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보다 낯선 골목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by Spero

바라나시의 골목은 유혹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가 내뿜는 마력이 있다.

바라나시 정션 역에서 릭샤를 타면 예외 없이 고돌리아 사거리에서 스톱!

마더 강가로 이어지는 길까지 차량통행 전면금지다.

"더 이상 못간다!"는 기사 얘기가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할 새도 없이 릭샤꾼은 사라진다.

여기부터 혼돈!

오토바이 경적소리, 알아들을 수 없는 힌디어, 수없는 방언들과 소음들로 귀가 먹먹하다.

싸게 판다며 호객하는 상점 주인,

좋게 쳐주겠다며 접근하는 환전상,

세상을 달관한 듯한 눈빛으로 이방인을 쳐다보는 사두(힌두교 승려),

방금 퍼올린 듯 갠지스 강물을 담은 물통을 메고 또는 안고 가는 사람들...

줄잡아 2백만 명이 사는 바라나시에는 연간 천만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공식적인 통계치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을 포함하면 그 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대로변을 벗어나 모세혈관 같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또 다른 세계다.

바라나시 골목엔 이정표가 별로 없다.

드문드문, 일관성 없이, 벽이나 노출된 안내표지판을 통해 목표를 알리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부터 몇 00m란 안내 없이 그저 목적지 이름만 달랑 표기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18개의 섬들이 4백여 개의 다리로 연결돼 있는 베네치아 골목길의 이정표를 기대한다면 낭패다.

사람들은 그래도 저마다 더듬이 없이 길을 잘 찾아간다.

말초신경을 연결하는 실핏줄 같은 골목길,

곳곳에 문을 연 실크와 면을 소재로 한 옷가게,

목마른 길손에 손짓하는 라씨집,

로컬들이 머리를 다듬는 이발소,

화장터로 시신을 나르는 행렬,

곳곳에서 마주치는 소와 개, 고양이, 염소...

초행자들은 행여 소똥 개똥을 밟지 않을까 땅만 보며 골목길을 걷는다.

처음엔 지저분하다는 생각이 들고,

다음엔 신기하다는 느낌,

이후 지린내 쩐내가 익숙해질 즈음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일상의 악취가 향기로 느껴지지 않고서야 어디 이곳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방금 전까지 시끌벅적한 모퉁이를 돌면서 갑자기 나타나는 인적이 뜸한 골목길,

멀찌감치 눈에 들어오는 힌두교도의 행렬,

순간 찾아오는 예기치 않은 운명 같은 풍경이다.

어쩌면 우리들의 일상도 불현듯 이 같은 장면으로 뒤바뀔 수 있다는 예감,

늘 곁에 있을 것 같은 대상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지 않던가.

익숙한 것들과의 헤어짐,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바라나시에는 천국보다 낯선 골목길이 있다.

골목골목을 돌고 돌아 갠지스 강변에 다다르자

널린 빨래 같은 바람이 코끝에 휘잉 스친다.

수 천 년 전에도 이렇게 불었을 것이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해변의 묘지' / 폴 발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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