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를 신은 날, 나는 어른이 되었다

잃어버림의 자리에서 피어난 걸음

by 진주

엄마가 사 준 리본 달린 노란 구두.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날, 나는 반짝이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때의 기억이 소설 『맡겨진 소녀』를 읽으며 떠올랐다.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는 엄마의 출산으로 친척인 킨셀라 부부에게 맡겨진 한 소녀가, 낯선 집에서 사랑과 돌봄을 배우며 성장해 가는 이야기다. 잃어버린 아들을 마음속에 품고 사는 부부는, 누구에게도 따뜻한 관심을 받지 못했던 소녀에게 조용하고 꾸준한 보살핌을 전한다. 그 돌봄 속에서 소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고, 스스로 꿈을 꾸기 시작한다. 희망은 그렇게, 누구에게나 조용히 찾아오는 것일지 모른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 소설 속 조용한 돌봄은 잊고 지내던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을 건드렸다. 누군가에게서 받았던 작은 사랑이 얼마나 오래 내 안을 지탱해 왔는지,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어린 시절, 어린이날은 생일보다 더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어느 날, 엄마는 리본이 달린 노란 구두를 선물해 주셨다. 그 구두는 나를 반짝이게 하는 보물 같았고, 마치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신호 같았다. 중학교 시절부터 내 별명은 '째간이'였다. 굽 있는 구두를 신고 또각또각 걸어 다니던 모습이 내 자신감과 당당함의 상징이 되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엄마가 맞춰주신 검정 구두를 시작으로 내 신발장엔 색색의 굽 있는 구두가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새 구두를 신을 때마다, 나는 새로운 길을 걷는 듯한 기분에 들떴다. 그러던 어느 날, 동아리 모임에 급히 나가려다 신발장 속 구두를 아무 생각 없이 꺼내 신고 택시에 올랐다. 차창 밖으로 퇴근하는 사람들과 노을 져 가는 하늘이 평화로웠다. 고개를 숙이는 순간, 내 눈이 구두와 마주했다. "어? 뭐야, 이거 색이 다르잖아?" 보라색과 밤색, 높이는 같지만 색이 다른 구두 한 짝씩을 신고 있었던 것이다. 그 짝짝이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는 뜻밖의 개성과 자유로 느껴졌다.

그 일을 계기로 귀걸이나 양말도 꼭 짝이 맞지 않아도 자연스럽고 개성 있게 착용하게 되었다. 지나치게 깔끔하기보다는 약간 어긋난 것에서 피어나는 조화와 개성. 그것이 내 새로운 취향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주황색과 파란색의 뾰족구두는 통굽으로 바뀌었고, 결국 신발장에서 하나씩 사라져 갔다. 리본이 달린 노란 구두가 ‘준비되지 않은 이별’의 아쉬움이라면, 색색의 뾰족한 구두를 떠나보내던 날의 허전함은 '변화를 받아들이는 이별'이었다. 구두를 통해 배운 상실감은 단지 물건을 잃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고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과정, 즉 '성숙'이었다.

대학 졸업과 취업 준비로 분주하던 새로운 출발선에서, 나는 인생의 가장 큰 상실을 마주했다. 아버지와의 이별은 마치 예고 없이 들이닥친 쓰나미처럼 나를 송두리째 휩쓸어갔다. 그해, 엄마는 마흔넷의 나이에 여섯 남매의 가장이 되셨다. 나는 스물둘, 장녀로서 살아남은 자의 무게와 책임을 처음으로 온몸으로 느꼈다. 밥알은 마른 모래알처럼 굴러다녔고, 삼키는 일조차 힘겨웠다. 장지로 향하던 그날, 보슬비가 내렸다. 나는 구두가 아닌, 운동화를 신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보냈다. 익숙하고 경쾌한 ‘또각또각’ 대신, ‘지익… 직… 퍽.’ 비에 젖은 운동화 밑창이 땅을 긁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그날 이후, 엄마는 1년 내내 울며 지내셨다. 나는 낯선 도시에서 자취하며 외로움과 현실의 무게에 눌렸고, 늘 가족을 먼저 생각하며 내 마음을 뒤로 미뤄야 했다. 세상의 버팀목 같던 아버지의 부재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세상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단숨에 바꾸어 놓았다. 그럼에도 나는 결심했다. 더 이상의 노력에도 바꿀 수 없는 일 앞에서 스스로를 탓하지 않기로, 원치 않던 선택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내고, 책임을 끝까지 안고 살아가기로. 언제 멈추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내 길을 묵묵히 걸어가기로.

그제야 깨달았다. 아픔이 나를 무너뜨릴 수 없으며, 내 안에 피어나는 희망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는 것을. 지금 우리는 풍요 속에서도 끊임없는 상실을 겪으며 살아간다. 채움의 욕망은 커져가는데, 마음은 점점 허기지고 있다. 개인의 슬픔이든, 사회적 상실이든 우리에겐 이제 피하지 않고 직면할 용기와 서로를 돌볼 사랑이 필요하다. 『맡겨진 소녀』 속 킨셀라 부부처럼, 누군가를 보살피고 사랑하는 것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가장 강한 힘이 된다. 그 사랑은 언젠가 돌아와 상처를 감싸고 또 다른 생명을 품는 힘이 된다. 마치 부메랑처럼.

잃어버린 구두, 버려야만 했던 구두, 그리고 잃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 그 모든 ‘잃어버림’은 나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더 깊은 본질을 향해 걸어가게 했다.

“사랑은 기쁨의 표현이며, 기쁨은 존재의 본질이다.” 스피노자의 이 말을 곱씹으며, 나는 생각한다.

크고 작은 이별과 허전함의 자리를 사랑과 보살핌으로 채우겠노라고. 이 순간이 멈추더라도 후회 없는 삶을 살겠노라고. 어린 시절의 노란 구두가 반짝이는 신호탄이었다면, 이제 나는 다가오지 않을 시간마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늘도 신발장 속의 구두를 꺼내 신고 주어진 하루를, 나의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간다. 그 작은 희망의 시작은 언제나처럼 나의 발끝에서부터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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