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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두막 Jul 22. 2022

한 번의 실패, 1년의 기다림

  내가 최진석 교수님의 존재를 안 것은 아마도 2013년이었던 것 같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교수님의 노자 강의를 띄워준 것이다. 그 이후로 교수님은 내 인생의 화두가 되었다. 아주 좋은데 내가 한 번에 삼키기에는 너무 깊고 넓고 높았다. 그래서 내내 붙잡고 끙끙대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내 고뇌는 절정으로 치달아갔다. 2020년 7월 나는 첫째 아이를 핑계 삼아 육아휴직을 단행했다. 당시 아내도 휴직중이어서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기본학교 1기 모집공고를 보게 되었다. 그때 참 신비한 기분에 젖었던 거 같다. 뭔가 내 상황과 갈망에 딱 들어맞는 기회가 찾아온 것만 같았다. 한껏 들떠서 아내에게 이야기했던 게 생각난다. 

 기본학교는 세 차례의 관문을 통과해야했다. 1, 2차 에세이와 3차 면접이었다. 주제는 1차가 ‘왜 기본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은지’, 2차가 ‘감각적이고 경험적인 태도와 지적인 태도 중에 어느 태도를 가진 사람이 더 올바르고 공적인 삶을 살 가능성이 큰가?’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1기 전형에서 떨어졌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그때 잘 떨어졌다. 2기 모집까지 1년 동안 나를 더 준비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얘기를 하나 하자. 1기 2차 관문에서 나는 방향을 잘못 설정했다. 나는 지적인 태도보다 감각적이고 경험적인 태도가 더 낫다고 글을 썼다. 이것은 단순히 글 한 편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 인생이 달린 문제였다. 내가 실제로 그런 관점을 가지고 여태 살아온 것이었다. 지적인 태도와 감각적인 태도에 대한 시선이 마구 섞이고 이해가 제대로 서 있지 못했다. 나는 불과 얼마 전에야 이에 대한 깨달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1기에는 떨어졌지만 훨씬 더 큰 것을 얻었다. 12월 15일에 둘째가 태어난 것이다. 아기가 너무 빨리 나오고 싶어 해서 아내는 대학병원 고위험산모실에 한 달간 꼼짝 않고 있어야 했다. 물론 나도 그 옆에 있었다. 만약 1기에 합격했으면 둘째를 만나고 키우는데 애를 먹었을 거라고 생각하며 불합격을 위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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