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병이려니 생각한다.
여행지에 가면 꼭 그 나라 뉴스채널을 먼저 본다.
News can't be imagined.
It must be reported.
'인디아 투데이'라는 뉴스채널의 모토인 듯싶은 이 카피는 뉴스 중간중간 SB(Station Break, 방송 프로와 프로 사이에 내보내는 광고)를 통해 시시 때때 화면을 채웠다. 90년대 서로 경쟁관계였던 CNN의 'Be the first to know', Fox의 'We report, you decide'같은 류의 슬로건이다.
인도는 지난 8월 세계 최초로 달의 남극 착륙에 성공했다.
달 탐사선 찬드라얀 3호 소식은 상상 아닌, 뉴스를 통해 지구촌 곳곳에 전해졌다.
뉴스는 상상하는 것이 아닌, 보도하는 것이란 뉴스채널의 슬로건에 착 달라붙는 뉴스였다.
하지만 내 눈길을 끈 것은 그 슬로건 아래 흐르는 자막뉴스였다.
인도가 달의 남극에 착륙한 바로 그즈음 인도 북동부 마니푸르에서 부족 간 갈등으로 촉발된 여성에 대한 집단 성폭행 관련 뉴스였다. 이런 뉴스에는 예외 없이 2012년 델리에서 벌어진 버스 안 집단 성폭행 사건이 오버랩된다. 한 나라의 이미지는 이렇게 무섭다. 그 이미지가 확증편향으로 굳어지면 그 어떤 PR도 무의미하다.
달의 남극 착륙과, 집단 성폭행 사태,
'인디아 투데이' 뉴스채널 화면은 인도의 오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지구와 달의 거리만큼이나 헤아리기 어렵다.
우주개발, IT기술, 소프트웨어 세계 2위 수출국, 스타트업 개수 세계 2위...인도를 규정하는 미래지향적 수사는 일신우일신이다. 인도 엘리트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상한가를 친지는 이미 오래전이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CEO 자리에 오른 선다 피차이와 사티아 나델라는 인도 젊은 층의 롤 모델이다. 정계는 또 어떤가. 리시 수낵 영국 총리,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도 한결같이 인도계다.
"친구가 낙제를 하면 눈물이 나지만 수석을 하면 피눈물이 난다"는 그 유명한 '세 얼간이' 속 대사가 아니더라도 인도전역에 산재해 있는 인도공과대학(IIT)의 23개 캠퍼스에는 인도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인재들로 차고 넘친다. 무엇보다 인도는 젊은 나라다. 평균 연령 28세, 불혹을 넘긴(41세) 한국 사회보다 10년 이상 젊다. 제조업 부문은 여전히 강세다. 인도정부 정책 기조인 'Make in India'를 세계 인구대국 1위인 노동력이 견인하고 있다. 자욱한 먼지 속에서 도로와 교량 등 사회간접자본 시설이 확충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델리 인근 신도시 구루가온 32번가에는 구글에서 일하고 피아노맨 바에서 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와인을 마시는 청춘으로 가득하다. 인도의 미래는 밝고 희망찰까?
인도의 카스트는 법적으로 효력을 잃었다. 그럼에도 일상 속의 카스트는 여전히 유효하다. '불가촉천민의 인도공대 합격, 유수한 IT기업 취직' 이런 류의 기사는 인도사회에서 열독률 1순위다. 교육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델리에는 엠비언스나 셀렉트 같은 대형 쇼핑 몰에서 우아하게 저녁 식사를 하는 가족들보다 찬드니촉 역 앞에서 노숙하며 구걸하는 가족 수가 훨씬 더 많다. 말끔한 맥도널드 매장을 벗어나자마자 지린내가 진동하는 골목이 이어진다. 유명 관광지마다 외국인을 호구로 아는 삐끼들로 득실거린다. 메트로 여성전용칸은 역설적으로 인도사회의 성평등 주소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간디와 함께 인도독립을 이끌며 초대 총리를 지낸 자와할랄 네루는 투옥 기간 중 그의 13살 난 딸, 나중에 총리가 되는 인디라 간디에게 꼬박꼬박 편지를 썼다. 후에 '세계사 편력'(Glimpses of World History)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오는 바로 그 책이다.
"만약 우리가 가정에서도 자유를 누릴 수 없다면 문명의 혜택이 우리에게 무슨 가치가 있겠느냐?" ('세계사 편력' 중에서)
이 말을 다른 버전으로 바꿔보면 이런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주로부터 들려오는 시그널이 아니다.
일상 속의 행복이다.
달의 남극에 도달할지라도...
P.S 북인도 몇 곳을 스쳤다고 인도를 보았다고 하면 거리의 소가 웃을 것이다.
다시 가려 한다.
그땐 스치지 말고 스며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