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일 없지?"
인스타그램 DM으로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이 네 글자를 보는 순간, '헉'하며 당혹스러움이 먼저 찾아왔고 그 다음으로는 고마움이 밀려왔다.
'별 일 없지?'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다. 안부를 묻는 똑같은 네 글자이지만 '잘 지내지?'와는 정말 다른 느낌을 준다. '잘 지내지?'는 'How are you?'라고 물어보면, 'I'm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되받아치면 그만인 질문으로 느껴진다. 반면 '별 일 없지?'는 나에 대한 관심과 염려, 애정 등이 단번에 느껴져서, '응, 별 일 없어. 잘 지내. 너도 잘 지내지?'라고 단순히 답하기가 어렵다.
"인스타그램 사진 다 삭제한 것 같아 걱정돼서 연락해봐."
그렇다. 인스타그램 사진을 모두 삭제했다. 남편이 연애시절 찍어줬던 사진부터, 웨딩 사진, 결혼식 사진을 차근차근 삭제하다보니 '어떤 건 남겨두고, 어떤 건 골라내야지' 기준을 세우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장기연애를 한 탓에 남편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이 훨씬 많았고, 그렇게 결국 사진을 모두 삭제했다.
먼저 당혹스러웠던 것은, 누군가가 내 인스타그램 피드를 볼 줄 몰랐다! 그래서 '별 일 없지?'라는 연락을 받을 것이라고 상상을 못했다. (내가 너무 무던한건가?) 나는 인스타그램을 활발하게 하는 편이 아니고, 다른 사람 피드를 시시때때로 들어가서 보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인스타그램 피드 삭제가 누군가에게 걱정을 끼칠 거라곤 손톱만큼도 생각 못했다. 아니, 걱정은 커녕 누군가 볼 거라고 생각 안했다.
그리고 곧이어 고마웠다. 나의 작은 변화를 보고 무슨 일이 있을 것이라는 낌새를 차렸다는 게, 그리고 그냥 보고 지나치지 않고 걱정이 담긴 안부 연락을 보냈다는 게 고마웠다.
잠시동안 고민했다. 사실대로 별 일이 있었다고 털어놓아야 하는 지, 아니면 그냥 사진 정리한 것 뿐이라고 잘 지낸다고 말해야 할 지. 내가 지인들에게 이혼에 대해 이야기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지, 내 속을 먼저 들여다봤다. 지금이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생각의 정리도, 감정의 정리도 됐기 때문에 말할 수 있다.
우선은 잘 지낸다고 답변을 했다.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니었고, 나중에 만나게 되거나 통화를 하게 되면 그 때 제대로 이야기해야 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별 일 없지? 그냥 뭔가 뜸해서"
정말 신기하게도 똑같은 네 글자가 또 다른 친구에게서 왔다. 내 인스타그램을 보고 카카오톡 메세지가 온 것이다.
"뜸하다고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게 나한테는 그게 별일이라 오늘 좀 행복한데?"
속으로는 '나 근데 정말 이렇게 걱정 끼칠 줄 몰랐어... 근데 고마워...'라고 생각하면서도, 최대한 어물쩡 넘어가 본다.
"그래서 별 일 없는 거 맞지? 인스타그램 사진은 왜 지웠대."
"응, 괜찮아 잘 지내."
하루에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일 하나만 있어도 그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데, 정말이다. 나를 염려해주는 지인의 말 한마디로도 며칠을 잘 보낼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리고 또 다른 힘든 일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친구에게 나도 연락을 보내본다. 그 친구에게도 힘이 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