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1596~1650)의 출현은 ‘인간’, 그 가운데 ‘나’란 존재의 인식을 새롭게 정립하는 이정표가 되었다. 근대 철학의 포문을 연 이 명제는, ‘절대개인’의 등장을 알리는 계몽의 메시지였다.
신 중심의 사고에서 인간 중심의 사고로 전환을 알리는 슬로건이었다.
인간을 어둠으로부터 빛으로 나아게 한 계몽의 시대((enlightenment)를 거치며 J.S 밀(1806~1873)은 이렇게 썼다.
“전인류가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동일한 의견을 갖고 있고
한 사람만 이것에 반대 의견을 갖고 있는 경우,
인류에게는 그 한 사람을 침묵시킬 권리가 없다.
그것은 만일 그 한 사람이 인류를 침묵시킬 힘을 갖고 있더라도
그에게 인류를 침묵시킬 권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유론)
표현의 자유, 알 권리에 대한 권리장전과 같은 이 메시지는 이렇게 인류 앞에 선언된 것이다.
밀보다 앞서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고한 미국의 제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1743~1826)의 선언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저널리즘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조셉 퓰리처(1847~1911)는 이렇게 말했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가져라. 항상 대중의 복지에 헌신하라. 뉴스를 단순히 인쇄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잘못된 일을 공격하는 걸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약자 편에 서는 저널리즘 정신은 기계적 균형에서 진일보한 오늘날 bbc의 '적절한 공정성'(Due Impartiality)의 정신과도 맥을 같이 한다.
그렇다면 뉴스란 무엇인가?
1) 나는 그것이 알고 싶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알기를 원한다”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고대 그리스의 석학은 이미 기원전에 인간이 뉴스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신문편집인협회(ASNE)는 저널리즘의 목적과 관련해 “시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국민의 복지에 기여하는 것이다”라는 강령을 채택하고 있다. 이것은 계몽주의 시대에 중세의 어둠에 갇힌 사람들을 빛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NEWS란 North, East, West, South의 앞 알파벳을 조합한 것이란 주장도 있다. 공간적 함의를 담은 설득력 있는 정의이다. 하지만 속설일 뿐 정설은 아니다. 한국의 뉴스채널 YTN이 Yesterday, Tomorrow, and Now의 약자라는 설명처럼 실제와는 다른 것이다. News는 New things 새로운 사실들을 말한다. 프랑스 고어인 nouvelles, 중세 라틴어 nova로부터 유래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1560년대에 이르러 영어에서 new라는 단수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news라는 복수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들어서부터이다. 1616년 영국의 제임스 1세(James Ⅰ, 1566~1625)는 "No news is better than evil news"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2) 뉴스는 발라드였다
고대 그리스 시대 호메로스가 전한 영웅들의 무용담이 일리아스를 만들어 낸 것처럼 뉴스의 초창기 형태는 음유시인들이 전하는 사람 사는 소식이었다. 이른바 뉴스 발라드 형식이었다.
발라드란 무엇인가? 중세시대 음유시인들이 불렀던 시와 노래다. 자유로운 형식의 짧은 서사시를 말한다. 시와 노래는 대부분 서정을 노래하지만 그것이 서사의 성격을 띨 때 현실과 밀착된다. 노랫말에 담긴 팩트가 뉴스로 연결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2016년 대중가수로서 첫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된 밥 딜런의 노래를 들어보자.
(...) something is happening
And you don't know what it is
(Ballad of a thin man / Bob Dylan)
지금 여기서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어
그런데 당신은 그게 무엇인지 모르지
바로 이 부분, 알 권리에 봉사하는 저널리즘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뉴스는 바로 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리는 행위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빠른 소식을 전하는 ‘뉴스의 시대’는 그러나 19세기 초 인쇄술이 혁명적인 발전을 이룰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3) 가짜뉴스는 옛날부터 있었다
1836년 마침내 프랑스의 에밀 드 지라르댕은 ‘프레스’를 창간한다. ‘프레스’는 초창기 신문 매체를 뜻하는 보통명사를 뛰어넘어 지금은 라디오, 텔레비전, 뉴 미디어까지 아우르는 말 그대로 언론, 즉 ‘저널리즘’ 되었다. 미국에서는 1860년 대 후반부터 1900년까지 ‘뉴 저널리즘(new journalism) 시대’가 만개한다. 사람들은 이제 1 페니만 있으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언제 어디서나 사 볼 있는 저널리즘의 세상에 풍덩 빠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이 존재하는 법, 뒤에서 다루게 될 ‘가짜뉴스’의 폐해 또한 이 시대에 이미 싹트고 있었다. 실제로 ‘프레스’가 창간되었던 프랑스에서는 동시대에 <라 리브르 파롤> 같은 신문도 있었는데, 무고한 군인을 반역죄로 몰았던 ‘드레퓌스 사건’을 특종이란 미명으로 왜곡보도를 했던 바로 그 신문이다.
출처 : RETRONEWS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뉴스의 시대’를 통해 “교육에 대해 별의별 소리를 떠들어대면서도, 현대사회에는 자신의 구성원들을 가르치고 있는 가장 영향력 있는 수단(뉴스)을 검토하는 데 참으로 무심하다”라고 개탄하고 있다.
이 지점, 바로 우리가 ‘뉴스의 시대’를 생각하며 깊이 우려해야 할 대목이다.
신문이 주도하던 미디어 시장은 20세기 들어서면서 전파를 매개로 한 방송이 등장하면서 판도가 점차 바뀌기 시작한다.
4) 마침내, 방송의 시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발표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2(Digital News Report 2022)>에 따르면 뉴스 전문 채널 YTN이 신뢰받는 매체 순위(Brand Trust Scores)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SBS, KBS, JTBC, 연합뉴스 TV, MBC, MBN, 채널A 등 방송매체가 8위까지 모두 석권했다. 신문의 시대는 가고 방송의 시대가 온 것이다.
방송은 영어로 Broadcast, 넓게(broad) 던진다(cast)는 의미이다.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뉴스를 폭넓게 전파하는 것이 방송의 주요 역할이다.
매스 미디어가 막강한 영향력을 보이면서 사람들은 언론을 ‘제4부’라 불렀고, 기자를 ‘무관의 제왕’으로 칭했다. '신들의 황혼'을 뒤로 하고 인간의 새벽을 알리는 ‘뉴스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뉴스의 시대, 전설적인 CBS 뉴스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는 자서전(A Reporter's Life)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