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한민국 뉴스채널 YTN의 앵커팀장이었다
이 직책에 지금도 자부심을 갖는다.
팀장 때 뽑은 후배들이 지금도 YTN에서, 지상파에서, 종편에서 현장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 뿌듯하다. 앵커를 꿈꾸는 미래의 저널리스트들이 많다. 퇴직 후 강단에서 그 꿈을 확인하며 미래의 꿈나무들에게 주고 싶은 조언을 생각해보았다.
앵커의 자질
① 신뢰감
뉴스의 최종 전달자 앵커는 신뢰감이 있어야 한다. CBS 뉴스에 대한 신뢰는 월터 크롱카이트의 신뢰감이 결정적 요인이었다. 그가 뉴스앵커로 있는 동안 미국민들은 그가 전하는 뉴스를 믿었다. 그를 신뢰했기 때문이다. 신뢰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 특히 정치적 중립이 중요하다. 앵커가 폴리널리스트적 성향을 내비칠 때, 시청자는 그가 전하는 뉴스를 신뢰하지 않는다. 앵커라는 신분이 정계 진출의 수단이 되었거나 앵커라는 신분으로 정치적 지향성을 드러낼 경우, 시청자는 저널리스트로서의 그를 더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② 전달력
전달력은 앵커의 기본 소양이다. 앵커로서의 전달력 1순위는 정확한 발음이다. 정확한 발음에 실리는 멘트는 고저강약이 분명해야 한다. 또박또박 읽는 것은 아마츄어다. 프로페셔널은 단어 단위로 리딩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 전체를 콘트롤 하면서 전체적으로는 스피디하게 그러나 중요한 내용 전달 부분에서는 적절한 포즈를 두고 리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용을 꿰고 있어야 한다. 띄어쓰기를 잘한 글이 잘 읽히는 것처럼 띄어읽기를 잘한 말이 잘 들린다.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를 어느 곳에 포즈를 두느냐에 따라 누가(who) 강조되기도 하고, 무엇이(what) 강조되기도 한다. 어법에 맞는 글이 잘 읽히듯, 화법에 맞는 말이 잘 들린다.
③ 순발력
돌발적인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은 생방송을 진행하는 앵커에게 중요한 자질이다. 당황하는 순간 시청자들의 신뢰는 떨어진다. 진행자가 사안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앵커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모른다고 당황하면 그것은 아마츄어다. 시간을 벌기 위해 출연자에게 적절한 질문을 던질 줄 알아야 하고, 새로운 소식을 기다리는 동안 과거 뉴스를 언급하는 콘텐츠를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인터뷰이가 황당한 답변을 하면 이를 교정하는 능력을 보여줘야 하고 역질문을 받을 경우 여유있게 답변하는 순발력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④ 개성
시청자는 천편일률적인 앵커에 관심 없다. 판에 박은 듯한 외모, 평이하게 읽는 원고, 과도한 제스츄어에 몰입하지 않는다. 평균치는 기본이고 그만 보여줄 수 있는 방식, 그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뉴스 진행에 매력을 느낀다. 상대에 대한 배려를 잃지 않으면서 뚜렷한 개성을 보여주는 캐릭터일 필요가 있다. 개성은 탄탄대로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역경 속에서 만들어 진다. 24년 동안 CBS뉴스 최장수 앵커였던 댄 래더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로컬스테이션 무명 라디오 방송국DJ 출신이었다. 그는 이러한 핸디캡에 아랑곳하지 않고 케네디 대통령 암살, 워터게이트 사건 취재 현장에서 직선적이고 용기 있는 저널리스트의 개성을 보여주었다. 월터 크롱카이트의 바톤을 넘겨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⑤ 겸손한 자신감
지나친 자신감은 만용이고 과도한 겸손은 비겁이다. 진정한 겸손은 용기 있는 자가 보여주는 것이다. 중용을 견지해야 한다. 미디어(Media)는 말 그대로 med 중간을 지키는 것이다. 자신감의 바탕은 믿음을 주는 언행에 있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뉴스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 때 자신감이 만들어 진다. 뉴스를 읽고 또 읽고 그 뉴스를 확실하게 꿰고 있는 상태에서 겸손한 자세로 뉴스를 전할 때 시청자는 앵커를 신뢰한다. 뉴스는 팩트다. 그 팩트 위에서 만들어진 자신감은 출처가 불분명한 익명의 댓글에 흔들리지 않는다.
⑥ 공정함
앵커는 공정해야 한다. 논쟁적 사안일수록 균형감을 잃지 않아야 한다. 똑같이 시간을 배분하는 기계적 균형만이 최선은 아니다. 적절한 공정성(Due impartiality)을 견지해야 한다. 그것은 약자 편에 서는 것이다.
적절한 공정성은 서로 다른 관점 사이의 ‘균형’이라는 단순한 문제 그 이상을 포함한다. 포용적이어야 하고,
광범위한 관점과 다양한 관점들이 적절히 반영되도록 보장해야 한다. 적절한 공정성은 모든 문제에 있어서 절대중립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적절한 공정성은 투표권, 표현의 자유, 법치주의와 같은 민주주의 기본원칙들로부터 이탈하는 것이 아니다.
Due impartiality usually involves more than a simple matter of ‘balance’ between opposing viewpoints. We must be inclusive, considering the broad perspective and ensuring that the existence of a range of views is appropriately reflected. It does not require absolute neutrality on every issue or detachment from fundamental democratic principles, such as the right to vote, freedom of expression and the rule of law. (BBC Editorial Guidelines 4.1)
⑦ 건강
성철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딱 두 가지만 걱정해라. 지금 아픈가? 안 아픈가?”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위 7가지를 갖추었는가? 이제부터 비디오, 오디오 테스트에 들어가보자.
비디오
① 표정
링컨은 나이 마흔을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앵커가 되려면 신뢰감을 주는 자연스러운 표정이 나와야 한다. 신뢰감을 주기 위해 애써 진지한 표정을 지으려고 하는 것은 패착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만들어진 진지함은 대체로 긴장한 아마추어 모습일 때가 많다. 진지하되 긴장하지 말 것!
② 헤어스타일
머리는 단정하고 깔끔하게 한다. 이마를 가리는 헤어 스타일은 가급적 지양한다. 용모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머리칼이 이마를 가리는만큼 신뢰도가 가려진다고 생각하라. 지나칠 정도로 이마를 훤히 드러낼 필요는 없지만 대체로 반듯한 이마가 드러날 때 신뢰도도 함께 상승한다. 남자는 짧고 단정하게, 여자는 긴 머리일 경우 뒤로 묶는 것이 좋다.
③ 제스처
부동자세는 긴장을 유발한다. 움직여야 몸이 말한다. 리딩할 때 고개를 끄덕이는 방법으로 강약을 보여주면 효과적이다. 손을 쓰는 방법도 있다. 한쪽 손만으로 강조를 할 수도 있고, 양쪽 손을 다 쓰면서 강조할 수도 있다. 손을 특정한 방향으로만 쓰면 오히려 어색해진다. 적절하게 좌우 상하로 움직이면서 손을 쓰는 법을 익히도록 하자. 자신감이 붙으면 어깨와 얼굴 표정까지 동원하면 금상첨화. 하지만 뉴스란 장르는 어디까지나 팩트를 전하는 영역으므로 애써 연기까지 할 필요는 없다. 연기를 할 경우 신뢰도는 오히려 하강한다.
④ 아이 컨텍
방송스튜디오 메카니즘에 익숙하기 전까지 다소 헷갈릴 수 있는 대목이다. 눈높이 맞추기는 카메라를 의식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카메라를 사람이라고 생각하자. 카메라 렌즈를 사람 눈을 보듯 하자. 카메라를 보고 원고를 읽을 때 눈동자를 의식해야 한다. 원고가 좌우 방향으로 넓게 벌어질 경우, 눈을 돌리지 말고 고개를 돌리거나 어깨를 돌리는 방식으로 방향을 틀어 준다. 얼굴이 고정되어 있고 눈만 돌아 가면 화면에 비치는 모습이 불안하게 느껴진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
⑤ 메이크 업
메이크 업은 개성인 동시에 몰개성이다. 개성 있는 메이크 업은 장점이자 동시에 단점이다. 뉴스앵커의 경우 전형적인 모습이 있다. 그 전형을 따를 경우 몰개성이 되기 쉽다. 파운데이션에, 눈썹을, 그리고 입술을 그리는 방식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천편일률적이다. 따라서 자신에 맞는 메이크 업을 만들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거부감 없고 신뢰감 있는 메이크 업은 단독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표정, 헤어스타일과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오디오
①발음
앵커는 발음에서 결판난다. 발음이 불명확하면 수려한 비디오, 윤기 나는 오디오 모두 필요 없다. 기본적으로 발음이 똑똑 떨어져야 한다. 똑똑 떨어진다는 것은 또박또박 발음한다는 것과 다르다. 또박또박 발음하되, 어린 학생 책 읽듯 읽는 것이 아니라 고저강약이 분명히 느껴질 수 있도록 발음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두점을 정확하게 지키는 것 보다 문장의 구성 단위를 염두에 둔 포즈(띄어 읽기)두기를 통해 분명한 발음으로 전달하는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한다.
②볼륨
작은 목소리로는 뉴스 전달이 어렵다. 목소리 볼륨은 커야 한다. 도-레-미-파-솔-라-시-도에서 ‘솔’, 최소한 파# 음은 낸다는 생각으로 리딩해야 한다.
오케스트라 조율 시 오보에의 ‘라’ 음정에 키를 맞추는 이유를 항상 생각하자. ‘라’음은 인간의 귀에 가장 잘 꽂히는 음이다. 그만큼 구분하기가 쉽다.
③스피드
방송뉴스 전달은 기본적으로 스피디해야 한다. 느린 것보다 빠른 것이 좋다. 느려지면 처진다. 뉴스의 생동감이 떨어진다. 생동감 없는 뉴스는 집중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대화할 때 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로 리딩하는 것이 좋다. 스피드는 무조건 빠르게 읽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포즈와 연계해 생각해야 한다. 20초 분량의 단신을 읽을 때 1/20 단위로 스무개를 쪼개는 방식이 아니라 5/20-4/20-6/20-5/20 같은 방식으로 묶음 단위로 포즈를 두면서 리딩하는 방식이다. 띄어쓰기를 하지 않고 한 단어 한 단어를 모두 붙여서 쓴 글은 읽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다. 말도 마찬가지다. 띄어 말하기가 제대로 되어야 듣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띄어쓰기처럼 띄어말하기를 제대로 할 수 있을 때 청자가 화자의 뜻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스피디하게 띄어말하는 능력은 프로페셔널한 앵커의 필수 덕목이다.
④호흡
호흡은 포즈 두기와 관련 있다. 뉴스 원고를 리딩할 때, 숨 가쁘게 읽지 말고 묶음 단위로 포즈를 두어가면서 읽기 연습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복식호흡을 익히는 것이 도움이 된다. 장거리 달리기를 할 때, 어느 지점까지 전속력으로 질주하고, 어느 지점부터 적절하게 달릴 것인가를 염두에 두듯이, 호흡 조절을 통해 뉴스 리딩을 하는 것이 전달력을 높일 수 있다.
⑤표준말
“중류사회에서 쓰는 서울말”이라는 정의에 함몰될 필요는 없다. 지나칠 정도의 사투리 아닌 개성 있는 억양과 말투를 가지고 전달력을 높일 수 있다면 이 또한 얼마든지 장점으로 만들 수 있다.
마지막 한 가지 더,
매일매일 뉴스와 함께 할 것.
일상화 되지 못한 이상은 지속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