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유이 Mar 26. 2024

감정 커리큘럼

알아보고, 표현하기

저는 어릴 적부터 예민했습니다. 정확히는, 어느 면에서는 예민하고 어느 면에서는 둔감했습니다. 마음이 심약했던 저는 정말 작은 상처만 받아도 세상이 끝난 것처럼 슬퍼했고, 아주 작은 호의만 있어도 세상을 다 가진 양 행복해 했습니다. 그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은 늘 그렇게 움직였습니다. 저도 어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찌 할 수 없다면 그걸 그냥 받아들이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나을지도 몰랐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감정이 몰려오면 그것을 피하지 않고 전부 푹 뒤집어 썼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오락가락하다보니, 어느새 모든 감정이 참 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토록 슬퍼하고 아팠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 아물고, 그토록 행복했던 감정들도 휘발되어 버리니 매 순간순간의 것들 것 집착하는 것이 무상해졌습니다.


이렇게만 말하면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라도 된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다릅니다. 저는 가끔 이런 제가 무섭습니다. 친구가 죽어 슬픔이 발끝부터 머리까지 들어차는데, 어차피 이 역시 지나갈 감정이라며 차근차근 감정을 청소하는 것을 보면 내가 어딘가 망가진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한편 주변에 저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도 결국 언젠가 떠나갈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또 그들의 눈물 한 방울, 웃음 한 번에 슬퍼하고 기뻐하는 제가 이해가 안 되기도 합니다. 원래 사람이란 그런 걸까요?


생각해보면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나누는 방법에 대해 배운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 지에 대해서는 고민하라 하고 물어보는데, 내가 어떤 기분인지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은 왜 배우지 않는 것일까요? 그렇기에 자신의 감정을 모르고, 알더라도 잘못된 방향으로 표출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의 저 처럼요.


감정을 알아채고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커리큘럼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게.

이전 24화 AI 러다이어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