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나를 다시 걷게 한 한마디

by 진주

3년만 하자던 약속이 34년을 돌아왔다. 장롱 속 RN 면허증은 인천제주간호지원센터를 만나 세상 밖으로 나왔다. "나는 대한민국 간호사입니다." 새내기 간호사로서 다시 시작한 날, 병원은 내가 상상한 곳과 달랐다. 환자를 향한 길에서 마주한 현실은 차가웠다. 자존심은 조금씩 무너졌지만, 나는 환자만 바라봤다.

주로 맡은 환자는 62세, 뇌경색으로 경관식을 통해 영양을 섭취했다. 말이 거의 없고 늘 조용히 누워 있었다. 어느 날, 경관식 물품을 챙겨 들어가자 동료 간호사가 따라왔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나는 위축되었고, 모든 행동에 이유를 증명해야 했다. 숨이 막히고 가슴이 조여왔다. 환자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공부했어요?" 그 물음은 나를 굳게 만들었다. 나는 작은 글씨로 빼곡히 적은 수첩을 꺼냈다. 식사와 잠을 줄여 만든 나의 무기였다. 그러나 나의 열정이 나이의 한계로 치부되는 순간도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직을 떠올렸다. 며칠 뒤, 경관식 투여를 마치고 돌아서려는데 환자의 작고 또렷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맙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나란 존재가 그 순간, 한 사람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되었다. 퇴근길 2월의 칼바람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내 안에는 작은 불씨가 켜졌다. 다시 한 걸음을 내딛을 용기가 생겼다.

병동 생활은 여전히 버거웠다. 반나절 만에 그만두는 간호사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결국 한 달 만에 사직서를 냈다. 그러나 간호과장은 다른 병동 근무를 제안했다. 조금 숨 쉴 공간이 생겼고, 동료들의 눈빛이 위로가 되었다. 6개월을 무사히 마치고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요양병원은 달랐다. 원장과 간호사들이 환자와 눈높이를 맞췄고,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만성질환과 노인성 질환 환자와 함께하며 ‘기술’보다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급성기 병동 경험이 스며들었고, 원장은 “언제든 다시 오라”는 인사를 남겼다.

나는 스스로에게 ‘잘 버텼다’고 작은 박수를 보냈다. 기꺼이 혈관을 내어준 간호사, 차근차근 알려준 멘토, 내 아픔에 공감해 준 동료가 있었기에 10살 소녀가 꿈꾸던 나이팅게일이 지금의 나로 이어졌다. 이제는 병원이 아닌 어르신들의 집으로 들어가 하루를 조금 더 가볍게 만들어준다. 그날의 “고맙습니다”라는 한마디는 여전히 나의 등을 밀어주고 있다. 나는 오늘도 그 말을 가슴에 품고 걷는다. 나를 위해, 누군가의 하루를 위해.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간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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