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신 뉴스'의 얼굴

뉴스 앵커 I

by Spero

"사망 선고는 뉴스가 하는 게 아니야"

미드 '뉴스 룸'에는 긴급뉴스 생방송을 놓고 갈등하는 앵커의 모습이 리얼하게 나타난다.

가브리엘 기포드 하원 의원과 보좌관들이 괴한의 총격을 받았다. 투산 대학병원으로 후송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와중에 NPR(미 전역을 커버하는 라디오 방송)에서 의원 사망 소식을 전한다. MSNBC, FOX, CNN이 잇따라 속보로 사망 소식을 긴급 방송한다. 스튜디오 안에는 앵커 윌이 대기하고 있고 스튜디오 밖에선 빨리 사망 소식을 전하고 난리다. 윌은 주저한다. 스튜디오 밖에서 다그친다.

"빨리 사망 멘트 하라고! 매 초마다 천 명이 채널을 돌린다고!! 그게 이 바닥의 생리야!!!"

그때 한 뉴스 PD가 말한다.

"사망 선고는 의사가 하는 것이지 뉴스가 하는 게 아녜요."

윌이 전하는 1보,

"저희가 이제까지 파악한 것은 가브리엘 기포드 하원의원을 포함한 12명이 애리조나 투산 지역 마을회관에서 괴한 총격 때 부상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낙심하는 스튜디오 밖, 그러나 의원이 생존해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이어지는 윌의 속보.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기포드 하원의원이 현재 수술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지금 현장에 ACN 통신원이 파견되어 있습니다. 소식 전해주시지요."

이 시퀀스는 J.F.K 암살 당시 CBS 뉴스룸의 월터 크롱카이트가 보여준 앵커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크롱카이트는 대통령의 사망 여부를 현장 취재기자인 댄 래더(크롱카이트에 이어 후에 CBS의 간판앵커가 되는)에게 끊임없이 묻고 또 묻는다.

"사망이 확실해?"

현장 취재기자의 팩트를 바탕으로 한 사망 소식을 확인한 뒤 부고를 전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케네디 대통령이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닙니다(Officially not confirmed.)"라고 방송한다. 그리고 사건 발생 38분이 지난 다음 공식적인 인용을 통해 대통령 사망 소식을 전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v4q898h05HQ) 이후 월터 크롱카이트는 미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인물 리스트에 오른다. '미디어 트레이닝' 두 번째 글에서 인용한 그의 말을 다시 한번 상기하자.

"나는 위대한 신, 뉴스를 경배했다."

뉴스의 얼굴이 곧 '앵커'다.


뉴스 콘텐츠의 최종 전달자

앵커는 방송사 뉴스를 대표하는 얼굴이다. 시청자는 앵커라는 창을 통해 뉴스를 접한다. 앵커멘트를 통해 시청을 유도한다. 큐시트, 즉 뉴스 진행표에 따라 뉴스의 흐름을 정리하는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뉴스에 신뢰감을 부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앵커가 앵커멘트를 통해 “000기자가 보도합니다.”라고 안내를 해도 시청자는 그것이 앵커가 취재 보도하는 것으로 판단하기 쉽다. 앵커의 신뢰도가 곧 뉴스에 대한 신뢰도다. 마샬 맥루한(1911~1980)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말했는데, 방송뉴스에 있어서 미디어는 곧 앵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앵커는 곧 메시지이고, 그 앵커의 이미지는 곧바로 방송사의 이미지와 직결된다. 앵커를 통한 뉴스 전달은 기존의 아나운서가 뉴스를 전달하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아나운서가 뉴스를 읽는 수준이라면, 앵커는 뉴스를 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앵커멘트를 작성하고, 코멘트를 달기도 한다. 최근엔 ‘앵커 브리핑’, ‘앵커의 시선’과 같은 형태로 앵커멘트를 확장시키는 추세다. 앵커멘트뿐만 아니라 현장성을 높이기 위해 스튜디오를 벗어난 앵커가 현장에서 생중계를 하는 장면은 익숙한 풍경이다. 앤더슨 쿠퍼나 크리스티나 아만포 같은 유명 앵커들이 재난이나 분쟁 현장에서 직접 마이크를 들고 라이브로 방송 진행을 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미국의 앵커 시스템


방송뉴스의 앵커 시스템은 미국에서 시작됐다. 앵커맨이란 표현 역시 1952년 미국 3대 지상파 방송(ABC, CBS, NBC) 가운데 하나인 CBS TV의 이브닝 뉴스에서 처음 나왔다. 그 주인공이 바로 월터 크롱카이트이다.

월터 크롱카이트는 뉴스앵커의 전설이다. 그는 미국 CBS의 간판 뉴스 프로그램인 <CBS 이브닝 뉴스> 1962년부터 1981년까지 19년 동안 진행했다. 앞서 언급한 1963년 J.F.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 브레이킹 뉴스, 1969년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 순간,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 등을 다루면서 ‘미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공인’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하게 구축했다. 앵커로서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는 ‘신뢰’ 이미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가지고 갈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언론의 사명이라고 할 수 있는 ‘중립’의 가치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뉴스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불편부당성(impartialtility), 공정성(fairness)을 의미한다. 그가 수습기자들에게 조언한 다음과 같은 항목은 저널리스트의 덕목과 크게 다르지 않다.


1. 자신에게 떳떳하라

2. 머리로 기억하지 말고 가슴으로 느껴라

3. 이웃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라

4. 사실 보도를 하면서 비난을 감내하는 용기를 가져라

5. 동료들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라

6. 다른 시각으로 보도하는 것을 두려워 말아라

7. 상사에게 올바른 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8. 정직! 정직!! 정직!!! integrity

(National Press Club 창립 90주년 만찬 연설 중 19980405)


댄 래더(CBS), 톰 브로커(NBC), 피터 제닝스(ABC) 등 이른바 3대 지상파 방송사의 ‘빅 3’가 군림하면서 미국의 앵커 시스템은 방송뉴스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언론사 입사 5년 차였던 1992년 CBS 뉴욕 뉴스룸을 견학했을 당시 댄 래더는 '신'의 경지(?)에 있었다. 그는 24년 동안 CBS 뉴스의 간판앵커였고 200주 연속 시청률 1위를 기록했던 최고의 앵커였다. 신의 자리에 앉아 보니...^^


우리나라의 앵커 시스템


미국의 앵커 시스템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인 우리나라는 1970년 대 TBC 방송의 ‘안녕하십니까 봉두완입니다’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앵커 시대를 열었다. 이후 1980∼1990년대 KBS 최동호·박성범·이윤성, MBC 이득렬·강성구·엄기영, SBS 맹형규 앵커가 등장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취재기자를 거친 앵커들로 기존 아나운서들이 뉴스를 진행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뉴스를 전달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들은 취재기자 시절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뉴스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아나운서들이 취재기자가 써놓은 원고를 읽는데 충실했다면 앵커는 앵커멘트 작성을 통해 리포트의 핵심을 전달하기 위해 해설을 달고, 시청자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특정 사안에 대한 앵커의 코멘트를 달기도 한다. 이 같은 앵커의 롤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앵커의 입지가 중요하다. 의사 결정을 따르는 위치에서 때론 의사결정을 내리는 위치로 격상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까지 방송사 내 앵커의 직위는 부장 또는 국장의 직급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방송사 메인 뉴스의 앵커는 방송사 내 의사결정권자 또는 그에 준하는 위치에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JTBC 손석희 앵커의 사례에서 보듯이 해당 방송사의 사장이 앵커 롤을 맡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 최근 추세이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존재한다. 뉴스전문채널인 YTN 같은 경우 시간대별로 다양한 뉴스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이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기 위해 복수의 앵커가 시간대별로 출연한다. 이들 앵커는 취재기자 출신인 경우도 있고, 처음부터 앵커로 선발된 젊은 앵커들도 있다. 따라서 독자적인 뉴스의 편집권을 행사하기보다는 뉴스 편집시스템에 의거해 뉴스 진행자, 뉴스 프레젠터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논평의 기능은 최소화하고, 전달의 기능에 무게중심을 두는 것이다. 최근 들어 이 같은 롤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앵커가 뉴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부분, 나중에 설명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