 않고 사는 삶(사실은 티가 나지만 나름대로)에 너무나도 익숙하다.


  그는 이기 어검이지만, 금강불괴는 아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는 훌륭한 인격자가 아니라 아직 제대로 된 적수를 만나본 적이 없는 '관계 초보자'이다. 그리고 결혼과 동시에 그는 최강의 적수, 평생의 라이벌을 만난 것이다. 음하하. 영혼의 서울 메이트, 평생의 동반자요 반려자인 아내다. 그는 (심각한) 갈등을 제대로 겪어본 일이 별로 없다. 형제간에 피자 한 조각으로 서러워 본 적이 없다. 맘에 안 드는 옷을 물려 입어 본 적도 거의 없고,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이 없었던 적도 거의 없다. 억울해 본 일이 상대적으로 적기에, 억울한 일에 대한 내성도 쪼렙이다. 뭐 사실 외아들 아니라도 이 영역은 누구나 자신 없는 분야이기는 하다만.


  더 큰 문제는 그가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주변 사람들과 어른들이 보기에는 참으로 참한 사람이다. 자기 자신도 그렇게 믿고 있다. 왜냐하면 아무랑도 그렇게 싸워본 적이 없거든. 거기서 그의 억울함과 오해는 폭발적으로 증식한다. 사실 형제 많은 집에서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으며 여기까지 온 호적수의 입장에서는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고 싸울 일도 아닌데 말이다. 


  자기는 어떤 여자랑 살아도 잘 살 자신 있었다나? "참내 웃겨. 연애할 때는 각자 집에 가서 자고 오니까 오빠빠빠 사랑해요 하는 거지. 같이 사는 여자는 누나 같기도 하고 여동생 같기도 하고 엄마 같기도 하고 딸 같기도 한 거란다 아가야. 너는 사실 진정한 의미에서는 여자라곤 엄마밖에 몰라서 힘든 거야." 그렇게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밑바닥을 훤히 들여다볼 정도까지 비참해지고, 또 서로를 비참하게 만들면서 갈등한다.




  외아들 엄마에게 아들은 거의 신에 가까운 존재다. 그 시절 우리네 엄마들은 남편과 나누어야 할 정서를 아들과 나눌 수밖에 없었다. 아빠들 잘못만도 아니지만, 참 힘들게 사셨다. 그러니 엄마와 그 독생자의 정서적 유대는 어마어마하다. 사이가 좋으나 안 좋으나 시엄마에게 며느리는 귀한 내 아들 뺏어가서 고생시키는 쥐며느리다. 너무 솔직하게 표현해서 놀라는 분이 없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대부분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마는 마냥 꽃길만 걷기란 불가능하다. 사실 누구를 탓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때는 원래 그렇다는 얘기를 하는 거다. 너무 놀라지 말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처음에는 이 정도도 몰랐다. 외아들과 사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니 다르게 살아온 사람과 함께 살며 사랑한다는 게 어떤 뜻인지 전혀 몰랐다. 그러니까 무작정 밉기만 하고 복장이 터질 노릇이었다. 일일이 말하자니 '이런 것까지 말해줘야 아나?' 싶어서 자존심이 상한다. 말 안 하자니 외아들 종족 특성인 '높은 자존감'이 눈꼴 틀리다. 그렇게 와장창 깨어지고 끔찍하게 부딪으며 '성격 차이'가 무엇인지 배워간다. 


  그것은 세계관의 차이, 인간관의 차이, 인생관의 차이, 소통 방식의 차이, 경제관념의 차이, 갈등 해결 방식의 차이 등등 모든 것을 포함하는 '다름'이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꼭 외아들만 그런 것은 아니더라. 거울처럼 나를 비추어 보니 형제가 있다고 꼭 갈등 해결 능력이 출중한 것도 아니더라. 그래서 때린 사람은 없는데 맞은 사람은 많고, 모두 억울하기만 했었다. 그땐 그랬지. 참 어렸었지. 늘 지루했지. 설레는 젊음 하나로 그땐 그랬지.




  이제 10년쯤 그렇게 살았다. 10년쯤 더 산 부부들은 말한다. '어휴, 싸울 힘이 있어? 젊네.' 그렇다. 그렇게 조금씩 힘이 빠지고, 조금씩 이해도 된다. 험악한 세월을 보내며 그도 나도 많이 변했다. 같이 사는 사람 비위도 맞출 줄 알게 되었고, 한 번쯤 넘어가 줄 줄도 알게 됐다. 심지어는 쇼핑도 먼저 가자고 말할 줄 알게 되었다(!). 


  여기쯤 오니 시엄마도 이해가 가고 시아빠도 사랑스럽다. 그래서 그 아들도 사랑스럽고, 그 아들의 아들과 딸도 사랑스럽다. 사랑하니까 힘든데, 힘들어도 사랑한다. 그게 가족인가 보다. 결혼은 장난이 아니었다. 사실 외아들과 사는 법 같은 건 없고, 외아들이라고 특별히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사람은 다 이상하다. 원래 나랑 다르면 다 이상한 거다. 그냥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건 원래 어렵고 시간이 많이 필요한 일이었다. 이걸 알고 시작했다면 좀 덜 힘들었을까? 아마 아닐 거다. 


  그래도 우리와 비슷하게 힘들었던, 지금도 그렇게 버티고 있는 중인 친구들에게는 이 글이 닿아서 오늘 하루 쉴 숨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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