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르미 Apr 07. 2021

부부간의 사랑은
타이밍이 거의 '항상' 다르다

네가 삐졌을 때 내가 풀리고, 내가 삐졌을 때 네가 풀리는 미스터리

  왜 그런지 모르겠다. 사랑도 생리처럼 주기가 있는 건지, 서로를 향한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시댁이나 처가와의 갈등, 육아와 살림, 경제 상황 등의 부재료들을 넣으면 에버랜드의 T-익스프레스(아직도 못 타보긴 했지만)를 타는 느낌의 감정 기복 요리가 탄생한다.


  둘 다 안 좋을 때는 폭발하거나 침묵한다. 10년 차쯤 되니 서로 언제 조심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의 선을 지켜야 하는지 그런 감이 조금 생기기는 했지만 여전히 쉽지는 않다. 그런데 더 쉽지 않은 상황은 한 사람이 올라가고 한 사람이 내려갔을 때이다. 단순히 기분 말고, 서로를 향한 마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몰랐다. 내가 너를 사랑하면 그만큼 너도 나를 사랑해야 하고, 서로의 사랑이 공평해야 한다고 믿었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여러 이유로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아침에 출근할 때 나눠줄 에너지가 있었을지라도, 저녁에는 서로에게 나눠줄 마음 한 자락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밥 차리고 설거지하고 빨래 돌리고 돌아서면 또 점심. 청소하고 빨래 개고 (중간에 할부 10개월로 입양한 건조기는 신의 한 수였다.) 나면 저녁. 애들 숙제라도 조금 봐줄라치면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내 존재를 향한 의문. 거기서 만나는 내 진짜 인격과 인내심의 한계.


  그(그녀)도 비슷하다. 3,40대의 삶이 대부분 그러하듯 고단하다. 배우자에게도 다 말할 수 없는 부담을 짊어지고 하루 종일 일과 사람에게 시달리며 일하는 기계로 살다가 집에 온다. 홈, 스위트 홈. 가정의 평화와 안녕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기 전까지 막판 스퍼트를 내야 한다. 우리의 행복은 어디에 있는 걸까. 첫째가 둘째에게 소리를 지른다. "집안 꼴이 엉망진창이야! 빨리 안 치워!" 도대체 인테리어 집 꾸미기 이런 글 쓰는 사람들은 외계인인가? 초능력 슈퍼맨인가? 돈 많은 배트맨인가? 한 달에 천만 원쯤 벌면서 집안일 도와주는 이모님을 불러서 가능한 건가?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며 애들을 재우고 억울해서 넷플릭스 한편 틀어 놓고 그냥 잠들어 버린다. 어디까지 봤는지 기억 안 나서 다음날 다시 처음부터 봐야 하는 건 일상이다.


  그러면서 서로의 마음을 살필 기회를 잃어버린다. 사실 어떤 마음으로 말하는지 이해하면, 못할 말도 없고, 못 들어줄 말도 없다. 그게 부부의 세계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너무 고단했기에 말 한마디, 마음 한 줌 받아줄 주머니가 없었다. 그래서 너는 너대로 많이 외로웠고, 나도 참 많이 울었다. 어느 날, 정나미가 떨어져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끓어오르지 않아서 탓도 해보고 자책도 해 보았지만, 내 마음 하나 내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처절한 현실만 배웠다. 우리는 마음이 마음대로 안돼서 둘다 마음이 아팠다.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네가 힘들 때를 위해 내가 있구나. 내가 피곤할 때를 위해 네가 있구나. 우리는 서로를 이기기 위해 살아가는 적과의 동침을 그만두기로 했다. 네가 저 아래로 내려가 있을 때, 상태 좀 괜찮은 내가 양들의 침묵을 택하기로 했다. 우리 집은 부부간 갈등이 생기면 먼저 사과하는 쪽에게 아이들이 박수를 쳐 준다. 아이들과 함께 하니 조금씩 수월해지기도 한다. 올포원, 원포올. 홈. 스위트 홈.


  세상에 나온 지 10년도 안 되는 것들이 100년 묵은 여우 같이 군다. 부모의 갈등과 화해를 보며 아이들은 먼저 사과하는 것이 어렵지만 멋진 일이라는 것을 배워간다. 부모는 미안한 마음을 담아 아이들의 롤러코스터 같은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나도 그랬으니 너도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하며 기다린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함께 하며 큰 딸에게서는 이제 약간 전우애가 느껴지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분위기가 이상한 것 같으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배시시 웃으며 '엄마(아빠) 화↗났↘어↗?'라고 묻는 아들내미 앞에서는 이제 그냥 이를 악물고 웃어버릴 때가 많다.


   부부간의 사랑, 서로를 향한 마음은 원래 타이밍이 자주 어긋난다. 여러 이유로 말이다. 10년 전에 이 정도만 알았어도 조금 덜 힘들었을 텐데. 조금 덜 힘들게 했을 텐데. 미안해서 쓰는 글이다. 사과할게. 진심으로.

        

이전 06화 외아들과 함께 사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