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보고, 표현하기
저는 어릴 적부터 예민했습니다. 정확히는, 어느 면에서는 예민하고 어느 면에서는 둔감했습니다. 마음이 심약했던 저는 정말 작은 상처만 받아도 세상이 끝난 것처럼 슬퍼했고, 아주 작은 호의만 있어도 세상을 다 가진 양 행복해 했습니다. 그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은 늘 그렇게 움직였습니다. 저도 어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찌 할 수 없다면 그걸 그냥 받아들이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나을지도 몰랐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감정이 몰려오면 그것을 피하지 않고 전부 푹 뒤집어 썼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오락가락하다보니, 어느새 모든 감정이 참 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토록 슬퍼하고 아팠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 아물고, 그토록 행복했던 감정들도 휘발되어 버리니 매 순간순간의 것들 것 집착하는 것이 무상해졌습니다.
이렇게만 말하면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라도 된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다릅니다. 저는 가끔 이런 제가 무섭습니다. 친구가 죽어 슬픔이 발끝부터 머리까지 들어차는데, 어차피 이 역시 지나갈 감정이라며 차근차근 감정을 청소하는 것을 보면 내가 어딘가 망가진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한편 주변에 저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도 결국 언젠가 떠나갈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또 그들의 눈물 한 방울, 웃음 한 번에 슬퍼하고 기뻐하는 제가 이해가 안 되기도 합니다. 원래 사람이란 그런 걸까요?
생각해보면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나누는 방법에 대해 배운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 지에 대해서는 고민하라 하고 물어보는데, 내가 어떤 기분인지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은 왜 배우지 않는 것일까요? 그렇기에 자신의 감정을 모르고, 알더라도 잘못된 방향으로 표출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의 저 처럼요.
감정을 알아채고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커리큘럼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