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초 스님께

바라나시를 떠나며

by Spero

혜초스님께~

뜬금없는 서신에 놀라셨지요?

바라나시에 다녀왔습니다.

딱 1,300년 전이네요.

723년, 스님께서 광저우를 출발해 천축국(天竺國, 인도)으로 들어가셨던 때가 말이지요.

낯선 도시에서 마더 강가를 거닐며,

골목골목을 쓰다듬으며 스님의 발자취를 조금이라도 느껴보려 했습니다.

살과 기름 다 뺀, 뼈대만 남은 스님의 문장을 다시 읽어 봅니다.


어느 날 피라날사국(바라나시)에 도착했다.

이 나라 역시 황폐했다. 왕도 없었다.

(...).

여기도 외도들이 있다. 옷을 입지 않고 몸에 재를 바른다.

대천(大天, 시바신)을 섬기는 이들이다.

(왕오천축국전, 志安 번역 '최초의 설법지, 피라날사국' 중에서)


스님께서 열여섯에 신라를 떠나 당나라에 유학한 뒤

20대 문턱에서 만난 부처의 나라는 이미 불국(佛國) 아닌 힌두스탄,

브라흐마와 비슈누, 시바를 섬기는 힌두교의 땅이 되어버리고 말았군요.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뼈아픈 후회 / 황지우)


라고 읊었던 시인의 감성이 중첩되는 이 도시에서,

스님께선 그저 담담히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적어 내려가셨습니다.

지금도 저는 스님의 문장에 경외감을 느낍니다.

수식어 없고, 형용사 없고, 군더더기 없는 5W1H 팩트의 기록 속에서 진실을 봅니다.

바라나시에 오기 24년 전 저는, 스님께서 밟고 가셨을 곳곳을 지나친 적이 있었습니다.

뉴밀레니엄이 곧 온다면서 모두들 들떠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봄 여름 가을 세 계절을 거치며 실크로드를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중국 신강위구르 지역에 있는 투루판이란 곳을 지나칠 때였습니다.

스님께서 4년 간의 고행을 마무리하시면서 귀환 길에 거치신 불타는 산, 화염산(火焰山)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지요. 해발 -154m, 바다보다 낮은 땅, 나무 한 그루 없는 불타는 산을 배경으로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과 함께 먼 곳을 응시하는 삼장법사의 모습에서 저는 스님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타클라마칸,

'버려진 땅'. '살아 돌아올 수 없는',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이란 뜻의 열사의 땅을 지프로 횡단하면서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 사막을 밤낮없이 걸어 걸어 건너셨을 스님, 그때 나이 스물을 갓 넘기셨을 때였을텐데, 어떠셨나요?

해로를 따라 천축국(인도)에 들어가신 뒤 4년 여에 걸친 구법(求法)의 육로 과정에서

스님께선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저는 참으로 궁금했습니다.

당시 스님 나이에서 조금 더 지난 제 나이 서른 즈음에 이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1992년, 처음 미국땅을 밟았을 때였습니다.

3주 간의 뉴욕 연수 일정을 마치고 1주의 자유시간이 주어졌습니다.

D.C로 날아가 예약한 렌터카 키를 받았습니다.

그때 제 꿈은 귀국 전 블루릿지 마운틴과 셰난도 리버를 가보는 것이었습니다.

이 노래 때문이었습니다.


Almost heaven West Virginia

Blue Ridge Mountains Shenandoah river

(Take me home country road / John Denver)


국민학교 때 통기타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아침이슬',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그건 너'를 줄창 불렀던 저는

중학교 때부터 팝송에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처음 배운 노래가 바로 'Take me home country road'였습니다.

"올모스트 해븐~"

로우 코드 A로 시작해,

'웨스트버진냐~"로 바뀌는 대목에서

난이도 높은 하이코드 F#m의 벽을 간신히 넘은 뒤

다시 로우 코드 E를 잡으며

"블루우 릿지 마운틴, 세넌도우우 리이버~~"할 때마다 왜 그렇게 눈이 감기는지요,

꼭 제 고향 임진강 변 뚝방길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수려한 웨스트 버지니아 하이웨이를 달리다가 잠시 휴게소에 들렀습니다.

비싼 점심 대신 값싼 도넛과 우유를 샀습니다.

나무벤치에 앉아 요기를 하는데 우유맛이 좀 달랐습니다.

"햐~역시 미제는 우유도 진하네~~"

하면서 벌컥벌컥 다 마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확인했습니다.

팩에 쓰여진 상품명이 'Milk'가 아닌 'Coffee Cream'이란 사실을.

왠지 우유가 걸쭉하다 싶었습니다.

반미 시위가 정점에 올랐던 시절 대학생이었던 저는

골수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꼬박꼬박 시위에 참가했던 평범한 대학생이었습니다.

그땐 대부분 그랬으니까요.

"양키 고 홈!"을 외치기만 하 반미주의 대열에 서는 줄 알았습니다.

사실 뼛속 깊이 친미주의자 일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엘비스를 따라 부르고,

벤허의 경주마차 씬에 열광하고,

G.I를 좇아가며 사탕과 껌을 받아먹던 유년이었으니까요.

맛이 이상하면 왜 그럴까, 합리적 의심을 했어야 옳은데

"역시~미제는 우유도 찐하다니까!" 했던 것이지요.

그날 저는 하루종일 블랙커피만 연신 들이켰습니다.

문득 의상스님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가 중도 귀환하신

원효스님의 동굴 속 우화가 떠올랐습니다.

대선배님들의 후예이신 스님께선 이 비슷한 경험 혹 없으셨는지요?




달밤에 고향 길 바라보니

뜬 구름만 흩날리며 돌아가고 있네.

편지라도 써서 구름 편에 부치고 싶건만

바람이 급해 구름은 돌아보지도 않는구나.

내 나라는 하늘 끝 북쪽에 있는데

남의 땅 서쪽 모퉁이에 와 그리워하네.

더운 남쪽 천축은 기러기도 없으니

누가 고향의 숲을 향해 날아가려나.

(왕오천축국전 '달밤에 고향 길 바라보니' 志安 번역)


남천축국에서 스님께서 올리신 오언율시를 통해 저는 시공을 초월한 마음을 읽었습니다. 그대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리라 그 누가 수없이 되뇐 들 오매불망 스님께서 그리워하신 고향, 계림의 밤하늘은 1,3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습니다.

그곳이 신라이든, DMZ 근처 문산이든, 임진강이든, 셰난도강이든, 블루릿지 마운틴이든, 혹은 천축이든,

모든 것이 마음에 있을진대, 그 마음이 흔들리니 그저 일상이 어지러울 뿐입니다.


스님,

부처님의 고향 천축은 왜 그가 세운 뜻을 이어가지 못하고 강물처럼 흘러가버렸을까요?

불교의 태동지, 인간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평등의 신앙, 그 불국정토의 화양연화는 온데간데 없고 스님께서 보시기에 해괴한 만신이 난무하는 혼돈 속에서 스무 살 비구는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부처의 진리를 구하기 위해 길 떠난 구법승 가운데 득도의 경지에 오른 스님도 계셨을 겁니다. 가르침은 그 콘텐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깨달음에 있는 것이라고 저는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동굴 속 해골바가지 물 한 모금에도 생명이 숨 쉬고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부처(佛陀, Buddha) 또한 '깨달은 자'란 뜻이지 않습니까.


깨침!

어둠을 깨치고 새벽이 오는 것처럼, 인간의 새벽 또한 그리 오는 것이겠지요, 혜초 스님?


2023년 8월 어느 날

바라나시를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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