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운동화, 물들다
묵화 대신 낡은 운동화를 수채화로 표현하고 싶었다.
왜, 하필 운동화, 그것도 낡은 운동화일까? 세상살이를 하다 보니 낡은 운동화가 걸어왔을 여정에 마음이 머물렀다. 더러워지면 버리고 새 운동화를 구입하는 풍요 속에도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신어왔을 주인의 마음이 느껴졌다. 낡은 운동화는 내 삶의 인고와 희망이 담겨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누구나 낡은 운동화 한 켤레 정도는 신발장 한구석에 버려져 있을 것이다. 버리고 싶지만 버리지 못해 신발장 구석진 곳에 방치된 운동화를 꺼냈다. 구겨 넣어진 운동화 끈은 고단한 삶의 매듭처럼 보였다. 꼬질꼬질한 낡은 운동화는 끈이 없으면 더 볼품없다. 하지만 하얀 새 운동화는 이런 매력이 없다.
명품 브랜드 구찌가 일부러 헌 것처럼 보이도록 때를 묻힌 운동화를 100만 원에 팔기도 하고, 프랑스 브랜드는 본드가 흘러내린 듯한 운동화를 수백만 원대에 판매했다. '빈티지'는 원래는 와인 분야에서 특정 연도에 수확한 포도로 만든 고급 와인을 지칭한다고 한다. 이후에는 옷, 가구, 자동차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어 단순히 오래된 것을 의미하지 않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가치가 생긴 특별한 것을 뜻한다. 즉, 빈티지는 단순히 낡은 것이 아니라 특정 시대의 디자인과 감성을 지닌, 시간의 흐름이 더해진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낡은 운동화는 내 삶의 순간들이 머물러 있다. 아쉬움과 힘듦, 그리고 희망과 설렘이 머물러 있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좋다. 전문가 수준이 아니어도 좋다. 이 운동화와 함께한 내 지난날을 생각하며 마음과 열정을 담아 그늘진 곳과 닳아 해진 신발코의 얼룩을 물감의 농도를 달리하며 물 퍼짐으로 표현해 본다.
낡은 운동화에 채색하는 나만의 인고를 통하여 나를 성찰하고 통합함으로 또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한다. 꼬질꼬질한 낡은 운동화는 내 삶의 빛과 자연의 빛으로 재탄생한다.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낡은 운동화, 내 애환이 수채화로 태어난다. 이제야 나도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낡은 운동화 속에서 나의 희망과 빛도 발견했다.
수채화로 다시 태어난 낡은 운동화는 더는 낡은 운동화가 아니었다. 그 가치를 100만 원이라는 수치로 정할 수 있을까? 아니, 그것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내 삶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