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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작까 Jul 07. 2021

집을 사는 연습

다양한 '집'에 대한 경험

스무 살의 연애는, 가난하고 불안하고기만 했던 나의 스무 살 인생에 함께 걸어가며 나에게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 주었고 그것만으로도 인생을 살아낼 수 있을 만큼의 큰 용기가 되었다. 누구에게나 인생을 살면서 번쩍, 하고 눈이 떠지는 순간이 있다 나에게 스무 살의 첫 키스가 그랬고 결혼을 하고 신혼집으로 마련한 아파트 값 집값이 오르는 것을 보고 그랬다.


나에겐 '집'이라는 것은 매 순간 깨달음을 주는 매개체였다. 자식의 눈으로 바라본 엄마 아빤 절약정신이 강하고 성실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부모 밑에서 나는  평범하게 자랐다. 유년시절 휴일이면 가족이 모두가 쉬고 휴가엔 멀리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종종 아빠 친구 가족들과 모여 근교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으며 어릴 때 앨범을 들여다보면 그때 그 시간이 꽤 많이 남아 있었다


내 인생을 잠깐 뒤로 돌아보면 '집'으로 기억되는 순간이 참 많이 있다 지금 돌아보면, 와 이런 데서도 살았어? 할 만큼 재미난 사진들이 많이 있다. 토라진 나를 안고 마당 한편에 있던 대피장소 옆에서 나를 달래던 아빠와 내가 있던 미아동 단독주택, 벚꽃이 만개하면 신부님과 수녀님이 성당 앞으로 지나가는 나에게 맛있는 간식을 주시고 언니와 싸우곤 억지로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었던  잠실 5단지, 중풍에 걸린 치매환자의 냄새가 배어있던 원당의 5층짜리 아파트, 이혼한 엄마의 고된 하루가 그대로 남아있던 주공아파트, 한쪽에 자리한 방 옆으로 살림살이 가득 놓고 상가의 화장실을 이용했던 아빠가 살았던 기원, 무턱대고 낙찰을 두 개 받아 세입자를 맞추지 못해 직접 들어가 살아야 했던 다락방 창으로 별이 쏟아지던 토당동 빌라, 부천의 다세대빌라 , 백석동 다세대빌라, 주거비 교통비 식비를  줄기가 위해 더 싼 곳으로 찾아 옮겨 다니기 바빴던 고시원까지       


집은, 인생의 그때를 설명하기도 한다. 집과 함께 남아있는 그때의 기억 냄새 소리와 같은 것들이 나의 지금을 만들었다. 아픈 것들은 배제하고 좋은 것만 남기면 됐다. '집'에 대한 기억이  좋은 자산이 되어 지금 나에게 남았다


대부분의 집들은 역세권에 있어야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다. 빌라도 그렇고 아파트도 그렇다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그래서 아파트를 사기엔 돈이 없어서 빌라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에게 역세권의 빌라를 고르세요 라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처절하게 내 경험으로 나에겐 역세권의 빌라도 비쌌다. 나는 돈이 없다


1. 지하철 입구에서 도보 15분까지는 괜찮음  2. 어둡지 않을 것  3. 평지일 것... 평지에 어둡지 않은 길을 15분 정도 걷는 건 괜찮은 일이었다. 무섭지 않았고 산책하는 정도로 걷는다의  자기 합리화로도 가능한 정도였으며 무엇보다도 저 세 가지 요소의 빌라는 내가 가진 돈으로도 가능하다는 게 중요했다. 나만의 기준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찾은 나의 신혼집 창동 주공 18단지는 유년시절 내가 살았던 잠실 5단지와 꼭 닮아있었다 88년생이라는 숫자도 마음에 들었다 ( 맞다. 나랑 동갑이라서 그렇다) 건물은 낡았고 지하주차장도 없었지만 관리가 잘 된 단지였다 재고 따지기 전에 30년 동안 자라온 잎이 크고 넓은 은행나무 가로수가 그때의 벚꽃나무와 닮아있었다  


'여기서 살다 보면, 지금 잠실 5단지처럼 복덩이가 되어주겠지?'


운이 잘 맞아 들어 예비신랑과 나의 전재산을 주고 산 집값은 여진히 꿈을 꾸기도 어려울 정도로 올랐고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종종 경매로 집을 낙찰받아온 나에게 집을 산다는 것이 낯 선일은 아니었지만, 값이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르는 건 처음 겪는 일이었다 내 것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좋았지만 '이게 정상인가?' 싶었다  여전히 가격은 올라있지만, 내 생각은 이제 조금씩 '이게 지금 시장이구나'로 바뀌어가고 있다


살다 보면 인생의 눈이 뜨이는 순간이 있다 '아! 이제 집을 사야겠다!'와 같은 순간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을 할 때, 신혼집을 마련하며 부동산을 처음 접하며 느끼기도 하고 나처럼 일찍 눈을 뜨기도 늦게 뜨기도 한다. 어떤 것이 맞다 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으나 부동산에 일찍 눈을 떠서 좋은 점은 내게 너무 많다. 가장 좋은 건 집을,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계속 살아도 되고, 전세를 줘도 되고, 팔아도 된다는 것이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의 결정으로 내 일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제일 좋다


대한민국에서는, 나이를 불문하고 내 집이 꼭 필요하다 사람들은 집값에 가장 많이 동요하고 정치인들도 부동산으로 가장 말이 많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와중에 내 집이 있으면 그런 순간에 동요하지않고 모른척할수있다


집을 사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공부를 하고 연습을 해야 한다. 살아온 경험으로 집을 공부했다면 이제 사는 연습을 해야 한다 언제 살지, 어떻게 살지, 어디에 살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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