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없는데
세계사 시간에 러다이어트 운동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그 사람들이 이해되기는 했지만 쓸데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당장 기계를 좀 부순다고 무언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시위의 일환으로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킨 것일지도 모르지만… 결국 기계로 대체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부분이 대체되었지요.
지금 출판계 역시 비슷한 상황입니다. AI가 발달하더라도 창작의 영역은 건드릴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창의성과 전략을 시험하는 게임인 바둑, 예술의 영역이던 그림, 음악 등 가장 늦게 침범될 줄 알았던 영역을 차근차근 점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출판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아무래도 그림이겠지요.
현재 유튜브는 물론이고 노벨피아를 비롯한 여러 웹소설 사이트에서도 AI그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광고 업계에서도 간단한 오브젝트는 AI그림으로 대체한다고 하는데다 몇몇 책의 경우에는 표지를 AI그림을 기반으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계에서는 이런 세태를 크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출판사 일을 시작하며 이전에 제가 알던 세계가 너무 작다는 것을 매일 새롭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 중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AI였습니다. AI가 빅 데이터로 어쩌고 하는 것뿐 아니라, 마치 ‘컴퓨터에는 반도체가 들어간다.’라는 정도의 상식처럼 ‘아이템에는 AI가 접목된다.’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저희는 출판사인데도, 사업 계획서를 발표할 때 ‘초등학교에서 AI글쓰기 교육을 하는데, 그 쪽 사업 계획은 없느냐.’라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AI가 보편화 되어있었습니다.
저는 저희 출판사도 이런 AI를 도입해야 한다는 말을 꺼내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 빼고는 다 하고 있는데, 이대로 있다간 뒤처지고 말 거라고. 하지만 내부 반대가 무척 거세었습니다. 그림 프로그램은 창작자들의 그림을 무단으로 도용하며, 그로 인해 오히려 출판사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더 커질 것이라는 거였습니다. 실제로 창비 문학상을 수상한 『아몬드』의 경우 AI를 이용한 표지를 채택하였다가 크게 비판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저희처럼 작은 출판사의 경우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말겠지요.
하지만 결국 이번에도 AI 위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몇몇 사이트에서는 AI 일러스트 및 표지를 게재하는 것을 제제하지 않고, 미국 판례에서는 ‘AI그림에는 저작권이 없다’라고 판결이 났지만, 일본에서는 AI그림이라는 것을 명시하면 판매가 가능합니다. 몇몇 웹툰 작가들도 (논란이 되었지만) AI그림으로 컷을 사용하기도 했지요. 만약 이 창작업계에서 아무리 반발하더라도 결국 창작업계 외에 모든 것에서 AI가 당연시 된다면, 특히 같은 ‘콘텐츠’분야이자 동시에 기술 분야인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시작으로,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상황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무형 문화재처럼 보호받는 존재가 아닌 스스로 사람들에게 가치를 주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살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AI그림 뿐 아니라 글도 빠른 시간 내에 대체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특히 문체의 경우 몹시 빠르게 대체될 것이고, 스토리의 경우도 벤치마킹을 통한 작품 초안은 당장 나와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때가 되었을 때, 우리는 사진기가 처음 나왔을 때 화가들처럼 다른 살 길을 찾아야 합니다. 저는 그것이 체험과 경험, 그리고 해석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무기로 가지고 있는 기성 소설가들은 살아남을 것이고, 비교적 부족한 젊은 작가들은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AI그림을 배우고 있습니다. 존재하는 것을 그리는 것은 참 잘하지만, 상상의 동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정말 어려웠거든요. 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어쩌다 그런 일을….’이라며 안타까워 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막상 창작계의 최전선에 서 있는 사람들은 이미 이것을 받아들이고 활용하려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처럼 지방 끝자락에 있는 곳이 늦는 것이겠지요. 저는 조금이라도 빨리 이것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작권에 대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무단이용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밝혀지고 있는 만큼, 이를 무작적 '러다이어트'라고 말 할 수는 없습니다. 이를 어찌해야 좋을까요? 생각이 많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