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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두 세계 04화

창작도 일의 영역이 될 수 있을까?

부산 문우당 서점에서 작가 두두 첫 북토크를 하다

by 두두

북토크를 준비하며, 일 실험 - 일과 창작 사이에 중첩되는 장면-을 부지런히 수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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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총 2가지 유의미한 현상을 발견했다.



1) 선순환의 구조

: 일터에서 100%를 집중해서 몰입하면 창작에서도 100%로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가 차오른다. 물론, 지금 하는 일은 꽤 정적이고 calm한 종류의 일이기 때문에 다른 종류의 뇌를 쓰는 듯한 발런스가 있다.


2) 다른 주제, 같은 방법론

일터에서 하는 전략 기획 운영, 데이터 분석의 결과 독립출판물을 만들거나, 모임을 만들거나, 행사를 기획하는 일은 전혀 다른 주제의 일이다. 하지만, 일을 하는 방식에 있어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일례로, 일터에서 고객사 앞에서 영어로 발표를 한다거나, 온라인 미디어 교육 클래스를 맡아서 2시간 짜리 안내 세션을 진행한다거나 하는 하는 성격의 일을 2주 사이에 2번이나 하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진메이킹클럽' 모임에서 우리가 기획하고 주최한 '진경험공유회'도 온라인으로 2번이나 말할 기회를 직접 마련했다.


듣는 청중들 앞에서 말을 할 기회가 갑자기 불어나게 된 것이다. 너무 떨리고 막막해서 끝까지 준비를 미룬 적도 있었다. 내가 느끼는 압박감과 부담감이 너무 깊어서 계속해서 회피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좋은 스트레스로 전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아침에 더 집중이 잘 되는 것을 파악해서 새벽에 일어나 발표 자료를 준비하고, 주말에 약속을 통으로 비워내 계속해서 발표를 연습하고 다듬고, 직전까지 최선을 다하는 나만의 방식을 택했다. 미리미리 해내지는 못하지만, 벼락치기에 능한 타입도 있듯이 나는 몰아서 한꺼번에 나의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방식이 잘 먹힌다는 걸 체감하게 됐다.



1차 두두 작가 사진 20250501-2.jpg

북토크를 진행하면서 느꼈던 고민

3) 북토크 때 나에게 최대의 고민을 안겨준 세션이 있었다.

바로 정통 문학계를 겪으신 30년차 작가님과의 대담 및 QnA 세션. Zine과 독립출판물 세계의 문외한으로, 고등학생 때 시인으로 입단하여 쭈욱 글과 시나리오, 극을 써오신 작가님은 시작 전부터 이 대담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난감'했다는 식으로 솔직 대담(?)하게 자신의 심정을 풀으셨다.


이후 이어지는 1시간의 토크와 질문 사이에서, 주로 독립출판을 만드는 내가 '일을 따로 하고 있는지' 질문을 하시고 나서 계속해서 이 이야기를 언급하시며 절대로 작가로서만의 길을 선택해서는 안된다, 해봤는데 그건 나락으로 가는 길이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려고 하면 힘들다, 일을 따로 하고 있는 것은 똑똑한 선택이다, 는 코멘트를 주시면서 틈틈이 창작의 팁을 일러주셨다.



과연 나는 정말 '취미'로만 이 일을 하고 있는걸까?
일이라는 것은 꼭 밥벌어먹고 사는 일이어야만 하는걸까?
내게 일은 뭘까?





나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일이라고 생각한다. 회사를 다니며 기여하고 월급을 받는 것도 일이고, 내가 좋아하는 zine의 세계에서 독립출판물, 꼴라주 북을 손으로 오려붙이고 만드는 것도 일이다. 창작하는 동료들과 함께 작당모의하며 zine을 알리는 온라인 경험 공유회를 여는 것도 일이고, 북페어에 신청하는 것도 일이다.


다만, '일'이라는 어감은 누구에게는 '해야만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좋아하고 열정있는 것으로 돈을 버는' 것으로 다가올 수도 있듯이, 내게도 이미 '일'이라는 단어는 다양한 층위의 레이어로 덧입혀진 꼴라주 같은 단어이다. 그래서 '일'이라는 단어 앞에서 나도 모르게 두 세계에 발을 걸쳐 놓은 것의 의미에 대해서 계속해서 더 스토리를 입히려고 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새로운 이미지의 의미를 모르니까.


그렇다면, 내게는 '일'이라는 단어 말고 다른 말로 대체해야 더 명확한 나만의 일을 표현 할 수 있는게 아닐까? 실험이 필요하다. 나는 경계를 허무는, 경계를 엮는, 중첩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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