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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웰제이드 Aug 21. 2024

이혼도 했는데, 사주를 못 볼 건 뭐람



  30년이 훌쩍 넘게 살면서 사주를 제대로 봐 본 적이 없다. 호기심에 사주 앱을 다운로드 받아 몇 번 보긴 했지만, 철학관, 타로집, 사주집, 점집에는 가 본 적이 없다. 나의 부모님은 교회에 다니고, '사람이 자기의 일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다'라는 말씀을 매우 믿는 분이기에, 사람의 운명이나 미래를 점치는 일은 멀리하라고 했다. 그래서 태어난 일시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10대의 나는 좋은 일이 있으면 감사 기도를 했고, 고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있어도 기도를 했다.

  20대가 되어서는 에너지가 넘쳤다. '청춘'은 '새싹이 파랗게 돋아다는 봄철'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정말 성인이 되자마자 봄 한 철에 허리 높이까지 솟아오르는 풀 같이 자신감이 넘쳤다. 어쩌면 보수적이고 통제적이었던 부모님 울타리 안에서 자란 터라, 20대의 자유를 만끽하는 나만의 방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에서 답이 아직 없어서 이것저것 해 볼 수 있는 나이니까, 넘어져도, 서툴러도, 엉성해도 20대니까 괜찮아'라는 마인드가 우세했다. 물론 20대에도 많이 넘어지고 힘들었지만, 아직은 그래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30대가 되어 이혼을 하고 나니,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배 갑판 위에 홀로 있는 것 같았다. 해군에 입대했던 친구가 이야기해 줬던 풍경이 떠올랐다. 해군으로 복무하다 보니 바다 멀리까지 나가곤 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바다 파도 소리만 들리는 깜깜한 밤에 갑판 위에 올라가서 하늘을 보면, 그 무수한 별이 바로 위에 있는 것 같고 그 옆에까지 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당시 이 말을 들으면서 떠올렸던 바다의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는데, 지금 내 상황에서 떠올리는 그 바다의 풍경은 오히려 무서웠다.

  갑판 위에 서서 방향키를 잡고는 있는데 어느 방향으로 돌려야 할지, 어떤 속도로 가야 할지, 지금은 쉬어가야 하는 밤인지, 나아가야 하는 아침인지 '그때' 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방향키에서 잠깐 손을 떼기로 한 것이었다.


  '그래, 이혼도 했는데, 내가 사주를 못 볼 건 뭐람. 30년을 넘게 살면서 아직 안 해본 경험, 해보는 것도 좋지' 하며 철학관으로 향했다. 친한 언니가 소개해준 곳이었다. 전국으로 사주를 보러 다니는 지인이 추천해 준 곳이라며 연락처를 주었는데, 네이버 지도에 검색해도 잘 나오지 않고, 리뷰나 후기도 딱히 없는, 정말 지인들 입소문으로만 갈 수 있는 곳처럼 보였다.


  철학관 스님이 날 맞아주었는데, 살 때부터 지금까지 매년 어땠을지 쭉 이야기를 해주었고, 사실 여기서 소름이 몇 번 돋았다. 인생의 몇 지점은 정확히 간파한 것 같았다. 그러다가 '음.. 작년 9월부터 이미 남편하고 연이 끝났는데? 소 보듯 닭 보듯 했을 텐데?'라고 했는데, 9월에 남편은 각방을 통보해 각방생활을 시작했다.

  '올해 3월에 새 직장 들어갔을 거고, 돈도 올해 말부터 모일 거고, 앞으로 잘 될 일만 남아서 걱정 안 해도 되고, 사주가 좋은 사주여서 사람들도 주변에 생길 거고, 인정받을 거고, 40대에는 더 잘 될 사주인데? 앞으로 이대로 성실히만 살면 될 것 같은데?"

  지금 내 인생이 너무 구렁텅이 같아서, 나에게는 뜻밖의 이야기였는데, 그 말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어쩌면 나는 '잘 될 거야. 괜찮을 거야. 잘 이겨낼 수 있을 거야' 이런 말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해서 한 사람과 함께 꿈꿨던 미래가 없어지고, 다시 그려가야 하는 미래 앞에 겁이 났던 것 같다.


  그러더니 그는 이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사실 명리학에서, 사주에서는 결혼이라는 개념은 없어요.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헤어지는 인연이라는 것만 있지. 결혼은 사람들이 살면서 만든 제도잖아요. 그래서 현대에 와서는 그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살아가는 거죠. 그러니 이혼은 인연이 끝나고 지나가는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이혼이 인생에서 큰 일이고, 별 일인 것은 맞지만 너무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아도 돼요."

  맞다. 이혼은 분명 내 인생에서 큰 일은 맞지만,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난생처음 신점도 봤다.

  신점은, 귀신이 무당에게 보고 와서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니, 과거는 맞추겠지만 미래를 맞추는 건 못하지 않을까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무당은 본 적도 없는 남편의 생김새를 쭉 훑더니, ‘남편이 돈에 환장했네. 돈을 엄청 밝혀.’라는 말로 시작해 나를 깜짝 놀라게 했는데, 실제로 남편은 사람도 안 믿고 돈만 믿는 사람이어서 돈 이야기만 나오면 예민해져서 별 일 아닌데도 화를 내곤 했기 때문이다.

  나에 대해서는 ‘참 착하다. 속이 깨끗해.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았네. 일도 잘하고, 인정도 받고, 직장 이대로 쭉 잘 다닐 거야.’라고 했는데, 나를 앞에 두고 내 욕은 못할테니 다 믿지는 않아도 기분은 좋았다.


  사주와 신점 모두, 내가 이혼하고 내년에 새로운 사람을 만날 거라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남편이 사과하고, 이혼을 번복하고 현재의 남편과 다시 노력하게 될 미래는 보지 못했으니,  믿거나 말거나이다.


  그저, 위로가 됐다.
  명리학자나 무당도 결국은, 본인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해 알려주고, 좋은 길로 갈 수 있게 도와주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한다고 했다. (물론 사기꾼 제외) 그래서인지, ‘잘 될 거야, 잘할 거야’라는 그들의 말이 쌓이고 쌓여 응원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결혼생활 전쟁, 이혼 부정기, 협의이혼 지옥을 지나, 원래의 나로 돌아가고 있었다. 가장 어두운 새벽이 지나면 해가 뜬다고 했나. 죽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힘든 그 터널이 지나니, 조금씩 회복을 해간다.

  어쩌면 근육도 고강도 운동을 해서 상처를 내야, 회복하는 과정에서 근육이 커지듯, 이혼의 상처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더 성숙하고 영글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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