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차
살아가다보면 사랑에 대한 생각도 변하기 마련입니다. 어릴 적, 저는 사랑이 명확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마음에 든다는 것을 한 눈에 알게 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몇몇 사람을 좋아했습니다. 그 중에 잘 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저는 늘 이별 선고를 받는 쪽이었기에, 처음에 느꼈던 사랑한다는 사실은 틀리지 않았으나, 상대는 내게 그 느낌을 받지 못한 것이라고만 생각하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몇 번의 연애를 거치며 사랑에 대한 생각도 점차 변해갔습니다. 첫 눈에 사랑했던 것은 그 사람이 아닌 저를 사랑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지요. 상대를 잘 모르는데 상대를 사랑한다니. 상대를 잘 모르면서 상대를 위해 행동했다고 말한다니.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것을 사랑이라는 말로 포장해버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때 그 감정도 진심이었으니 폄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저 나이마다 하게 되는 사랑의 형태가 있는 것이겠지요.
나이를 먹으며 한 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지 않게 되다니, 어릴 적 제가 참 싫어하던 말이었는데 저도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에는 마음에 드는, 아니, 들 것 같은 이성을 만나고도 멀리 앉아 발장구만 치며 지켜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라는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친구에게 임신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이전에 결혼할 생각이라고 이야기를 했던 것이 기억나, 그럼 이제 결혼 하냐고 물었습니다.
아냐. 아직 할 형편이 안 돼서… 보내줘야 해.
저는 이런저런 말을 건네보았지만 어떻게 들렸을지 모르겠습니다. 남자는 어쨌냐, 몇 주냐, 날짜는 잡았냐…. 문자로 왔다갔다 하는 말에 제 표정이 드러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참 답장이 없는 그녀가, 답장을 어떻게 보내올까요.
방금 전까지 들떴던 기분이 순식간에 추락합니다. 저는 지극히 인간적인 이런 낙차를 선호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