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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아이린 Oct 21. 2024

시월의 일상 한 페이지

시 <국화 앞에서>

 엄마가 병원 가는 날이다. 이,삼 개월마다 병원에서 약을 타다 드리는데 이번은 엄마가 꼭 내원해야 한다고 해서 모시고 갔다. 오랜 기간 거동이 불편해서 외출을 못하다가 몇 개월 만에 바깥 구경을 하는 엄마. 더운 여름이 지나고 단풍 드는 가을이 왔는데 택시 안에서 내다보는 풍경이 다라니, 마음이 쓴 커피를 마신 것 같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불안해하는 중얼 거림이 들린다. 동생이 엄마의 애창곡 이미자 트로트를 틀어서 헤드셋을 씌워드린다. 기사님이 엄마 나이를 물어본다.

- 칠십 대 중반요. 편찮으셔서 병원 가는 길이에요.

사람들이 엄마 나이를 물어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딱한 처지를 동정하는 눈빛이다.

- 저희 어머님은 구십 이세인데 집에 요양보호사가 오고 있어요.


 여기저기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들을 많이 보게 된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가 되는데 2025년 내년에 그 진입을 앞두고 있다. 앞으로 50년 후면 65세 이상 인구가 국민 2명 중 1명이 될 전망이다. 그러면 우리 엄마 같은 뇌 질환을 앓는 사람들도 늘어날 텐데, 돌봄 인력이 많이 필요해지겠다. 우리가 더 나이 들었을 때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어느덧, 이십 여분을 가니 병원에 도착했다. 예약 시간에 맞추어 갔지만 대기 환자가 있어 기다리다 주치의를 만났다. 그동안 잘 지내셨냐는 인사에 대답을 제대로 못하고 어물거린다. 노래를 따라 부를 때는 발음이 잘 나오는데, 말할 때는 그렇지 못하다. 노래 부를 때와 말할 때 쓰는 뇌 부분이 달라서 그렇다고 한다. 작년 여름에 찍었던 뇌 사진을 확인하고 양 쪽 뇌 작아지는 범위가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며 약을 처방한다.

- 아침에 드시던 약만큼 점심 약을 늘려드릴게요. 따로 포장해 드릴 테니까 부작용 있으면 기존대로 드세요.


 식사는 잘하는지, 움직임은 어떠신지 짧은 문답이 오고 갔다. 5분 정도 있다가 다음 예약을 하고 나왔다. 이렇게 짧게 보고 오는 데, 힘든 발걸음을 하느라 아침부터 바빴다. 택시에 앉히려고 엄마를 휠체어에서 들어 올려 옮기고, 내릴 때는 트렁크에 실은 휠체어를 꺼내 들어앉히며 동생이 애썼다. 허리와 무릎 관절이 안 좋아졌음에도 짊어지는 무게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사람마다 살면서 겪을 힘듦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데 오늘은 그 무게를 조금 채운 날이다.

 움직임이 힘든 엄마를 어떻게 병원에 모시고 가야 할지 걱정이었는데, 큰 숙제를 한 것 같다.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면 좋을 텐데.


 근처 공원 꽃밭에 국화가 활짝 피었다. 사진을 찍어 엄마를 보여주었다. 꽃을 유심히 볼뿐 말이 없다. 병원에 다녀오느라 피곤했나 보다. 잠시 쉬었다가 산책 나가요.





국화 앞에서


어릴 적 생일선물로

국화 꽃다발 드렸을 때

엄마는 고맙다며  

환한 얼굴로 웃어주었다


시험 끝난 어느 가을날

분홍, 노랑 국화 밭 앞에서

사진 찍으며 산책하던 공원

꽃은 얼굴 내밀고

다시 찾아와 인사하는데

엄마는 아는지 모르는지

가을을 품고 다가온 꽃을

바라만 본다


곧게 허리 세운 꽃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막새바람에 실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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