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형편없는 아버지였다"
영화 '바라나시'
"죽을 준비를 해야지. 여기서 죽을 순 없어. 더 늦기 전에 바라나시로 가야겠다."
아들은 그러나 '갈 때가 된 것 같다'는 아버지의 말을 무시한다.
그렇다면 혼자서라도 가겠다는 아버지,
어, 이상하다? 앞뒤가 바뀐 거 같다.
부모 이기는 자식 없는 건가?
아들 라지브는 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에 동행하기로 결심한다.
회사일 바빠 죽겠는데 휴가를 청하는 라지브를 보며 사장은 한심하다는 듯 말한다.
"이봐, 갠지스 강이 신성한가? 바라나시가 신성한가? 갠지스 강은 전국에 흐르는 데 왜 바라나시야? 이건 믿음의 문제야."
영화 '바라나시(Hotel salvation)'는 그렇게 시작한다.
누군들 인생의 마침표를 허접스레 찍고 싶겠는가.
하지만 삶이란 게 늘 그렇듯 일상 속으로 들어서면 내 뜻과는 영 딴판이다.
부자관계는 바라나시로 가는 여정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대절 택시를 타고 가며 아들은 수시로 "빨리 가자!"고 주문하고 아버지는 "천천히, 천천히"를 반복한다.
기나긴 여행길을 거쳐 마침내 도착한 바라나시, 갠지스 강변에 자리 잡은 구원의 집(Mukti Bhawan)에는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들로 가득하다.
한창때 와본 듯 "이곳은 변함이 없군"하는 다야의 독백에 지배인이 응수한다.
"세월 따라 다 변하면 뭐가 남겠어요."
그리고 말한다.
"죽음은 과정입니다. 과정을 시작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15일 안에 돌아가시지 않으면 돌아가는 겁니다."
방배치가 끝난 뒤 벽에 낙서처럼 쓴 이름들을 보며 아버지는 자신을 추가한다.
다야난드 쿠마르
2016년 3월 2일.
갠지스강변 빨래터,
아버지 때문에 시인되기를 포기했다는 아들에게
'다 너 잘 되라고 그런 거야"라고 질책하는 아버지,
화장터를 들러보고 침울하게 돌아온 아들에게 말한다.
"용서해라, 아들아. 넌 좋은 아들이었는데, 난 형편없는 아버지였다."
입소 13일 차, 보름이 가까워오자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부자.
생을 마무리하기 위해 함께 왔다가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빔라 부인이 조언한다.
"걱정 말아요. 보름이 지나면 다른 이름으로 등록시켜 주니까요. 난 18년째야."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지막 일상은 어떠할까?
다야와 함께 바라나시 골목을 걸으며 빔라 부인이 말한다.
"노력해도 안 죽어요. 죽음은 때가 되면 오지요."
생의 마지막 지점에서 만난 두 노인은 마더 강가에서 보트를 타고, 가트 주변을 산책하고, 장을 보고, TV를 보고, 서로에게 의지한다. 어느 날 밤 아들 라지브는 문틈 사이로 본다. 두 노인이 함께 누워 잠든 모습을. 사랑은 남녀노소, 어느 특정 시간, 특정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짧은 시간을 뒤로하고 입소 18년차 할머니는 먼저 떠난다.
빔라를 그리며 다야는 시를 쓴다.
그녀는 고요한 바다 같았다.
그녀의 수면은 고요했다.
그녀가 떠난 후 난 시장에 가서
사탕을 사고
사탕장수에게
마리화나를 얹은 라씨 차 두 잔을 주문했다.
한 잔은 나의 것,
또 한 잔은 빔라 것이다.
아버지를 떠나 보낸 뒤 아들(라지브)과 손녀(수니타)는 망자가 생전에 손수 써놓은 부고를 읽는다.
마음 가는 대로 행하라.
그래야 마지막이 편할지니...
다야난드 쿠마르는 저명한 시인이자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은 오래된 서점의
먼지 낀 진열대 구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족, 책에서 흰개미 맛이 날까요?
둘은 다야가 누워 있던 침상에 앉아 웃는다.
28일 전 아버지가 벽에 썼던 여백을 아들이 마무리한다.
다야난드 쿠마르
2016년 3월 2일 - 2016년 3월 30일
*인도에서 돌아온 후 바라나시의 여진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영화 '바라나시'를 보았다. 이 영화는 회개와 용서, 그리고 믿음과 구원의 영화다. 영화 제목은 바라나시, 원제는 '구원의 집', 힌디어로 मुक्ति भवन (Mukti Bhawan), 영어로는 Hotel Salv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